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의 ‘미란 보고서’
주류 경제학계 비판 쏟아져
美착취적 제도로 사회 흔들
지금 한국은 더 나쁜 상황
한 달 전 칼럼에서 소개했던 ‘미란(Miran) 보고서’에 대한 주류 경제학계의 비판이 갈수록 거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수석경제학자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으로 지명된 스티븐 미란 박사가 썼으니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 바이블이라고 볼 수 있다. 보고서는 관세 부과를 협상 카드로 적절히 활용하면서 고평가된 달러화를 약화시키면 미국 제조업을 되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류 경제학계의 반응은 차갑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가 2주 전 포문을 열었다. 한마디로 ‘혼란스럽다’는 비판이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정작 강달러를 주장하고 있어 백악관 경제팀 내부조차도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약달러의 영향에 대한 비용·편익 분석도 잘못됐다는 것이다. 특히 미 제조업 종사자 1300만명을 위해 소비자 3억명이 비싼 물가를 감당하는 게 과연 맞느냐고 지적한다. ‘심각한 자해행위’라고 단언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경제평론가 마틴 울프는 이번 주 칼럼까지 2주 연속으로 미란 박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논리도 일관성도 없다는 것인데, 분노가 느껴질 정도다. 경상수지 적자를 없애고 제조업을 좀 더 키울 순 있겠지만, 이를 위해 포기하는 대가가 클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제조업 고용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도 막을 순 없다고 비판했다. 자신들의 주장을 따르지 않으면 우방이 아닌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정치적 압박 카드에 대해선 ‘보호 명목의 갈취 행위(protection racket)’라는 표현을 썼다. 미국이 다 지킬지 확신할 수조차 없는데 과연 정상적 국가라면 누가 트럼프를 믿고 거래하겠느냐고 힐난했다.
미란 박사의 주장은 단순한 경제정책의 실패를 넘어설 수 있다. UC버클리의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가 나섰다. 지난 주말 기고문을 통해 110년에 걸쳐 구축해 놓은 달러 중심의 국제 경제질서를 트럼프가 몇 달 만에 무너뜨리고 있다고 한탄했다.
폴 워버그가 1910년 연방준비제도법을 통해 중앙은행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해리 덱스터 화이트가 1944년 브레턴우즈 국제통화회의에서 달러를 유일하고 완전한 국제통화로 명시함으로써 국제통화 시스템의 중심에 확고하게 올려놨다. 이후 미국은 마셜플랜을 통해 전후 유럽 복구에도 적극 나서, 경제뿐 아니라 지정학적 파트너도 될 수 있다는 신뢰를 얻었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져도 달러의 지배력이 흔들리지 않았던 원인이다. 트럼프처럼 안보우산을 제공하고 있으니 미국을 따르라는 것이 아니다.
‘미국 예외주의’는 강력한 성장과 그러한 경제 체제를 제대로 관리하는 현명한 정부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포용적 제도’라는 개념으로 풀어냈다. 국가 권력과 시민 사회의 힘 사이에 형성된 역동적 균형을 통해 경제적 성과도 나온다는 설명이다. 미국을 염두에 둔 분석이다. 베이징 출신의 MIT 교수 야성 황은 1인 장기집권 체제에 들어간 시진핑의 중국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중국과 다르다는 전제에서다. 그는 “다양한 견해가 난무하는 미국이 버틸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선거 시스템, 독립적인 법원 그리고 언론과 같은 보조기관의 힘이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미국은 이들이 그렸던 모습과는 차이가 많다. 착취적인 정치 제도가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흔들고 있다.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법원의 명령을 무시하고, 비판적 기사는 가짜뉴스라고 단정 지어 버린다. 미국을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민주주의 체제로 기능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원래 칼럼 제목은 ‘미국은 왜 실패하는가’였다. 막판에 바꿨다. 미국 얘길 썼는데 한국이 더 무너지고 있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