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세기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우유를 짜는 여성들이 천연두에 걸리는 비중이 낮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이 현상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소에서 얻은 우두를 한 소년에게 접종한 결과 인류 최초의 백신이 탄생했다. 라틴어로 암소를 뜻하는 'vacca'에서 유래한 '백신(vaccine)'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과학사에 기록됐다. 1928년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 역시 우연한 장면 앞에 멈춰섰다. 실험실에 방치된 세균 배양접시에서 피어난 곰팡이 주변의 세균이 사라진 현상을 포착한 것이다. 그의 '왜?'라는 의구심은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으로 탄생했다.
과학은 때로 거대한 질문보다 작고 날카로운 물음에서 시작된다. 이런 질문은 아직까지 인간만 던질 수 있다. 인공지능(AI)은 오늘날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해 정답을 빠르게 도출할 수 있지만, 자발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을 스스로 만들지는 못한다.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동기'에서 비롯된다. '무엇이 궁금한가'보다 '왜 궁금해졌는가'가 질문의 깊이를 좌우한다. 마음속 동기를 직접 바꾸는 일은 어렵지만, 동기의 방향성을 유도하고 그 환경을 설계할 수는 있다. 그래서 AI 시대의 인재 정책은 '정답형 인간'을 넘어 '질문하는 인간'의 동기를 복원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인재 정책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첫째, 연구자와 학생 모두가 두려움 없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설계해야 한다. 보상 구조도 바꿔야 한다. 오늘날 학생들이 안정적인 진로를 좇고 연구자들이 안전한 과제만 선택하는 이유는, 사회가 그런 선택이 합리적으로 여겨지도록 유도해왔기 때문이다. 탐색적 질문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낯선 영역에 도전해 성과를 낸 이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는 평가 체계와 연구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개방형 탐구 기반 연구 및 교육에 대해 전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실용 목적 없이 시작된 연구인 '블루 스카이 리서치'는 월드와이드웹, 자기공명영상(MRI), 중력파 검출 등 혁신의 토대가 됐다. 단기 성과 중심의 평가 기준도 문제다. 연구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독창적인 질문에 기반한 창의적 연구에 도전할 수 있도록 상시적이고 폭넓은 지원과 정성적 평가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질문을 북돋우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왜?'라는 물음은 사라지고, AI가 제공하는 '어떻게?'만 남을지도 모른다. 질문은 약간의 불편함에서 시작된다. 매끄럽게 작동하는 체계에서 어딘가 어긋난 틈을 발견할 때, 그 틈에서 새로운 질문이 태어난다. 불편함이 감지되면 잠시 멈추고 묻는 능력은 인간이 끝까지 지켜야 할 지성이다. 과학기술의 인재 정책은 그 지성이 꺼지지 않도록 동기의 불씨를 지펴주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문애리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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