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동호회 골프대회에서 나 상 받았어~”
필드에서 만난 지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평소 실력을 감안하면 상 받을 인물이 아니어서 빤히 쳐다보았다.
“혹시 부비상이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영어까지 구사하기에 동반자들이 순간 솔깃했다.
뭔가 싶어 얼굴을 들이대니 꼴찌에서 두 번째 성적을 올린 참가자에게 주는 상이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꼴찌 하지 않는 게 정말 다행이라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골프대회 시상 종목에 부비(Booby Prize)상이 있다. 멍청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Bobo에서 유래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주로 행운상으로 사용되는데 참가자 중 꼴찌에서 2등에게 준다.
베트남전에서 사용됐던 부비 트랩(Booby Trap)이 연상된다. 실제 부비는 ‘멍청한 놈을 잡는 덫’이라는 부비 트랩의 그 단어이다. 철사로 작은 폭탄을 연결해 발로 살짝 건드리면 폭발하는 무기이다.

부비상 트로피는 뚫어진 벙거지를 쓰고 클럽이나 퍼터를 부러뜨려 들고 있는 우스운 모양으로 만든다. 경우에 따라선 주인공에게 비싼 상품을 주며 위로한다.
영어를 뽐낸답시고 “I won the booby prize”라고 표현하지 않는 게 좋다. 노골적으로 해석하면 “나는 얼간이 상을 받았다”로 번역된다.
이때 모임 회장이나 임원 대신 부비 메이커(Booby Maker)라는 게임 꼴찌가 상을 수여한다. 바로 그가 꼴찌를 면하게 하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고의로 이 상을 타려는 골퍼가 속출하자 꼴찌에서 두 번째 사람에게 부비상을 주는 것으로 착안됐다고 한다. 한편으론 꼴찌에게 시상을 맡겨 분발을 유도하는 취지도 있다.
꼴찌를 두 번 죽이는 가혹한 처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비는 돕되, 부비 메이커는 돕지 않는다”라는 경구가 있다.
골프 동호회나 사내 골프대회에서 참가자들 성적이나 개성에 맞춰 다양하게 상을 정해 시상한다. 함께 했던 재미난 순간과 감동을 나눈다.
친선 골프대회에선 메달리스트(베스트 스코어) 이글상 버디상 롱기스트 니어리스트가 가장 흔하다. 어느 대회에서나 통하는 국룰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골프 용어는 골프 본고장인 스코틀랜드나 미국과 종종 다르다. 우리나라 각종 아마추어골프대회에서 최저타 스코어 기록자를 메달리스트(Medalist)로 부른다.
미국에선 베스트 그로스(best gross) 혹은 로 그로스 챔피언(low gross champion)으로 말한다. 공식 대회 우승자는 챔피언(champion)이다. 준우승자는 더 퍼스트 러너 업(The first runner-up), 3등은 더 세컨드 러너 업(the second runner-up)이다.
역대 우승자는 Previous winner 또는 Previous champion이다. 골프 해설에 자주 언급되는 디펜딩 챔피언(Defending champion)은 현재 타이틀 보유자로서 다음 대회 도전자를 기다린다.
종종 동호인 모임 시상식은 이런 실력 위주의 경직된 분위기에서 벗어나 전체가 즐기도록 좀 더 다양하고 유연하게 전환한다. 능력주의(Meritocracy) 일변도에서 탈피해 축제의 장으로 만든다.
참가자 중 옷을 잘 입는 사람을 정해 베스트 드레스드(Best Dressed)로 시상한다. 돋보이는 패션 센스에 점수를 준 것인데 우리말로는 꾸미기장인상이다.
벙커를 가장 많이 방문한 사람에겐 최다 벙커상(Most Bunkers) 혹은 모래요정상을 시상한다. 얼마전 라운드에서 벙커에 빠뜨린 공을 5타만에 넋이 나간 상태로 탈출한 동반자가 있었다.
어프로치샷으로 공을 핀에 정밀하게 붙인 사람에게 주는 어프로치 고수상(Best Approach)도 있다. 세밀조정상인데 필자는 요즘 연습장에 가면 절반을 어프로치 연습하는 데에 할애한다.

공을 해저드에 가장 많이 보낸 참가자에겐 해저드상(Most Hazards)이 돌아간다. 자연을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자연친화상으로 부른다.
멀리건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은 멀리건왕(Most Mulligans)을 받는다. 일명 땡큐상이라고도 하는데 당사자도 머쓱하다.
성적과 상관없이 묵묵히 나 홀로 진지하게 경기에 임한 사람에겐 나홀로만족상(Self-Care Award)이 주어진다. 동반자를 열렬히 응원해 분위기를 돋우면 응원왕상(Cheering Champ) 혹은 힘내봅시다상이 돌아간다.
가장 좋은 매너를 보인 사람에겐 매너상(Best Manner)을 준다.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으면 해피스마일상(Happy Smile) 혹은 웃음폭탄상 주인공이 된다.
처음 출전하면 참가를 독려한다는 의미로 첫참가자상(골초보상∙First-Time Player), 가장 많은 공을 잃어버리면 로스트볼마스터상(Lost-Ball Master)으로 위로한다. 이런 상들을 스티커로 만들어 붙여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부비와 부비 메이커를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초보자라면 겪는 통과 의례여서 아무도 부비와 부비메이커를 피할 수 없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정성이 중요하다.
“나는 어느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는다. 오직 완벽을 추구하는 나 자신과 경쟁할 뿐이다.” (미켈란젤로)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