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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우야노”…잿더미 된 일상, 산불 이재민 속은 여전히 타고 있다

경북 이어 경남도 불길 잡혀 일상 불탄 이재민 망연자실 농기계·농작물 등 피해막심 복구 엄두도 못내는 마을도 지리산도 위협한 산청 산불 213시간 사투 끝 주불 진화 경찰, 실화자 조사 본격 착수

  • 우성덕,최승균
  • 기사입력:2025.03.30 23:29:10
  • 최종수정:2025.03.30 23: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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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이어 경남도 불길 잡혀

일상 불탄 이재민 망연자실
농기계·농작물 등 피해막심
복구 엄두도 못내는 마을도

지리산도 위협한 산청 산불
213시간 사투 끝 주불 진화

경찰, 실화자 조사 본격 착수
‘경북 산불’이 휩쓸고 간 뒤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영덕군 영덕국민체육센터 내 임시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경북 산불’이 휩쓸고 간 뒤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영덕군 영덕국민체육센터 내 임시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지리산국립공원을 위협했던 경남 산청과 하동 지역 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213시간 만에 주불 진화가 완료돼 잔불 정리에 들어갔다. 한때 지리산 천왕봉까지 근접했던 불길은 지난 29일 밤부터 인력과 장비를 대거 투입하면서 지리산국립공원 내 확산을 막았다. 이로써 지난 21일 산청을 시작으로 다음 날 경북 의성 산불까지 10일간 영남 지역을 잿더미를 만든 이번 ‘괴불 산불’의 모든 주불 진화가 완료됐다.

30일 산림청에 따르면 지리산 자락에서 발생한 이번 산불은 험준한 지형과 강풍으로 인해 진화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산림이 우거지고 낙엽층이 두꺼워 헬기를 통한 물 투하에도 불길이 계속 살아났다. 해발 900m 이상의 높은 지역에 임도가 없어 진입도 어려웠다.

하지만 지난 28일 의성, 안동, 영양, 청송, 영덕 등 5개 시군에서 발생한 경북 산불의 주불이 진화되면서 29일부터 다음 날까지 진화 인력이 경남 산불 현장에 대거 투입됐다. 이날 산림당국은 일출과 동시에 미군 헬기 4대 등을 포함해 헬기 50대를 집중 투입해 총력전을 펼쳤고, 결국 오후 1시께 모든 주불을 잡았다. 경남에서는 이번 산불로 총 1858ha의 산림이 소실됐고 지리산은 123ha가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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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지역 전체적으로 보면 21일부터 발생한 산불로 인한 피해 규모는 서울 면적의 80%인 4만8000여 ha로 추산됐다. 이날 정오 기준 사망자는 전날보다 2명 늘어난 30명, 부상자는 45명으로 집계됐다.

영남 지역 산불이 열흘 만에 완전 진화를 눈앞에 뒀지만 피해 주민들의 속은 이미 시커멓게 타 버렸다. 피해 주민 대다수가 농업, 임업 등에 종사하는 고령자여서 당장 생계 걱정이 앞서는 상황이다. 농작물과 농기계 등의 피해도 조사가 진행될수록 계속 늘어나고 있어 상당수 피해 주민이 올해 농사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피해 지역은 사실상 농업 기반이 완전히 붕괴됐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안동시 길안면 대곡 2리 주민 김정동(77)씨는 “사과 농사를 1000평 정도를 짓는데 나무가 싹 다 타버려서 올해 농사는 모두 망쳐 버렸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 지 눈앞이 깜깜하다”고 말했다. 영양군 석보면에 사는 한 주민도 “지금 농번기여서 배추도 심어야 하는데 농기계가 싹 타버렸다”며 “오미자밭 1000평, 자두밭 1000평도 다 타버려서 이제 뭐 해먹고 살아야 되나”라고 하소연했다.

이번 산불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경북의 경우 5개 시군에서 이날 오전 9시 기준 주택 3369채가 불에 탔고 이 중 98%가 전소됐다. 대피소 생활을 하는 이재민은 3773명이다. 농작물은 558ha가 피해를 봤고, 이 중 493ha가 사과, 자두 등 과수원에 집중됐다. 또 시설하우스 281동과 축사 51동, 농기계 1369대가 불에 탔다. 가축의 경우 돼지 2만4470마리 등 모두 5만마리가 넘게 폐사했다. 어촌 마을도 큰 피해를 입었다. 영덕에서는 어선 19척이 불에 탔고 양식장 6곳이 피해를 봤다. 영덕의 한 양식장에서는 은어 50만마리가 폐사했다. 경북 지역 산불 피해 면적은 4만5157㏊로 축구장 6만3283개와 맞먹는다. 경북도는 이번 산불 피해 규모가 2022년 동해안 산불 때(9000억원)보다 훨씬 큰 수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북에는 온 마을이 잿더미로 변한 곳도 많아 현재 피해 복구는 엄두조차도 못 내고 있다. 주민들이 일상에 복귀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경북도는 불에 탄 집과 시설물 등에 대한 피해 현장 조사가 끝나면 철거 등 수습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피해 지역이 워낙 많아 철거만 하는 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경북도는 우선 이재민들을 위한 모듈형 주택 등 임시 주거시설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경남도도 피해 가구에 임시 조립주택을 제공하고 피해 주민 1인당 30만원의 긴급지원금을 지급한다.

산불 원인을 밝히기 위한 경찰 수사도 본격화되고 있다. 경북경찰청은 이날 경북 산불로 26명의 사망자를 낸 혐의(산림보호법 위반)로 A씨(56)를 불구속 입건했다. A씨는 지난 22일 오전 11시 24분께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한 야산에 있는 조부모 묘소를 정리하던 중 불이 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의성군은 같은 날 오후 2시 36분께 안계면 양곡리의 한 과수원에서 농사용 쓰레기를 소각하다가 불을 낸 또 다른 실화자의 신원 확보에 나섰다. 의성의 안계면에서 난 산불은 남서풍을 타고 안동으로 번졌고 안평면에서 난 산불은 동해안으로 확산됐다.

경남 산청 산불을 진화하는 과정에서 공무원과 진화대원 4명이 숨진 것과 관련해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 조사도 이뤄진다. 고용부는 경남도 등의 책임 소재, 보호장비 지급 여부, 현장 투입 판단의 적절성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숨진 대원들은 창녕군 소속이지만, 현장에서는 경남도 및 산림청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의 지휘를 받았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누가 이행하지 않았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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