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S&P 500)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24배를 넘어섰다. 1년 전 같은 기간(22.3배)은 물론이고 지난 10년 평균인 18.5배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주가수익비율은 주가를 주당순이익(EPS)으로 나눈 값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주가가 고평가된 상태라고 해석한다. 이에 시장에선 미국 증시 비관론이 불거진다.
물론 반박의 목소리도 거세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대부분은 2025년 말 S&P500지수가 6500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본다. 현재보다 10% 이상 높은 수치다. 결국 투자자 자금이 몰릴 곳은 미국 증시뿐이라는 게 낙관론 진영의 주장이다.
비관론 1 역사는 반복된다
급등 뒤 폭락했던 2022년
비관론을 외치는 이들의 주요 논리는 과도하게 오른 만큼 조정받을 시점이 다가왔다는 주장이다. 근거가 없진 않다. S&P500 연간 상승률 추이(Annual Returns)를 살펴보면 최근 10년(2015~2024년) 동안 S&P500은 7번 오르고 3번 내렸다. 이 중 하락폭이 두드러진 때는 단연 2022년이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ed)의 금리 인상을 중심으로 고강도 긴축이 이뤄진 2022년 낙폭은 19.4%에 달했다. 또 다른 하락 시기인 2015년(-0.7%), 2018년(-6.2%)과 차이가 크다.
주목할 대목은 2022년 직전 3년간 S&P 상승률이다.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S&P500 연간 상승률은 고공행진했다. 2019년 28.8%를 시작으로 2020년 16.2%를 기록했다. 2021년에도 26.8%로 집계됐다. S&P500 상승률의 최근 10년 평균치(12.1%)를 훌쩍 넘어섰다. 2023년(24.2%), 2024년(23.3%)과 비교해도 소폭 우위다. 하지만 호황 끝에는 폭락(2022년)이 있었다. 이번에도 같은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게 비관론자 주장이다. 벤자민 보울러 뱅크오브아메리카 애널리스트는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증시 호황은 가장 강력한 폭락으로 이어졌다”며 “현시점에서 폭락을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경고했다.
특히 2022년과 마찬가지로 2025년 역시 통화 정책이 변수로 떠오른 점이 비관론에 힘을 보탠다. 변수의 근원은 트럼프 2기다. 선거 과정에서 강조한 대규모 관세 부과와 각종 세금 인하, 규제 완화는 재정적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상태에서 연준이 금리 인하 기조를 밀고 나갈 경우, 인플레이션 우려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정책 방향성을 바꾸거나 연준이 통화 정책 기조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 결국 연준은 금리 인하 기조 재검토에 돌입했다. 연준은 지난해 9월 2025년 금리 인하 횟수를 4회로 예고했지만 최근 2회로 조정했다.
국내 증권사 일각에서도 고점론을 외치는 목소리가 나온다.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은 “S&P500지수는 현재 밸류에이션 부담이 존재하는 상황”이라며 “금리 인하 기조가 조기에 종료될 수 있다는 점과 트럼프발 불확실성이 변수”라고 꼽았다.
비관론 2 인적 지표 변화
증시에서 발 빼는 워런 버핏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도 최근 시장 과열에 대한 경고 신호를 보냈다.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지분 보유 현황 보고서(Form 13F)를 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버핏의 애플 주식 보유량은 3개월 만에 25% 감소했다. 4분기 연속 매도다. 이뿐 아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3250억달러의 현금을 보유 중이라고 밝혔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그러면서 주주 서한과 연례회의 등을 통해 거듭 ‘투자할 만한 매력적인 기업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주식 대신 채권을 매입하고 있다는 점도 달라진 대목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워런 버핏이 22년 만에 채권으로 피벗(Pivot·방향 전환)한 것은 미국 주식에 대한 분명한 경고의 신호”라고 평가했다.
월가의 ‘헤지펀드 거물’ 댄 나일스 사토리펀드 설립자도 증시에서 발을 빼는 모습이다. 댄 나일스는 미국 CNBC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2025년 최선호 자산으로 ‘현금(Cash)’을 꼽았다. 댄 나일스는 “시장 변동성에 대비해 포트폴리오에서 현금 비중을 늘리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며 “가장 마지막으로 현금을 선택했던 시기는 지난 2022년이었고 당시 시장은 19% 이상 급락했다”고 설명했다. 역발상 투자로 이름을 알린 호주의 윌리 패커도 미국 증시 붕괴를 우려했다. 윌리 패커는 투자자 서한에서 “대규모 현금 보유가 최근의 성공 공식은 아니지만, 위험한 환경에서 주식 비중을 늘리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낙관론 1 흔들림 없는 빅테크
견고한 펀더멘털…CAPEX 유지
미국 증시 비관론을 반박하는 의견도 상당하다. 2024년 미국 증시 호황을 이끈 유동성의 근원 중 하나는 빅테크의 AI 투자금이다. AI 패권 전쟁 승리를 위해 빅테크가 설비투자(CAPEX) 규모를 빠르게 키웠고 자금이 흘러 들어온 인프라 기업을 중심으로 실적이 개선, 증시에는 온기가 돌았다. 다만 비관론 진영을 중심으로 2025년 빅테크가 설비투자를 줄일 것이라는 예상이 터져 나왔다. 이 같은 의문을 처음 던진 곳이 미국 벤처캐피털(VC) 세콰이어캐피탈이다. 2023년 9월과 2024년 6월 두 보고서를 통해 빅테크가 AI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면 AI 산업 전반에서 수천억달러 매출이 발생해야 하지만, 현재는 1000억달러도 안 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빅테크는 결국 ‘투자 지속’을 선택했다. 빅테크 대부분이 지난해 3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2025년 설비투자 규모를 늘릴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AI 시장을 바라보는 빅테크 시선은 달라진 게 없다는 의미다. 메타는 2025년에도 현재 설비투자 규모 흐름이 이어질 것(We continue to expect significant capital expenditures growth in 2025)이라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구체적 수치를 밝히진 않았다. 다만 “설비투자 규모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는 점을 분명히 언급했다. 아마존도 마찬가지다. 아마존은 “연간 설비투자 규모는 2025년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설비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건 견고한 펀더멘털 덕분이다. 비관론 진영은 2025년 매그니피센트7으로 대표되는 빅테크의 연간 이익 증가율(18%)이 2024년(34%) 대비 감소할 것으로 판단, 비관론 주장 근거로 내세운다. 다만 이를 다르게 바라보면 여전히 연간 이익 증가율이 두 자릿수라는 의미다. 빅테크가 설비투자 규모를 늘릴 여력은 충분하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증시 고점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빅테크를 중심으로 AI 관련 투자와 이에 따른 고성능 반도체 수요 등이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실적 성장성은 물론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가 지속되고 있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낙관론 2 재귀성 이론
투자 심리가 호황 이끌어
투자자 심리 등을 고려하면 큰 폭의 하락은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있다. 김성환·오한비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재귀성 이론’을 앞세워 미국 증시 가격 우려에 반론을 제기했다. 재귀성 이론은 ‘헤지펀드 대부’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가 제시한 개념이다. 증시의 경우 기업 수익이나 경기 전망 같은 실질적 수치뿐 아니라 투자자 등 시장 참여자의 오류나 편견이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시장은 늘 모든 정보를 객관적으로 반영해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 등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재귀성 이론의 핵심은 PER과 EPS가 상호 강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① 주가가 오르면 기업의 자금 조달이 쉬워지고 ② 이 돈으로 기업이 투자를 늘리면 EPS가 개선된다. ③ 시장 참여자는 개선된 EPS를 긍정적 신호로 보고 또 투자한다. ④ 업황은 임계치에 이를 때까지 호황을 유지한다는 논리다. 김성환·오한비 애널리스트는 “재귀적 순환이 끊어지고 가격 버블이 시작되려면 공급 과잉 위험이 본격화해야 한다”며 “하지만 현재 미국을 주도하는 산업 중 공급 과잉이 우려되는 부문은 많이 없고, 신규 플레이어의 진입도 제약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이미 오를 만큼 올랐고, 높은 PER로 미국 증시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고 말할 환경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끄는 주요 기업 대부분이 미국 증시에 상장돼 있다는 점도 이 같은 논리에 힘을 실어준다. 기업 국적은 다르지만 어쨌든 미국 증시를 거쳐야 투자가 가능하다. 엔비디아와 빅테크를 중심으로 한 AI는 물론이고, 양자컴퓨터를 이끄는 아이온큐와 인텔·구글 등도 모두 미국 증시에 상장됐다. 엔비디아 대항마로 꼽히는 주문형 반도체(ASIC) 주요 기업 브로드컴·마벨테크놀로지도 결국 미국 증시를 통해야 투자가 가능하다. 자금이 미국 증시로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성환·오한비 애널리스트는 “미국 증시에선 보안과 ASIC, 네트워크 하드웨어 등 다양한 턴어라운드(실적 개선) 테마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며 “동시다발적인 턴어라운드 테마의 출현은 긍정적 요소”라고 설명했다.
결국 AI…엔비디아·브로드컴 주목할 만
미국 증시에 투자한다면 어떤 종목을 눈여겨봐야 할까. 증권가에서는 2025년에도 결국 인공지능(AI) 중심으로 흘러갈 것이라 내다본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1분기에는 AI 반도체를 앞세워 높은 성장성이 예상되는 실적주에 관심 갖는 게 좋다”며 “엔비디아와 엔비디아 대항마로 꼽히는 브로드컴, 넓게 보면 ARM 등도 주목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브로드컴은 주문형 반도체(ASIC) 진영 대표 주자로 빅테크의 자체 칩 설계를 돕고 있다. 그간 모바일 시장에 집중하던 ARM도 최근 PC와 서버용 시장으로 영향력을 확대, 실적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서버용 시장 내 ARM 기반 중앙처리장치(CPU) 점유율은 우상향 중이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도 AI와 반도체 섹터를 꼽았다. 박 센터장은 “여전히 AI와 반도체에 긍정적 관점을 가질 만하다”며 “AI 에이전트 트렌드가 본격 확산돼 AI 생태계 전반의 성장과 확장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창용 신한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도 “1분기 미국 증시에선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봐야 한다”며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좀 더 넓게 보면 팔란티어와 앱러빈 등을 주목한다”고 조언했다. 팔란티어와 앱러빈은 대표적인 AI 소프트웨어 업체다. AI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분석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팔란티어는 방산, 앱러빈은 마케팅에 특화돼 있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3호 (2025.01.15~2025.01.21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