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Actor Bad Actor]미워할 수 없는 악역 어워드…하반기 가장 매력적인 악역은 누구?
박찬은
기사입력:2012.10.17 10:21:47
최종수정:2012.10.17 10:21:47
착한 역으로 나와도 주는 것 없이 미운 배우가 있고, 매우 입체적으로 주인공을 괴롭히는 역이라도 왠지 정이 가는 배우가 있다. 권선징악의 코드를 뒤집고 싶은 4/5분기 가장 매력적인 악역을 모았다.
원조독설상 <남자의 자격>과 <힐링캠프> 이경규
얼핏 보면 SBS<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의 독설 담당은 선배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엉뚱한 독설을 내뱉는 막내 한혜진 같지만 고위급 정치인이나 중견배우 같은 출연진의 경우, 공력이 깊은 이경규가 공격을 담당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또 한혜진이 채시라 같은 대선배 출연진 앞에서 주눅들 때 구원투수로 나서는 것도 바로 그다.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에서 철인3종경기 훈련에 나선 이윤석이 사실은 일부러 넘어졌다는 사실을 귀신같이 알아챈 이경규는 주상욱에게는 “아무리 차려 입어도 A급은 아니다”라는 독설을 퍼붓는다. 새로 합류한 김준호에게는 사사건건 ‘하차’를 담보로 한 내기를 추천하며, 계속 튀려고 무리수를 두는 그에게 ‘너 때문에 3류로 전락하고 있잖아” 등 ‘형광등 100개를 켠 듯한 ‘진정성’ 넘치는 독설을 보여줬다.
예능계에 독설라이벌 김구라가 돌아왔으니 이제 박명수와 함께 긴장 타야 할 듯. 오래는 가지만 뜨겁지는 않다는 것이 이경규의 고민.
악역 아우라 ★★★★★살신성인상<용의자 X> 류승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용의자X>에서 류승범은 짝사랑하는 여주인공 이요원의 살해 누명을 벗기기 위해 노력하는 천재 수학자로 등장한다. 천재지만 현재는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석고(류승범)는 어느 날 옆집에 이사 온 화선(이요원)이 폭력을 견디다 못해 전애인을 죽인 것을 알게 된다.
석고는 짝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설계하지만 담당형사 민범(조진웅)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화선을 집요하게 추적하는데… 관객들은 사이코같은 석고가 과연 어떤 알리바이를 만들었을지, 점점 조여오는 친구 민범의 수사망을 어떻게 벗어날지, 다른 남자를 만나는 화선을 죽이지는 않을지 궁금해한다. 그러나 영화 후반에서의 반전은 그가 사랑을 모르는 사이코패스일 거라는 상상을 무너뜨린다.
사랑 앞에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을 다 버리고 쓸쓸히 떠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에 관객들은 살인자라고 돌을 던질 수만은 없게 된다. ‘류승범이 류승범을 버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연을 펼친 그는 말 그대로 ‘완벽한 사랑’을 보여줬다.
악역 아우라 ★☆☆☆☆마초 포텐 폭발상<위험한 관계> 장동건
사실 ‘불혹의 귀요미’ 열풍을 몰고 온 SBS<신사의 품격> 전까지 장동건은 너무 청순했다. 여자의 허리를 둘러도, 키스를 해도 <마지막 승부>에서의 착한 대학생 느낌이 남아있었고, 영화 <태풍>(2005)에서 아무리 거친 해적의 느낌을 표현하려 해도, 타고난 비누 냄새를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2012년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찌질한 신품 김도진을 통해 장동건은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진지한 이미지를 벗어 던진다. 그리고 중국 박스 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 <위험한 관계>에서 드디어 그의 마초 포텐이 폭발한다. 줄 듯 하다 한발짝 물러서는 나쁜 남자의 거짓눈물, 귓속말하며 한 쪽 입꼬리만 올라가는 미소. 위트에 섹시함까지 겸비한 당대 최고의 플레이보이 ‘셰이판’으로 분한 장동건은 모지에위(장백지)의 마음을 걸고 정숙한 미망인 뚜펀위(장쯔이)를 꼬시기 시작한다. 게다가 사랑 갖고 장난 치면 혼난다는 교훈을 주는 <위험한 관계>를 보고 극장을 나설 때 여성관객들은 그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진다. 자신이 사랑에 빠진 줄도 모르고 여자를 떼내려는 순정마초의 눈물 말이다.
그나저나 그가 신품 때보다 훨씬 ‘덜’ 늙어 보이는 것은 허진호의 마술일까, 수염을 붙인 분장팀의 능력일까?
악역 아우라 ★★★★☆니가 갑이다 상<슈퍼스타K4> 싸이
한국 가수 최초로 영국과 중국 음반 차트 1위, 빌보드 차트 2위에다 유튜브 조회수 4억회를 돌파한 가수. CF 제작사가 그를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촬영을 하고, 대중가수 최초로 시청 콘서트가 뉴스 채널로 생중계된다. 거기다 <슈퍼스타K4> 심사위원까지 맡았다. 제작발표회에서 연출을 맡은 김태은 PD는 싸이의 독설이 이승철보다 4배는 강하다고 말한 바 있다. “듣기 싫어요” “화가 나네요” “개선을 안 했거나 소질이 없거나 둘 중 하나야” “어차피 떨어질 거다” “무기가 없다” “가수가 되고 싶으면 오늘처럼 노래하면 안 된다” 범람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밀리고 예전보다 엉성한 편집에도 불구하고, 슈퍼스타K4에 시선을 돌리게 되는 것은 싸이의 존재감 때문이다.
특유의 양스러움과 똘끼, 거기에 히트곡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능력, 냉철한 분석력에 새롭게 덧붙여진 월드스타로서의 존재감이 그의 독설에 신빙성을 싣고 있는다. 싸이는 개성만을 무기 삼는 지원자들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들고 있다.
악역 아우라 ★★☆☆☆용감한 여자상개그콘서트 신보라
머리카락에 묻은 라면국물을 쩝쩝 빨고, 뉴스에 출연해 남자 앵커에게 “손범수 포에버!”라고 외치고, <남자의 자격> 새 지휘자 금난새 앞에서 “박칼린 포에버!”라고 외칠 수 있는 연예인이 얼마나 있을까?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과 ‘생활의 발견’ 무대 위에 섰을 때 그녀는 온몸을 던져 산화한다. 게다가 노래도 잘하고, 외모도 그만하면 보통 이상이다.이병헌에겐 “미인 킬러”, 톱모델 장윤주에겐 “아방가르드한 몸매에 건멸치”, 전현무에겐 “개그하려면 시험 봐서 들어와”, 미쓰에이 수지에겐 “너보다 브라우니가 인기 많아”라는 독설을 던진다. 그녀의 독설은 요즘 대세 브라우니도 피해갈 수 없다. “요새 인기 좀 있다고 선배가 불러도 대꾸도 안하고 어깨에 솜 좀 들어갔던데. 잘 들어. 선배 상근이 기억하나? 잘 나갈 때 잘해라. 한 방에 훅 간다. 몰래 행사 가지 마! 몰래 CF 찍지 마!”
그녀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은 그녀가 아이돌이든, 선배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과다한 칭찬 대신 솔직한 발언을 던지는 ‘뼈그맨(뼈속까지 개그맨)’이기 때문이다.
악역 아우라 ★★★☆☆모공제로상<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송중기
밤샘촬영에도 지치지 않는 꿀피부는 웬만한 여자 연예인 뺨 치게 맑고, 명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는 엄친아 스토리도 늘 따라다닌다. 그런 그가 KBS2TV<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강마루 역으로 악역 변신을 꾀했다. 과연 될까? 초등학생 권장 영화 <마음이1,2>에서 강아지의 순수한 눈빛과 100% 싱크로를 이루는 맑은 청년이었던 그가, <성균관 스캔들>에서는 눈치 빠른 꽃미남 한량으로 분했던 그가 말이다. 저렇게 곱고 예쁜 얼굴로 복수는 무슨 복수? 사랑을 뺏기고, 모든 걸 뺏기고 나쁜 남자로 변신하는 그가 브라운관에서는 박시연, 문채원보다 예뻐 보인다. 그러나 전국구 누나 팬심이 있으므로 일단은 기다려보자.
사실 그는 영화 <티끌모아 로맨스>에서의 찌질한 남자 백수 연기와,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늑대소년>으로 상처 입은 눈빛 뒤 위험한 야성을 드러내는 늑대 인간이라는 힘겨운 변신을 시도할 만큼 담이 세다. 착한 남자의 변신은 앞으로도 쭈욱계속된다. 악역 아우라 ★☆☆☆☆
연기귀신상 <다섯 손가락> 채시라
<다섯 손가락>은 천재 피아니스트의 사랑과 악기를 만드는 그룹의 후계자를 놓고 벌이는 암투 및 복수를 그린 드라마다. 마음을 안 주는 남편과 치매 걸린 시어머니 밑에서 불평 한마디 없이 현모양처의 길을 걷는 채영랑(채시라). 남편이 밖에서 낳은 아들 유지호(주지훈)를 그녀가 환한 미소로 맞은 것은 자신의 꿈을 모두 이뤄줄 자신의 친아들 유인하(지창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유지호를 후계자로 선정하자 그를 사고로 죽인 후 그녀는 결심한다. 유지호의 모든 것을 빼앗기로. 그녀를 말리기는커녕 옆에서 부채질을 하는 어머니 차화연에게는 “이 집에서 조용히 살라”며 쏘아 붙이고, 남편 죽음의 비밀을 묻는 송남주(전미선)에게는 “궁금하면 지옥에 찾아가 직접 물어보든가. 애들이랑 밥 먹고 살 궁리나 하라”는 독설을 날린다. 채영랑을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것은, 그녀 자신이 성장기에 양어머니 차화연에게서 많은 상처를 받았고, 직접 낳은 아이까지 살면서 모든 것을 빼앗겨온 연민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역시 영랑이 앙칼지게 째려볼 땐 무섭긴 하다.
<천추태후><해신>에서 보여준 채시라의 전략가형 연기와, 악독함의 결정판을 보여주는 악역 연기가 시너지 효과를 낸다. 100여 벌의 옷을 갈아입고 미용실도 손수 섭외하는 열정이 돋보인다.
악역 아우라 ★★★★★
[글 박찬은 기자 자료제공 자료제공 KBS MBC tvN Mnet 영화 스틸컷]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349호(12.10.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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