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칩 워] - 9화: 테슬라의 차세대 반도체 AI5 FSD

테슬라 자율주행차에 탑승한다면, 운전석에 앉아도 관찰자 같은 느낌이 먼저 들 것입니다. 시동을 걸고 목적지를 입력한 후, 기어를 조작하는 순간, 차량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출발합니다. 핸들은 자연스럽게 돌아가고, 액셀을 밟지 않아도 차량은 신호에 맞춰 출발하고 멈추며, 앞차 와이 거리를 유지합니다. 이뿐 아닙니다. 비보호 좌회전과 유턴을 척척 해냅니다.
테슬라는 어떻게 이런 자율주행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요. 바로 반도체의 힘 때문입니다. 테슬라는 작년 11월부터 자율주행 컴퓨터인 AI4가 탑재된 차량에 FSD v13을 배포했는데요. FSD v13은 도심과 고속도로 주행 시 자동 속도 조절, 충돌 방지 예측 등 다양한 자율주행 기능을 제공해주는 소프트웨어입니다.

그전에도 완벽하진 않았지만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AI3(HW3) 시대 테슬라 차량도 이미 고속도로에서의 자동차선 변경, 차간 거리 유지, 자동 주차 등 일부 자율기능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AI4가 탑재된 차량은 자율주행의 정밀도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는 막대한 하드웨어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장착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AI4의 가장 큰 발전 포인트는 ‘인식 능력’ 입니다. 예전에는 1.2메가픽셀(MP) 정도의 비교적 낮은 화질 카메라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5메가픽셀(MP) 이상의 고해상도 카메라를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습니다. 또 일부 모델에서는, 레이더 센서를 달았는데요. 레이더는 눈이나 비 같은 악천후 속에서도 장애물이나 차량, 사람 등을 감지할 수 있게 해줍니다.
AI4 컴퓨터는 이런 눈과 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판별해주는 두뇌입니다. AI4는 HW3보다 최대 40배 이상 높은 컴퓨팅 파워를 자랑합니다. 이는 주행 중 수집되는 막대한 영상과 센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능력이 대폭 향상되었음을 가리킵니다.
테슬라는 그동안 테슬라 컴퓨터(반도체)에 대해 HW라는 명명을 했습니다. HW1, 2, 3까지 이어지다 최근 들어 AI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만큼 AI 학습을 완료한 반도체라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칩의 성능은 ‘TOPS’라는 단위로 측정합니다. TOPS(Tera Operations Per Second)는 초당 1조 번의 연산 성능을 가리킵니다. HW3에 들어간 칩은 약 72 TOPS, AI4에서는 300~500 TOPS로 크게 향상됐습니다. 현재 개발 중인 AI5는 최대 2000 TOPS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무려 초당 2000조번의 연산이 가능해진다는 뜻입니다.

판단과 연산은 자율주행 분야에서 동의어입니다. 예를 들어 좌회전 우회전을 한다고 해보겠습니다. 이 한 번의 과정을 위해서 △카메라와 레이더로 주변 차량, 보행자, 신호등, 도로 표시 감지 △ 회전 각도와 속도 계산 △ 주변 차와 충돌하지 않도록 경로 예측 △날씨나 노면 상태 반영 △돌발 상황 대비한 시뮬레이션 등이 필요합니다. 회전 한 번도 수십억 번의 연산이 필요한 셈입니다.
연산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칩의 구조가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테슬라는 여러 개의 연산 코어를 하나의 모듈로 통합한 ‘멀티칩 모듈(Multi-Chip Module, MCM)’ 아키텍처를 채택하고 있는데요. 각 칩은 고속 메모리와 고대역폭 데이터 버스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합니다. 이에 힘입어 복잡한 센서 데이터나 비디오 입력을 병목 없이 처리할 수 있는 것이죠.
현재 AI 시리즈는 테슬라가 설계하고, TSMC가 위탁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격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공개된 바는 없지만, 업계 추산에 따르면 AI4는 개당 1000달러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테슬라의 반도체 도전 역사는 거의 10년이 다 돼 가고 있습니다. 짧게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 2016~2018년: 첫 자율주행 플랫폼의 시작 (HW1HW2.5)
테슬라는 초기 자율주행 시스템에서는 모바일아이(Mobileye)의 아이큐(EyeQ)3 칩 기술에 의존했습니다. 하지만 2016년 이후 독립적인 자율주행 개발을 선언합니다. HW2 플랫폼부터는 엔비디아 PX2 기반 GPU를 썼는데요. 점차 자율주행 알고리즘 개발을 시도하게 됩니다. 데이터를 수집한 것 역시 이 무렵입니다. HW2.5는 수많은 차량에 탑재됐고 이를 통해 테슬라는 방대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 2019년: 완전 독립 선언, FSD 칩 등장 (HW3)
테슬라는 처음으로 완전히 자체 설계한 FSD(Fully Self Driving) 칩을 공개합니다. 당시 삼성전자가 14nm 공정으로 제조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연산 성능은 약 72 TOPS로, 당대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FSD 칩을 이중화 구조로 탑재해, 안정성과 신뢰성을 높였고요. AI 처리, 비전 시스템, 센서 데이터 통합 분석 전용 설계 주변을 놀라게 했습니다. 차량 내 모든 판단을 실시간 처리하는 ‘온보드 AI 칩’ 시대를 연 것입니다. 해당 칩은 Model 3, Y, S, X 대부분에 탑재되었습니다.
■ 2023년: 성능 도약, AI4 플랫폼 공개
테슬라는 AI4를 일부 차량에 도입했습니다. 현재 버전입니다. AI4는 약 300~500 TOPS 성능을 갖추고 있으며, 더 정밀한 고해상도 카메라, 레이더, 초음파 센서를 지원하도록 설계했습니다. AI4는 순수 비전 기반에서 센서 퓨전(Sensor Fusion)으로 전략이 바뀐 첫 칩이기도 합니다.
■ 2025년 (예정): AI5 테슬라 자율주행의 전환점
AI5는 2025년 말 양산이 예정된 테슬라의 차세대 자율주행 컴퓨팅 플랫폼입니다. AI4보다 약 10배 이상 높은 성능인 2000~2500 TOPS 이상의 연산 능력을 제공할 예정인데요. 완전 자율주행을 위한 핵심 인프라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V2X 통신, 고속 센서 인터페이스 등 확장성을 고려한 칩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차량 내 AI 추론 엔진뿐 아니라, 코텍스(Cortex)와 강한 연동도 시사합니다.
■ 2027~2030년: AI6, AI7이 몰려온다
머스크는 올해 3월 테슬라가 AI5, AI6, AI7 시리즈를 단계적으로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요. 테슬라가 반도체를 단순히 차량용 부품이 아닌, 자율지능(AI) 생태계를 위한 핵심 플랫폼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AI6는 2027~2028년에 나올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5000~6000 TOPS 이상의 연산 능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이 됩니다. 그럼 A17은? 1만 TOPS가 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능이 100%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자율주행차는 ‘정형화된 상황’에 강하지만, 도로 공사나 비정형적인 교차로, 비상 상황 등에서는 인간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이는 AI가 아직 ‘유추와 해석’보다는 ‘학습된 패턴’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도로에 임시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거나, 공사로 인해 기존 차선이 지워졌을 때 AI는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판단을 유보한 채 ‘비상 정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테크놀러지가 늘 그래 왔듯이 이 마저도 언젠가 극복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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