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등 과제 작성에도 악용
대학 차원의 가이드라인 절실
최근 연세대·고려대 비대면 대형 강의에서 집단 부정행위가 적발된 데 이어 서울대의 대면 중형 강의에서도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집단 커닝’이 발생했다. 학생 개개인의 양심에 맡길 것이 아니라 AI 시대에 맞는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2일 매일경제 취재에 따르면 지난달 치러진 서울대 교양과목 ‘통계학실험’ 중간고사에서 상당수 학생이 챗GPT 등 생성형 AI를 이용해 부정행위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 강의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강의로, 30여명이 수강하는 대면 강의다. 주요 수강 학년은 1학년으로 평가 방식은 중간고사·기말고사·출석 등으로 구성됐다.
부정행위 정황이 드러난 시험은 최근 서울대 관악캠퍼스 강의실에 비치된 컴퓨터를 이용한 대면 방식으로 치러졌다. 강의 특성상 코딩 등 개인 컴퓨터를 활용해야 하는 문제가 많아서다.
학교 측은 시험에 앞서 문제 풀이 과정에 AI를 활용하거나 다른 학생과 답안을 공유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다수 학생이 시험에 응시하던 도중 챗GPT 등 AI를 이용해 답안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강의 교수자는 다수 학생들이 작성한 답안에서 AI가 활용된 코드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측은 해당 시험 성적을 전면 무효화하고 재시험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지금껏 2명이 자진신고를 한 상황이지만 실제 부정행위를 저지른 학생은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며 “규칙을 지킨 선량한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만큼, 유사한 부정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5일 고려대에서는 수강생 1434명을 대상으로 한 ‘고령사회에 대한 다학제적 이해’ 중간고사에서 일부 학생들이 오픈채팅방을 이용해 정답을 공유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 강의는 별도의 부정행위 방지 장치 없이 비대면 방식으로 시험이 치러지면서 커닝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에서는 학부생 600여 명이 수강하는 신촌캠퍼스 3학년 대상 ‘자연어 처리(NLP)와 챗GPT’ 수업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되기도 했다.
교육계에서는 이 같은 부정행위가 ‘빙산의 일각’이라고 지적한다. 시험뿐 아니라 리포트 등 과제를 작성할 때도 인공지능 활용이 당연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 이수과목인 ‘Eastern Civilization’ 수업에서도 챗GPT로 리포트를 작성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한 사립대 교직원은 “학생들 사이에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한 것 같다”며 “과정보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영향을 준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손쉽게 과제를 해결하면 결과적으로 학부생들의 사고능력이 저하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의 AI 활용을 규제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 학생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국가 경쟁력 저하와도 직결된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교수·학생 개개인에게 맡겨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AI가 점점 더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학생들의 창의력 저하를 막을 수 있는 새로운 교육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지하 한국교육개발원(KEDI) 선임연구위원은 “대부분의 대학에서 챗GPT, 제미나이 등 AI 활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부재하다”며 “수업 계획서 단계에서 AI 허용 범위, 활용 가능한 수준, 부정행위로 간주되는 행위, 적발 시 처리 기준을 명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제를 작성할 때는 인공지능 사용을 자율화하되 서술형 시험을 채택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 서울대 대학원생 김 모씨(29)는 “지난 학기 수업에서는 기말시험을 ‘손코딩’으로 풀게끔 안내했다”며 “인공지능을 통해 수월하게 과제를 수행하면 결국 시험을 칠 때 손해를 보게 된다”고 밝혔다.
나아가 인공지능을 도구로 삼는 윤리적 감수성과 학습 태도를 함께 길러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대학이 교양 수준에서 ‘AI 리터러시’나 ‘디지털 윤리’ 교육을 의무화하고, 전공 수업에서도 AI 활용의 긍정적 가능성과 한계를 토론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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