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 바디스(Quo Vadis), 어디로 가야 하나요?”
급변하는 시대, 수많은 중간관리자가 공통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혹자는 중간관리자를 ‘조직의 병목(bottleneck)현상’ 주범이라며 혁신의 대상으로 꼽는다. ‘중간관리자 종말론’의 근거다. 실제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중간관리자 구조조정을 적극 실시하는 분위기다.
과연 중간관리자들은 무용할까. 오히려 이들은 조직의 쿠션이자 다리, 흐름과 흐름을 연결하는 완충지대는 아닐까? 최근 MIT 슬론 리뷰를 비롯해 학계 일각에서는 중간관리자의 중요성을 재조명하고 있다. 수평의 플랫(flat)조직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이다. 그러나 어떤 조직이든 강을 건너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행정형 관리자는 도태될 수 있다. 그러나 전략을 해석하고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해석형 관리자(sensemaker)’까지 사라져야 할 이유는 없다. 핵심은 진화다. 조직을 유연하게 잇는 가교(架橋)가 될 것인가, 아니면 흐름을 막는 장애물이 될 것인가.

Q. 최근 중간관리자 위상이 급격히 약화된다는 느낌이다. 낀대, 틈장 등 비하 호칭도 범람한다. 왜 이토록 추락하고 있나?
김 코치: 중간관리자 위상이 흔들린다는 느낌은 단순한 걱정이나 추정이 아니라 데이터로도 증명된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가트너(Gartner)는 2023년 보고서에서 “2026년까지 전 세계 조직의 20%가 AI 기반 조직 슬림화에 나서면서, 현재의 중간관리자 절반 이상이 제거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술의 대체, 조직의 단순화, 리더십 불신, 인건비 절감 등이 중첩되며 중간관리자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무능보다 구조의 문제다. 권한은 줄었지만 책임은 더해졌고, 코칭이나 변화관리 등 새로운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정작 훈련도 자원도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다.
Q. 요즘 중간관리자는 실무와 관리, 성과와 성장, 전략과 실행까지 모두 책임지는 ‘고군분투형 올라운드 플레이어’ 역할을 떠맡는다. 업무량 과다는 물론 팀 관리 범위도 확대된 상황에서 번아웃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
김 코치: 이럴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하는 문장이 있다. 비행기 안전 교육에서 늘 강조하는 한 줄이다. “다른 사람을 돕기 전에, 먼저 당신 자신의 산소 마스크를 착용하세요.” 팀이 번아웃되지 않게 하려면, 리더가 먼저 스스로의 회복을 설계해야 한다. 오늘날 중간관리자의 삶은 일종의 ‘사중고 줄타기’다. 성과는 내야 하고, 통제하되 자율성을 부여해야 하며, 전략을 따르면서도 실행 현장 맥락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 여기에 감정 노동까지 포함된다. 권한은 줄었지만 책임은 커졌다. 이런 구조에서는 ‘스스로를 돌보는 리더십’이야말로 가장 전략적인 생존 기법이다.
본인의 감정이 소진된 채 타인, 조직을 돌보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네 가지 회복 설계를 제안한다.
첫째, 완벽주의 덫에서 벗어나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적용하자. 둘째, 감정적 부담을 나눌 수 있는 안전지대를 확보하자. 감정은 저장할수록 독이 된다. 셋째, ‘답을 주는 리더’가 아닌 ‘질문하는 코치’가 되자. 모든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팀원에게 질문을 던지고 기다리는 코칭형 대화로 전환하자. 넷째, 회복을 업무의 일부로 재설계하자. 비워두는 시간, 나만의 루틴, 일상 속 회복 장치야말로 지속 가능한 리더십의 필수 구성 요소다.

Q. 중간관리자 역할은 시대에 맞춰 어떻게 재정의되어야 하는가?
김 코치: 중간관리자의 ‘종말’이 아니라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중간관리자는 명령과 통제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감독자(monitor)’였다. 지금은 다르다. 하이브리드 근무제, 애자일 방식, Z세대 구성원의 유입, 그리고 AI의 확산은 조직을 수평적이고 유연한 네트워크로 탈바꿈시켰다. 이런 환경에서 관리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지시’가 아니라 ‘해석’이다. 중간관리자는 정보를 번역하고, 전략을 행동으로 구현하며, 팀의 감정과 동기를 읽어내는 코치이자 감정적 쿠션이 되어야 한다.
Q. 조직 차원에서 중간관리자를 ‘샌드위치’가 아니라, 전략적 ‘가교’로 전환시키려면 어떤 시스템 변화가 필요할까?
김 코치: 중간관리자가 조직 내 연결의 다리가 되려면, 조직이 먼저 다리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중간관리자가 고립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의 역량 부족이라기보다, 역할 설계와 평가 시스템이 여전히 과거형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노력을 넘어 시스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호주 최대 통신 기업 텔스트라(Telstra)는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했다. 기존 관리자 역할을 ‘업무 중심(Leader of Work)’과 ‘사람 중심(Leader of People)’으로 분리했다. 프로젝트 실행·예산 관리는 전자가, 피드백·성장 리딩은 후자가 담당한다. 덕분에 관리자 이직률은 낮아지고, 프로젝트 리드타임은 25% 단축됐다. 이와 같은 ‘전략적 분화’를 실현하지 못하더라도, 다음의 세 가지 구조 설계는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평가 시스템 재설계. 마스터카드는 리더십 평가 지표에 몰입도·심리적 안전·조직 학습 등을 포함시켜, 관리자에게 사람 중심 KPI를 공식적으로 부여했다. 그 결과, 혁신 실행력이 증가했다. 둘째, 시간 확보를 위한 기술적 설계. IBM은 반복적인 관리 업무를 AI가 대행하도록 하여, 중간관리자가 전략·사람·변화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했다. 셋째, 커리어 경로의 다변화. 단일 승진 사다리를 넘어서, 순환 배치·프로젝트 기반 이동 등 다양한 경력 경로를 제공함으로써 ‘가교 역할’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Q. 수직 승진의 사다리가 사라진 시대, 중간관리자는 어떻게 미래 경력을 스스로 설계해야 할까.
김 코치: 승진만을 목표로 경력을 설계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옆으로, 대각선으로, 때로는 밖으로 이동하며 역량과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격자형의 다차원 경력 그리드(grid career)의 시대다. 이 그리드는 중간관리자의 미래 설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요컨대 ‘4S 전략’으로 준비할 것을 권한다. 먼저 Skill, 핵심 기술력 확보다. 단순 직무기술이 아닌 AI 리터러시, 심리적 안전 설계, 변화 촉진력 같은 ‘가교형 스킬’을 중심으로 자신의 무기를 재정비하자. 둘째 Scope, 경험의 확장이다. 프로젝트나 부서를 넘나드는 다양한 순환 경험이 중요하다. 셋째, Signal, 외적 신뢰 지표 확보다. 직함이나 직급이 아니라, 기고문, 콘퍼런스 발표, 오픈소스 기여 등의 방식으로 자기 브랜드를 축적하고, 포트폴리오 기반 신뢰를 구축하자. 넷째, Synergy, 외부와의 연결이다. 스타트업 자문, 직무 관련 협회 활동 등을 통해, 조직 밖의 영향 반경을 확장하고 다양한 역할 기회를 만들어내자.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코칭경영원 코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1호 (2025.08.06~08.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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