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 김영미 대장이 남극대륙 단독 스키 횡단에 성공했다. 대륙의 서쪽 해안인 '허큘리스 인렛'에서 출발해 남극점을 찍고 '레버렛' 빙하로 내려오는 1786㎞의 여정을 69일8시간31분에 걸쳐 홀로 완주했다. 그는 최근 매일경제와 만나 "귀국한 지 10일 정도 된 지금, 몸은 한국에 있어도 마음은 아직 남극에 있는 것 같다"며 "단독 횡단이라지만 혼자서는 달성할 수 없었던 도전"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김 대장은 한국 탐험 역사의 산증인이다. 2004년 12월~2008년 5월 한국인 최연소(28세) 7대륙 최고봉 완등을 시작으로 2013년 히말라야 암푸 1봉 세계 초등정(전 세계에서 처음 정상에 오르는 일), 2017년 시베리아 바이칼호수 단독 종단, 2023년 아시아 여성 최초로 남극점 무보급 단독 도달 등의 업적을 달성했다. 2020년에는 국가 체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체육훈장 거성장을 받았다.
그런 김 대장에게도 이번 남극 횡단은 일생의 도전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쌓은 모든 경험을 집약해야 했다. 바이칼호 종단은 남극과 유사한 환경에서 자신의 몸이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피지컬 테스트'였다. 2023년 남극점 무보급 도달은 남극의 종잡을 수 없는 기후환경 속에서 맨몸으로 얼마만큼의 식량과 장비를 끌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하는 검증의 장이었다.
1차 남극점 도달 당시 1일 식량을 1㎏, 4500㎉(두 끼 식사 및 간식 포함)씩 섭취하던 것을 이번에는 각각 820g, 3800㎉로 낮출 수 있었던 배경이다. 식단은 물리지 않고 먹을 수 있게 한식으로 개발했다. 김 대장은 "극지방에서 특히 탄수화물과 지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다른 반찬 없이 소불고기와 된장 즉석 미역국을 주식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이어 "맛을 음미한다기보다는 연료를 주입한다는 생각으로 끼니를 해결했다"고 덧붙였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수면은 안정적으로 취했다. 연중 4개월의 백야 기간에 진행했던 여정에서 매일 7~8시간을 잤다고 한다. 다만 잠을 잘 때도 몸이 각성된 상태라는 것을 느꼈다. 바람 때문에 텐트에 이상이 생길 수 있음을 매일 각오해야 했다. 날씨가 안 좋을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오전 6시 40분에 일어나 12시간 넘게 100㎏이 넘는 210㎝ 길이의 썰매를 끌고 스키로 이동했던 만큼 온몸이 긴장한 것이다.
김 대장은 "통상 12시간 넘게 남극의 바람과 햇빛에 노출되는데, 쉴 때도 앉지 않았다"며 "새벽 4시쯤 바람이 도망가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을 때 몸이 각성 상태에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바람이 거센 날은 화장실을 가기 어렵기 때문에 간식은 물론 물도 마시지 않았다"며 "남극점까지 50일 만에 도착해 식량과 연료를 채우고 20일 만에 종착지에 도달하고자, 예상한 만큼 걷지 못하면 다음 날 더 걸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소속팀 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의 지원도 큰 힘이 됐다. 노스페이스는 1997년 국내 브랜드 출범 이래 한국 산악인들의 등반과 탐험을 지원해 왔다. 김 대장의 남극 횡단 프로젝트에 필요한 모든 비용도 지원했다. 의복과 장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눈과 땀에 젖은 옷을 쉽게 말릴 수 있도록 얇은 옷을 네다섯 벌 껴입고, 양말 다섯 켤레로 70일을 지내야 했던 상황에서 노스페이스의 기술력은 빛을 발했다.
김 대장은 탐험을 하지 않을 때면 노스페이스를 운영하는 영원아웃도어의 직원으로 생활한다. 2014년 입사해 신사업팀에서 제품 개발과 성능 검증 업무를 맡고 있다. 그가 이번 '단독 횡단'을 혼자만의 힘으로 달성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김 대장은 "대학 졸업 후 10년가량 반백수로 원정을 다니면서 고민 속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다음을 준비했다"며 "보통 100일이 넘게 걸리는 이런 도전에서 다시 돌아올 제 자리가 있다는 것은 정서적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도전의 동력으로는 산을 비롯한 자연에 대한 애정을 꼽았다. 특별하게 기록을 세우고 싶은 마음보다는 자연 본연의 모습을 보는 순간이 좋아 등반을 반복하다가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탐험가나 산악인이 아니더라도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체험함으로써 삶 자체에 동기 부여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완주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지난 남극점 무보급 도달 때 신체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횡단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김 대장은 "이번 횡단으로 남극이라는 미지의 공간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고 생각한다"며 "이번에 얻은 자산을 가치 있게 활용할 수 있도록 또 한번 도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장의 이번 남극 횡단은 연내에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일반 대중에게도 공개될 예정이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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