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대 대한장연구학회 회장에 취임한 정성애 이대서울병원 염증성장질환센터장은 "'함께 성장하는 학회'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연구, 교육, 소통, 환자 중심의 철학을 고루 담아낸 학회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2년 창립한 대한장연구학회는 △염증성 장질환 △장 종양 △소장 영양 △마이크로바이옴 등 4개 전문 연구회를 중심으로 기초 및 임상 연구, 신약 개발, 진료지침 제정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염증성 장질환은 장에 만성적으로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이 대표적이며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 환자 수는 2019년 7만814명에서 2023년 9만2665명으로 5년 새 30%나 증가했다. 특히 사회경제적 활동이 가장 활발한 20~40대 젊은 환자가 전체 환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10대 중·고등학생 환자들도 많다 보니 입시부터 취업, 연애, 결혼, 출산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치료도 동시에 병행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을 치료하는 의사는 환자들의 인생 시기에 맞게 수험생 때는 학교생활을, 결혼한 환자는 가정생활에 어려움은 없는지 등을 배려하며 질환 치료에만 그치지 않고 정신적인 격려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올해 대한장연구학회 슬로건은 'GUT minds grow together' 그리고 '함성장터(함께 성장하는 장을 연구하는 터전)'이다. 최신 치료 정보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들과 '진심'을 나누는 자리가 더욱 뜻깊다는 것이 학회의 신념이다.
2013년부터 시작된 대한장연구학회의 '해피바울 캠페인'은 장질환 환자들의 어려움을 사회에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한 대표적 사례다. 정 회장은 "지금도 휴게소에서 볼 수 있는 '양보해주세요'라는 문구가 바로 해피바울 캠페인 활동의 일환으로 진행한 것"이라며 "단 한 칸의 화장실이라도 환자를 위해 양보하자는 취지였고, 이 작은 배려가 환자에게는 큰 존중으로 다가간다"고 말했다.
염증성 장질환의 치료 환경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염증성 장질환 치료는 과거 증상 조절이 치료의 목적이었지만 최근 다양한 약물이 개발되면서 장에 염증이 없는 '점막치유(Mucosal Healing)'로 치료 목표가 높아지고 있다.
생물학적 제제와 소분자 제제를 통해 점막치유를 기대할 수 있다. 최근 외국 가이드라인에서는 장 염증으로 인해 구조적인 손상이 오기 전에 적극적인 생물학적 제제나 소분자 제제 치료를 권장하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점진적인 치료를 권하고 있다.
정 회장은 "약제를 남용해서는 안되겠지만 환자 경과에 맞게 빠른 치료 변경이 가능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약제 변경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하며 "염증성 장질환은 어려운 병이지만 좋은 약들이 많이 개발됐고, 또 이 병을 잘 치료하고 도와주려는 훌륭한 의사들이 많기 때문에 혼자는 어렵고 외로운 길이지만 같이 고민하고 걸어줄 의사들이 많다는 걸 꼭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환자들에게 전했다.
대한장연구학회는 더 나은 치료 환경과 환자 중심의 치료를 위해 젊은 연구자 양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학회는 이를 위해 JUMP(Junior Upgrade Mentoring Program)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JUMP는 시니어 의사와 젊은 의사가 멘토·멘티로 매칭되어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정 회장은 "학회 내에는 '함께'라는 문화가 깊게 스며 있다"며 "실적 위주가 아닌, 후배에게 제1저자 기회를 양보하는 연구문화, 처음 방문한 회원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환대의 문화'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학회는 염증성 장질환뿐 아니라 장 종양, 대장내시경 술기, 소장 질환, 영양, 마이크로바이옴 등 장질환 연구 전반에 걸쳐 세계적인 연구자들을 길러내고 있다. 정 회장은 임기 동안 연구자들이 팀을 이루고, 그 팀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좋은 플랫폼이 되는 학회가 될 수 있도록 토양을 다진다는 각오다.
정 회장은 "대한장연구학회는 올해로 창립 23년을 맞았다. 만 22년이 지나서 23세, 사람으로 치면 제일 아름다울 때라는 생각이 든다"며 "학회 운영의 효율화를 위한 방법을 살펴보는 것도 임기 내 목표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를 실현하는 방안으로 연구지원위원회, 전산정보위원회의 효율화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학회 내에는 연구회와 이를 지원하는 연구지원위원회가 있다. 이 두 조직의 유기적 협력을 통해 주제 선정부터 연구비 지원까지 체계적으로 연결되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한다는 계획이다. 학회는 의학회로부터 두 차례 '최우수 학회'로 선정되며 학문적 공로도 인정받고 있다. 정 회장은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더 높은 도약을 준비 중이다.
정 회장은 "우리 학회가 ECCO(유럽염증성장질환학회), CCFA(미국 크론병·대장염 재단)처럼 정기적으로 진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대표 학회가 되도록 만들고 싶다"며 "K-가이드라인이 아시아 의료의 표준이 되고, 제약사와 연구자에게도 참고가 되는 글로벌 지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회원들과의 소통을 위한 '전산정보위원회'와 환자와의 소통을 위한 '섭외홍보위원회'를 통해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의료정책과 보험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지속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정윤 매경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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