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투구 템포에 안정적인 제구력, 여기에 다채로운 구종 및 매력적인 구위까지. 말 그대로 ‘우승 청부사’다운 모습이었다. 엘리에이저 에르난데스(LG 트윈스)의 이야기다.
에르난데스는 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프로야구 KBO리그 정규시즌 두산 베어스와 원정경기에 LG의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시작은 좋지 못했다. 1회말 정수빈에게 볼넷을 범했다. 이후 강승호를 삼진으로 묶은 뒤 포수 박동원의 도움을 받아 2루 도루를 시도하던 정수빈을 잡아냈지만, 제러드 영에게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비거리 120m의 솔로포를 맞았다. 다행히 양의지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추가 실점은 하지 않았다.


2회말부터는 거칠 것 없었다. 양석환과 김재환, 허경민을 모두 삼진으로 막아내며 이날 자신의 첫 삼자범퇴 이닝을 만들었다. 3회말에도 전민재(유격수 플라이), 이유찬(삼진), 정수빈(삼진)을 상대로 차분히 아웃카운트를 늘렸다.
4회말에도 안정감은 지속됐다. 강승호와 제러드를 각각 포수 파울 플라이,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했다. 양의지에게는 중전 안타를 내줬지만, 양석환을 유격수 플라이로 요리했다.
이후 5회말에도 마운드에 올라온 에르난데스는 김재환과 허경민을 각각 유격수 땅볼,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이어 후속타자 전민재에게는 1루수 플라이를 유도해내며 이날 자신의 임무를 마쳤다.
최종 성적은 5이닝 2피안타 1피홈런 1사사구 7탈삼진 1실점. 총 78구의 공을 뿌린 가운데 패스트볼(35구)을 가장 많이 구사했으며, 스위퍼(21구), 커터(6구), 싱커(5구), 커브(5구), 슬라이더(4구), 체인지업(2구)을 고루 섞었다.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150km까지 측정됐다.

팀이 6-1로 앞선 상황에서 공을 후속투수 이지강에게 넘긴 에르난데스는 LG가 동점을 허용하지 않고 10-3으로 승리함에 따라 KBO리그 데뷔전에서 첫 승을 수확하는 기쁨을 누렸다. 아울러 이날 승리로 4연패에서 벗어난 LG는 55승 2무 48패를 기록, 삼성 라이온즈(57승 2무 50패)를 제치고 하루 만에 2위로 돌아왔다.
에르난데스는 더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한 LG의 승부수다. 당초 이 자리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KBO리그 통산 163경기(989.1이닝)에서 73승 46패 평균자책점 3.25를 기록한 ‘잠실 예수’ 케이시 켈리의 몫이었다.
그러나 켈리는 올해 들어 구위가 떨어졌다. 잘 던질 때와 못 던질 때의 간극이 너무나 크자 결국 LG는 켈리와 작별하고, 에르난데스와 손을 잡는 결정을 내렸다. 전반기가 끝났을 때만 하더라도 구체적인 외국인 투수 교체 계획이 없었지만, 마이너리그 트리플A 통산 35경기(159.2이닝)에서 11승 7패 평균자책점 2.87을 기록했으며, 올 시즌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9경기(15.2이닝)에서 1패 평균자책점 6.32를 올린 에르난데스가 시장에 나오자 급히 계획을 수정했다.


이후 지난 달 25일 한국 땅을 밟은 뒤 불펜 피칭과 연습경기를 통해 실전 감각을 끌어올린 에르난데스는 이날 데뷔전에서 호투하며 LG가 그를 데려온 이유를 증명했다.
지난해 1994년 이후 29년 만이자 통산 세 번째(1990, 1994, 2023) 통합우승을 일궈냈던 LG는 현재 치열한 선두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역시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정적인 선발진이다. 과연 에르난데스가 앞으로도 호투를 이어가며 LG의 선발진을 굳게 지킬 수 있을지 많은 관심이 쏠린다.
한편 9일 잠실 NC 다이노스전을 통해 2연승에 도전하는 LG는 선발투수로 우완 임찬규(6승 5패 평균자책점 4.30)를 출격시킨다. 이에 맞서 NC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키움 히어로즈에서 56승 36패 평균자책점 2.85를 기록했던 좌완 에릭 요키시를 예고했다. 2023시즌 도중 불의의 부상으로 키움과 이별한 뒤 최근 NC와 손을 잡은 요키시는 이번 경기를 통해 KBO리그 복귀전을 치른다.

[이한주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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