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3 이종원 “한판 붙죠”하며 첫 인연,
이후 사제, 형동생하며 동행
“첫 만남이요? 허무맹랑했죠. 고3 녀석이 겁도 없이 한판 치자고 해서요.”(허진우)
“해볼 만하겠지 하고 붙었는데, 상대가 안됐어요. 그걸 계기로 진우 형이랑 동행이 시작됐죠.”(이종원)
충북당구연맹 허진우(30)와 이종원(26)은 최근 경북 안동에서 열린 ‘2025 안동시장배전국3쿠션당구대회’ 복식 결승에서 강력한 우승후보 조명우-윤도영(서울)을 30:28(19이닝)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팀 결성 6년만의 쾌거다.
허진우는 3년 전 전국당구대회 개인전에서 우승한 적 있지만, 이종원은 단복식 통틀어 전국대회 첫 우승이다.
“진우형은 자기 기술, 디테일까지 다 알려주는 선생님”
지금은 누구보다 절친한 사이지만 둘의 동행은 우연히 이뤄졌다. ‘고3’ 이종원이 동네(홍성)같은 당구장에서 4살 많은 ‘동네형’ 허진우를 보고 도전장을 던진 것. 그걸 계기로 허진우와 이종원은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며 함께했다. 때로는 스승과 제자, 때로는 친한 형동생 사이로 꾸준히 성장한 두 사람은 이번 우승을 계기로 더 큰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해달라.
-허진우(이하 진우)=1995년생으로 올해 30살이다. 충북당구연맹 소속이고 2016년에 당구선수로 데뷔했다.
-이종원(이하 종원)=(허)진우형보다 4살 어리다. 1999년생 올해 26살이고 충북당구연맹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팀 결성 6년만에 전국당구대회 복식 정상에 올랐는데.
-진우=대회를 거듭할수록 우리 둘 다 경기에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4강전(송현일-김도현)을 승리하고 금메달 욕심이 컸는데 결승 상대(조명우-윤도영)를 보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웃음) 운도 따랐지만 편하게 마음먹고 경기하니까 좋은 결과가 나왔다.
-종원=복식에서 최고성적이 8강이고 1, 2차전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여서 안동시장배에 큰 기대를 안했다. 하지만 경기를 치를수록 진우 형이 잘 이끌어줬고 입상에 가까워지면서 동기부여가 돼 우승까지 하게 됐다.
▲당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진우=고 3 때 친구들 따라 처음 당구를 쳐봤다. 칠수록 금방 실력이 늘면서 재미가 있었다.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당구 치며 당구선수를 준비했다.
-종원=진우 형과 비슷한 케이스다. 고 2 때 친구들과 당구장에 가면서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당구가 어려웠지만 치면서 점점 재미를 붙였고, 고 3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수활동을 시작했다.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됐나.
-진우=절대 잊을 수 없다. 당구 치고 있는데 고 3인 종원이가 다가와서 “자기가 이길 것 같으니까 같이 당구치자”고 하더라. 황당했지만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게 나을 것 같아서 한 게임 쳤다. 결과가 생생하지만 우승도 했고 좋은 날이니까 동생 보호 차원에서 점수 차는 얘기 안하겠다. 하하.
-종원=그때만 해도 동네 형이라서 당구치는 자세나 모습을 보고 이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건데, 어리니까 패기있게 덤볐다. 하하. 다행히 진우 형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니까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에피소드다. 이 일을 계기로 진우 형이랑 가깝게 됐다.
▲서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진우=(종원이는) 발전할 가능성이나 재능은 충분하다. 연습도 많이 하는데 경기에서 그 모습이 다 나오지 않아 아쉽다. 그래도 점점 실력이 늘어서 뿌듯하다.
-종원=(진우형은)당구장에서 연습하면서 자기 기술이나 노하우, 디테일까지 전부 알려주는 최고의 선생님이다.
▲서로 공식적인 대회에서 맞붙을 때 기분은.
-진우=워낙 친하니까 같이 경기하면 심리적으로 편한 부분도 있다. 그래도 승패를 가리는 경기라서 (종원이에게) 잘하는 모습,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종원=‘내 실력만 발휘하면 이길 수 있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경기에 임한다. 근데 그런 적은 거의 없다. (웃음) 그래서 실수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자신의 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진우=훈련이나 경기에서 잘 안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게 될 때까지 무식할 정도로 반복 연습하는 근성이지 않나 생각한다.
-종원=한번도 쳐보지 않은 공인데도 맞출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실제로 집중해서 성공한 적이 많아 당구감각이 뛰어난 것 같다.
▲서로에게 고마운 점이 있다면.
-진우=처음에는 안그랬는데, 어느새 종원이가 형들 잘 챙기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친한 형으로서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다.
-종원=어렸을 때는 낯을 가려서 부족한 점이 많았다. 예를 들어 당구장이 아니더라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게 서툴렀다. 그럴 때면 형이 항상 쓴소리를 해줘서 많이 좋아졌다.
▲선수로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진우=2022년 강원도 태백에서 열렸던 대한당구연맹회장배 결승에서 롤모델인 김행직 선수를 꺾고 커리어 첫 우승한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종원=우승을 처음 경험해본 이번 안동시장배다. 복식 말고도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진우 형처럼 언젠가는 개인전 우승도 하고 싶다.
▲경기할 때 상대하기 어려운 선수를 꼽자면.
-진우=조명우 선수다. 명우는 내 실력을 200% 발휘하면서도 운이 따르고 명우 실수가 나와야 이길 수 있을 정도의 넘사벽 선수다.
-종원=누구 한 명을 뽑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다. 아직은 내가 부족하니까 내가 원하는 수준이 될 때까지 오래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려고 한다.
▲앞으로의 목표는.
-진우=항상 대회 마지막까지 남고 싶은데 긴장도 하다보니 실력이 잘 안나오는 편이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많이 이기고 우승도 자주 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종원=진우 형이 자주 “네가 가진 실력만 발휘하면 선수로서 경쟁력 있고 가능성 있으니까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해준다.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김기영 MK빌리어드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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