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Y베리테옴므PBA 첫 우승,
“이런날 올 줄 생각하지 못해”
선배님들 덕에 오늘의 韓당구있어
우승을 확정한 이승진은 어린아이처럼 껑충껑충 뛰었고, 아내를 번쩍 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PBA 7시즌만의 첫 우승이고, 당구연맹 시절까지 더하면 10년만의 우승이다. 55세, 적지않은 나이에 이룬 성과다. 이승진은 말투나 경기스타일에서 꾸밈이 없다. 그저 ‘동네 형’ ‘동네 아재’같은 편안함이다. 많은 당구팬이 그의 우승을 축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을까?’란 질문에 대해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관없다”고 했다. 그저 당구가 좋고 당구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대구에서 KTX를 타고 킨텍스로 오는 순간이 설레고 행복하다는 그다. 기자회견 내용을 소개한다.
▲PBA 첫 우승이다. 소감은.
=너무 행복하다. 이런 날이 올 줄 생각하지 못했다. 가장 행복한 날이다. 이번 대회는 운이 좋았다. 내가 잘했다기 보다 상대 선수들이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서 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 결승전을 돌이켜 보면 공이 잘 맞지는 않았지만, 최성원 선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4세트에 최성원 선수가 역전승하면서 불안하기도 했다. (이승진은 8:0으로 앞서다 9:15로 역전패했다) 최성원 선수가 발동 걸리면 막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PBA 원년멤버인데, 이렇게 우승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했나.
=이런 날을 바라보고 당구를 하진 않았다. 프로당구가 출범하면서 ‘PBA에서 뛰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PBA에 왔다. 외국에 가지 않아도 세계적인 선수를 만날 수 있고, 내 당구 역량을 늘릴 수 있겠다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5세트 2:10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행운의 뱅크샷 득점이 나왔다.
=잘못 쳤는데, 득점이 됐다. 기분은 덤덤했다. 점수 차가 꽤 났고 ‘이게 기회가 될 수 있겠다’란 생각으로 집중했다.
▲고향인 대구에서 많은 분들이 응원하러 왔던데.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작게 후원하시는 분을 비롯해 친구 내외가 새벽부터 올라와 4강부터 응원해줬다. 부산에서도 큰 형과 조카, 서산에 사는 지인들도 얘기도 없이 경기장에 와서 깜짝 놀랐다. 식구들과 지인들을 비롯해 20명 가까이 경기장에 오셨다.

▲당구는 언제 시작했나.
=고등학교 때 친구가 당구를 조금 친다고 해서 당구장을 따라가봤는데, 재미가 있어서 금방 빠져들었다. (당구를 이후 계속 친 건가?) 군복무 할 때 제외하고는 당구를 놓은 적 없다. 선수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 당구 종목이 생기면서 국가대표에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서른 즈음에 선수가 됐다.
▲당구 선수 하려고 당구장을 그만뒀다고.
=대구에서 당구장 매니저하던 2009년 결혼했다. 아내에게 1년만 당구 선수를 하겠다고 했다. 몇 차례 입상했지만, 2000만원 정도 적자를 냈다. 그래서 선수 그만두고 당구장을 운영했지만, 당구를 치지 못해 선수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10년 전에 당구장을 그만뒀다.
▲국내선수로는 이번 시즌 첫 우승자다.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맞다. 정말 많은 연락이 왔다. 기억에 남는 거는 PBA에서 활약하는 많은 후배들이 보낸 “저희에게 희망이 됐다”는 메시지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번 우승 전 마지막 우승은 언제인가.
=2016년 국토정중앙배 1쿠션과 3쿠션을 우승이다. 1쿠션 결승전에서는 강동궁(SK렌터카), 3쿠션에선 조재호(NH농협카드)를 이겼다. 그때도 적은 나이가 아니었던 만큼 우승을 할 거란 생각을 못했다. 1쿠션 시합이 새벽까지 진행됐고, 오전 9시에 3쿠션 결승전을 치렀다. 주위에선 1쿠션 결승을 포기하고, 3쿠션 결승에 집중하라는 얘기도 있었다. 나는 시합하는 게 너무 즐거워서 결승전에 모두 나갔다.
▲평소 대회에 나설 때 루틴은.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당구장이 문 열기 전인 오전 9시부터 2시간 정도 혼자 연습한다. 이후 연습장에서 동호인들과 게임하고, 오후 6~7시쯤에 집으로 돌아온다. 주위에서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니 “우렁각시 숨겨놨냐”고도 한다. 하하. 그래도 선수라면 컨디션 관리를 잘해야 하기에 이런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PBA 초기에는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지난 시즌부터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당구가 늘었다. 지금도 당구가 계속 는다. 많이 배우는 것 같다. 톱랭커, 젊은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 나보다 수월하고, 정확하게 칠 때가 많다. 그럴 때 선수들에게 많이 물어본다. 경기 보면서 혼자 연습하며 부족한 부분을 고친다. 늘 배우려는 마음이다. 지금도 당구가 늘고 있다는 게 기분이 좋다.
▲현재 이승진 선수보다 나이 많은 선수들도 있다. 선배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가장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선배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 당구가 있을 수 있었다. 나이와 시간에 상관없이 힘든 길을 다져왔기에 지금과 같은 환경이 생길 수 있었다. 선배님들이 지금도 당구를 하시는 이유가 그저 당구가 좋아서 일 것이다. 건강 잘 챙기셔서 오래도록 당구를 즐기셨으면 좋겠다.
▲(국토정중앙배 이후) 10년 만의 우승이다. 또 이 자리(기자회견장)에서 이승진 선수를 볼 수 있을까.
=내가 또 할 수 있을까. 하하. 물론 하고 싶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 우승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우승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관 없다. 나는 그저 당구가 좋고, 당구 칠 때 가장 행복하다.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대구에서 KTX를 타고 킨텍스로 오는 순간도 설레고 행복하다. [황국성 MK빌리어드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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