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대회에선 눈 부상 딛고 2관왕,
한체대 4학년 재학중…선수와 학업 병행

“올해 초 세웠던 목표가 우승 3번인데 벌써 2번 우승했으니, 지금부터 3번 더 우승하는 걸 목표로 잡겠습니다.”
허채원(23, 한체대)이 여자3쿠션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마지막 전국대회에서 처음 우승컵을 들더니 올 첫 전국대회서도 정상에 올랐고, 곧이어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아캐롬선수권까지 제패했다.
허채원은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전국대회서 4번(2위 2회, 공동3위 2회) 입상하고 국내 1위(2023년 5월)까지 올랐지만 정작 우승과는 인연이 닿지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대한체육회장배’에서 처음으로 정상을 찍었고, 이후 4개월만인 2025년 3월 ‘국토정중앙배’서 우승한데 이어 ‘아시아캐롬선수권’까지 석권하며 전성시대를 맞고 있따.
허채원은 지독한 노력파다. 선수와 대학생활을 병행하면서도 둘 중 어느 하나 게을리하지 않는다. 쉬는날 없이 서울 각지를 돌며 레슨과 연습, 플레이어 활동을 하면서도, 학교(한체대)에선 지난 3년 동안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다. 심지어 지난해엔 ‘과탑’까지 찍었단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허채원을 서울 서초동 비쿠라운지 큐스코파크에서 만났다. 허채원은 이곳에서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다.

▲전국대회에서 2연속 우승이다. (허채원은 지난해 11월 ‘대한체육회장배’에 이어 지난 3월 ‘국토정중앙배’에서도 우승컵(여자3쿠션)을 들었다)
=너무 기쁘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특히 지난해 ‘대한체육회장배’에선 결승무대를 밟은게 딱 2년만이었고,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우승 기회가 올지 몰라 부담감이 상당했다. 그런데 운 좋게 우승했고, 연이어 정상을 밟아 주변에서 축하를 정말 많이 받았다.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이 날 배신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에 더해 국제대회인 ‘아시아캐롬선수권’까지 우승했다. 특히 국가대표로서 우승해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물론이다. 국제대회 우승이 처음인 건 물론,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것에 자부심이 생겼다. 국가대표는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그만큼 부담도 상당했지만 극복해냈고, ‘내가 생각보다 굉장한 업적을 달성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아캐롬선수권 시상식에서 안대를 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국토정중앙배~아시아캐롬선수권 동안 눈 부상을 앓았다. 국토정중앙배 때 눈에 다래끼가 났고,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시아캐롬선수권이 개막할 즈음부터는 눈이 점점 더 부었고, 8강부터는 눈에 고름이 차고 시력까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대회 끝나고 부랴부랴 병원에 달려가니 ‘알러지성 접촉 피부염’이라고 하더라. 증상은 그로부터 2~3주 정도가 지나고서야 좀 나아졌다. 회복하는데 정말 애를 먹었다.
▲대회 시작 전부터 증상이 심했는데 대회에 계속 출전했고, 우승까지 했다.
=신체적인 제약도 많았지만, 멘탈도 많이 흔들렸다. 아무래도 여자 선수이다 보니 방송경기라는 점에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는데, 경기 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주눅도 많이 들었다. 게다가 스스로의 실력에 대해 의심까지 들게 했다. 그렇지만 나는 절대 포기하는 성격이 아니다. 계속해서 대회를 치르기로 했고, 4강과 결승은 정말 운 좋게 넘었다.
▲최근 상승세에 특별한 계기가 있는건 아닌지.
=아주 특별한 계기는 아니지만 돌아보면 훈련 방식에 변화를 준게 통한 것 같다. 2023년 8월부터 조흥래(서울) 선생님께 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선생님께 레슨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단점을 제대로 알게 됐고, 무엇을 위주로 훈련해야 할지 깨닫게 됐다. 이때부터 내게 부족한 기본기와 하이런 등에 초점을 맞춰 훈련했다. 이로써 수지도 28점에서 30점으로 올랐다. 일반적으로 당구인들이 가장 오르기 힘들다고 하는 점수대를 넘어선 것이다. 이런 발전상이 상승세로 이어지고 있다. 선생님께 너무 감사하다.
“스포츠 관련 석박사 학위, 교수직도 관심”

▲지난해 말 전국대회서 처음 우승하기까지 부진이 길었다. 이 시기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심리상태가 정말 좋지 않았다. 최상위권 선수를 보면 벽이 느껴졌고,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도 컸다. 특히 첫 우승 전까지 가장 부진했던 1년여 동안은 ‘당구가 내 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당구를 시작한 계기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정말 좋아했다. 초등학생 땐 학교 핸드볼부에 들어가 선수의 꿈을 키웠는데, 무릎부상으로 그만뒀다. 이후 중학교 2학년 즈음 어머니가 당구를 권하셨다. 아무래도 부상이 있다 보니, 다소 정적인 종목을 찾으셨던 것 같다. 당시엔 일단 공부하는 것 보단 좋으니 당구를 치기 시작했다. 4구, 포켓볼을 안치고 곧바로 3쿠션으로 입문해 초반엔 이해도가 거의 없었고, 고등학교 입학하고서부터 진지하게 당구를 대했다.
▲여자 당구선수로서 고충을 꼽자면.
=아무래도 고충이 많다. 어려서부터 나이 차이가 많은 삼촌들과 당구 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직업으로서도 쉽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PBA 출범 이후에는 당구연맹 여자선수들이 LPBA 선수들과 비교도 많이 된다. 실력이야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지만, 방송노출 홍보수단 등에서 비교적 적은 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당구연맹 새 집행부에 대한 선수들의 기대가 굉장히 크다.
▲연맹서 뛰던 적지않은 여자선수들이 프로행을 택하고 있다.
=선수는 몸값을 존중 받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면에서 연맹서 뛰던 선수들이 프로행을 택하는 것을 안 좋게 이야기할 이유는 없다. 다만 현재로서 나는 아직 LPBA 생각이 없다. 스스로 실력, 체급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라 느껴진다. 다만 향후 상황과 조건이 맞는다면, 프로행 도전을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여자 당구선수에 대한 주목도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그만큼 실력자들도 늘고 있는 상황이 부담되지는 않는지.
=연맹 소속 여자선수 실력이 꾸준히 상향평준화되는 추세다. 정말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대한당구연맹 서수길 회장님께서 취임사에서 “젊은층과 여성, 관중이 없는 스포츠는 성공하지 못한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현재 당구종목이 그런 상황이다. 어리고 유능한 선수들이 많이 배출돼야 당구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도 더 노력해 경쟁력있는 선수로 성장하고, 나중엔 나를 보고 당구를 시작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수와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데 학교성적도 뛰어나다고.
=한국체대 경기지도학과에 재학 중이고, 올해 4학년이 됐다. 선수와 학교생활을 최대한 완벽하게 병행하고 싶다. 그래서 아직까지 휴학한 적도 없고, 2학년 땐 학생회 활동도 했다. 스스로 말하기는 좀 부끄럽지만,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장학금도 받고 있고, 과탑도 한 번 찍어봤다. 현재까지 평균학점은 4.3 정도다.
▲선수로서 일정도 바쁜데 버겁지는 않나.
=아무래도 방학과 학기 중에 일정이 다르다. 방학 땐 거의 매일 당구장에 9~10시간 정도 있고, 요즘 같은 학기 중엔 학교 끝나는 대로 당구장에 가 밤 10~11시까지 연습한다. 일주일 단위로 보면 서초 비쿠라운지에서 플레이어로 이틀, 합정 노블캐롬클럽에서 레슨과 게임하며 이틀을 보낸다. 나머지 3일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성남시 서진당구장에서 연습한다.
전체적 일정이 굉장히 빡빡하고, 학업과 선수생활을 병행하는게 힘에 부칠 때도 많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싶다. 동료 선수와 학생들에게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학구열이 높은 편이다. 졸업하면 스포츠 분야 관련 석사, 박사 학위도 따고 싶고, 교수로도 활동하고 싶다.
올해 목표 전국랭킹 상승, 우승컵 3개 추가
▲당구 외에 취미가 있나.
=딱히 없다. 그나마 스스로 꾸미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최근 피부염에 걸려 그것도 못 해 심적으로 더 힘들었다. 최근엔 좀 더 동적인 취미를 찾아보려 하고 있다.
▲롤모델이 있다면.
=어릴적 인터뷰할 땐 이미래 김가영 선수를 꼽았다. 물론 여전히 좋아하는 선수들이지만, 지금은 딱히 없다.
▲친하게 지내는 선수는.
=전국대회 출전할 때면 홍선희 선수와 함께 다니며 가장 가깝게 지낸다. 그 외 최봄이 김하은 박세정 선수 등 연맹 선수와 두루두루 친하다.


▲자신의 장점을 꼽자면.
=꾸준함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공을 칠 때 감각적인 부분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테이블 파악에 좀 약하다.
▲용품은 뭘 쓰나.
=큐는 파이스트(FAREAST) 하대, 풍신(FUHJIN) 상대를 쓴다. 이 밖에 쉐빌로뜨(테이블)와 지난 5년 동안 함께하고 있고, 실크로드시앤티로부터는 3년 동안 장학금을 받고 있다.
▲올해 목표는.
=일단 전국랭킹(현재 5위)을 더 올리고 싶다. 그리고 올 초 목표가 3번 우승하는 거였는데, 이미 2번 우승 했으니 지금부터 3번 더 우승하는 걸 목표로 잡겠다. 수지도 현재 30점인데, 35점 가깝게 끌어올리고 싶다.
▲고마운 분들게 한마디.
=일단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저로 인해 많이 웃으셨으면 좋겠고, 앞으로도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다. 지난 5년 동안 후원해주고 가족처럼 대해주시는 쉐빌로뜨(노블스틸) 강인용 회장님께 사랑한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지난 3월부터 파이스트, 풍신 큐를 쓰게 됐는데 믿고 후원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이 큐를 들고 바로 우승해 뿌듯하다. 장학금 후원해주시는 실크로드시앤티와 유니버셜코리아 박석준 대표님, 박인덕 과장님, 제게 공을 가르쳐 주시는 조흥래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팬 여러분께도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선수라는 걸 보여드리겠다. [김동우 MK빌리어드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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