철저한 자산운영 전문가, 그러나 골프장에서는 누구보다 유쾌한 사람. 권기봉 대표는 “좋은 사람들과 오래 치는 게 목표”라며 골프와 삶을 겹쳐 이야기한다.

첫마디부터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골프 얘기엔 유쾌한 농담이, 사람 얘기엔 진심이 묻어난다. 격식보다는 자연스러움을, 거리감보다는 어울림을 택하는 사람. IFC서울을 운영하는 권기봉 대표는 묵직한 직함과 달리 대화 내내 주변을 따뜻하게 밝히는 에너지를 풍겼다.
AIG코리아부동산개발에 입사한 후, 그는 서울국제금융센터(IFC Seoul)의 개발과 운영을 이끌며 여의도를 대표하는 복합개발 랜드마크를 완성해냈다.
현재는 IFC 서울의 자산을 관리하는 운영 주체인 SIFC 프라퍼티 코리아 대표로서 오피스 타워 3개 동과 리테일, 호텔까지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2012년 완공된 IFC는 올해로 준공 13년 차를 맞았고, 공실률은 3% 미만으로 유지되고 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철저한 관리자’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와 마주 앉은 순간 그 이미지는 단박에 깨진다.
골프는 사람을 잇는 즐거운 일상
권 대표에게 골프는 일상의 쉼표이자 관계의 도구이고 때로는 자신을 확인하는 무대다. 억지로 시작했지만 끝내 ‘진심’이 된 골프는 이제 그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라운드에선 동호회 운영자로, 때론 트로피를 챙기는 주최자로, 또는 회사 사람들과 3~4팀을 이끄는 진행자로 누구보다 바쁘지만 즐겁다.
“마음 편한 친구들과 라운드를 즐겨요. 그들과 어울리며 기념패도 하나 만들어서 선물하고, 저는 소위 머리도 올려주는 일도 많죠.” 묻지도 않은 디테일까지 덧붙이는 그의 말투엔 골프가 얼마나 가까운 일상인지 그대로 묻어난다.
업무와 골프, 그리고 관계. 어떤 자리에서도 그는 ‘자연스러운 연결’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긴다.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협회(KCMC)의 골프 모임 ‘마스터스’를 2년째 이끄는 이유도 그 연장선에 있다. “방도 같이 써보고, 조도 섞이고… 그렇게 친해지는 거죠. 좋은 사람들과 오래 골프 치는 게 목표입니다.”
권 대표의 골프 철학은 놀랍도록 단순하지만, 그만큼 깊다. 규칙도 없고, 심판도 없는 필드 위에서 그는 여전히 즐기는 자의 자세로 클럽을 든다.
골프를 처음 시작하신 계기와 당시 기억이 궁금합니다.
30대 후반부터 쳤어요. 미국에서 살고 있을 때였는데 같이 일하던 분이 “골프를 안 치면 안 된다”라고 해서 뉴욕에서 시작했죠. 재미는 없었어요. 잘 못 치니까요. 그저 끌려다니다가 점점 점수가 내려가고, 어울리는 분위기가 좋아서 계속 치게 됐어요.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골프채를 들고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기록하신 라이프 베스트 스코어와 당시의 기억은요.
15년 이상 함께 쳐온 멤버들과 라베를 했어요. 스코어가 중요한가요?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기념패도 서로 선물하고 그런 것들이 추억이죠. 코스도 어디서 쳤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항상 누군가와 좋은 시간을 같이 즐겼다는 게 중요하죠.
일과 골프의 균형은 어떻게 맞추고 계신가요.
IFC처럼 큰 자산을 관리하다 보면 임차인이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골프를 치게 돼요. 단순히 식사하고 헤어지는 것보다 훨씬 좋죠. 골프는 그 자체가 대화고, 관계죠. 당연히 내기가 있어야 더 재미있고요.
골프가 대표님의 리더십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다른 운동은 리액션 게임인데 골프는 가만히 있는 공을 치는 혼자만의 경기예요. 판단력, 멘털, 책임감이 다 드러나죠. 그렇다고 너무 무겁게 생각하진 않아요. 라운드를 하며 성격을 파악하고 그런 복잡한 것은 안 해요. 비즈니스와 연결해서 사람을 판단하거나 하는 시도도 않습니다. 골프는 즐기려고 하는 거니까요.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협회(KCMC)에서 활동 중이신데 ‘마스터스’는 어떤 모임인가요.
KCMC는 Korean CEO’ s Association of Multinational Corporations의 약자로, 150명의 회원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글로벌 리더들의 모임입니다. 30년 넘는 시간 동안 회원들 간의 자발적인 상호 협력으로, 각자의 기업에서 얻은 글로벌 경영 인사이트와 인재·문화 육성 경험, 건전한 기업 시민의식을 한국 사회와 나누고 있어요.
저도 그런 취지에 공감해 함께하고 있습니다. 매달 30여 명 규모로 골프 모임 ‘마스터스’를 진행하고 있고 여름엔 국내 1박 2일, 겨울엔 해외 2박 3일 골프여행도 추진해요. 숙소도 함께 쓰고, 조도 바뀌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지죠. 단순한 골프 이상의 의미가 있는, 기다려지는 모임입니다.
다시 함께 라운드 하고 싶은 사람의 기준이 있으신가요.
‘클릭되는 사람’. 이건 제가 만들어낸 말이에요. 스코어도 비슷하고, 말도 잘 통하고, 케미가 맞는 사람들과는 항상 함께하고 싶죠. 저는 시끌벅적한 스타일이라 그런 분들이 잘 맞아요. 감사하게도 지독하게 매너 없는 분은 못 봤어요. 요즘은 다들 매너 좋아요.
가장 인상 깊었던 골프장은 어디인가요.
아일랜드 올드헤드요. 자연 그대로의 풍광이 정말 멋졌어요. 바람도 세고, 쉽지 않았는데도 다시 가보고 싶어요. 페블비치도 멋졌지만 전 올드헤드가 더 기억에 남아요.
골프 버킷리스트가 있다면요.
미국 서부에 좋은 코스들이 정말 많잖아요. 한 달 정도 북에서 남으로, 아니면 반대로 가면서 하루하루 골프 치는 거요. 1팀이나 2팀, 여유롭게. 그냥 그 자체가 여행이죠.
스코어보다 더 오래 남는 골프의 기억이 있으신가요.
스코어는 내려놨어요. 잘 치는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으니까요. 기억에 남는 건 직원들이랑 함께한 라운드들이에요. 매년 트로피를 만들고 이벤트처럼 치는데 그게 참 재밌어요. 골프장에서 웃는 얼굴들 보면 그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시간이 흐르며 골프를 대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으셨나요.
지금은 좋은 사람들이랑 오래 치는 게 목표예요. 그게 다예요. 그리고 뭐, 가끔은 술이 함께하는 라운드도 좋죠. 분위기도 부드러워지고 더 편하게 어울릴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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