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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AI위원회가 20일 발표한 'AI 컴퓨팅 인프라 확충을 통한 국가 AI 역량 강화 방안'은 이 같은 3가지 화살을 한꺼번에 쏴 '월드 베스트 LLM'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형 챗GPT라는 과녁에 명중시키지 못한다면 글로벌 AI 경쟁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에서 나왔다. IT 업계는 국가나 기업이 독자적인 인프라와 데이터를 활용해 AI 역량을 구축하는 이른바 '소버린 AI'를 발 빠르게 만들지 않으면 국내 AI 생태계가 오픈AI·딥시크 등 해외 기업에 종속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는 이른 시일 내에 세계 최고 수준의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하고, AI 핵심 인재 양성과 해외 우수 인재 유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책에서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둔 화살은 AI 인프라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엔비디아 고성능 AI 반도체 'H100'의 국내 보유량은 2000여 개에 그친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메타가 보유한 15만개에 견줘보면 75분의 1에 그친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최첨단 GPU 1만8000장을 구매하기로 했으며, 2027년까지 GPU 3만장을 확보하기로 했다. 여기에 투입되는 자금은 최대 2조원 수준이며, 이를 통해 정부는 급한 불을 끌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엄열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관은 "메타의 라마나 챗GPT 3.5가 그 정도를 갖고 학습했다고 알려졌다"며 "늦더라도 3만장은 필요할 것으로 보고 목표를 세웠다"고 밝혔다.
다만 이는 미국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통해 AI 데이터센터에 730조원을 투자하고 유럽연합(EU)이 'AI 기가팩토리 프로젝트'를 포함해 300조원을 투입하는 것을 감안하면 규모 측면에서 여전히 차이가 크다는 지적이다. IT 업계에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와 같은 각오로 100조~200조원을 투입하지 않으면 사실상 지금 수준으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AI 스타트업을 집중 지원해 2027년까지 유니콘 기업 5개를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이날 발표했다. 우수한 인력이 창업한 AI 스타트업을 지원해야 장기적으로 우수 소프트웨어 인력이 배출될 것이라는 복안에 따른 것이다. 딥시크의 개발 주역인 량원펑, 뤄푸리 같은 스타 개발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복잡한 LLM 알고리즘을 효율화하기 어렵다. GPU를 대규모로 확보하더라도 알고리즘의 효율성이 떨어지면 챗GPT 같은 우수한 LLM 모델 구축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인재 확보를 위해 먼저 정부는 글로벌 AI 경진대회를 개최해 우수한 해외 인력을 발굴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또한 미국에 이어 유럽과 중동 등으로 '글로벌 AI 프런티어랩'을 확대하고 기업·대학이 공동으로 설립해 직접 소프트웨어 인력을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다만 이런 수준으로는 우수한 소프트웨어 인력을 끌어오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세계 상위 20% AI 연구원 가운데 한국이 배출하는 비율은 2% 수준에 그치는데, 이는 임금 차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에서 박사급 AI 연구원 초봉은 지난해 기준으로 12억원 수준인 것에 비해 한국은 3분의 1인 4억원 안팎에 그친다. 이런 탓에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도 부족한 AI 인력은 8579명에 이른다.
정부는 AI 활용을 높이기 위해 개인정보보호법 등을 합리적으로 적용해 적법 처리 근거도 확대하기로 했다. 공공 분야에서 보유한 고품질 데이터 공개를 확대해 의료, 법률 등 특정 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AI 모델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외부로 공개하기 어려운 데이터라도 가명 처리를 통해 기업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데이터 개방에 적극적인 공공기관은 평가에서 적절히 인센티브를 부여하면 AI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평가다.
오순영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 AI미래포럼 공동의장은 "제조업과 의료 등 한국이 우수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 분야에서 글로벌 수준의 AI 모델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식 기자 / 정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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