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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규제로 고통, 경쟁력 하락”…영국의 반성에도 우리는 ‘칸막이’를 고집해야 하나 [매경포럼]

금소원 신설 추진되지만 영국도 규제 중복에 발목 소통 단절·권한 부족 우려 소비자 보호 되레 약화될라

  • 김인수
  • 기사입력:2025.07.22 11:29:36
  • 최종수정:2025.07.22 11: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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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소원 신설 추진되지만
영국도 규제 중복에 발목
소통 단절·권한 부족 우려
소비자 보호 되레 약화될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건물 앞 표지석.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건물 앞 표지석. [연합뉴스]

정부 조직은 본능적으로 ‘섬’이 되려 한다. 고유의 규칙과 관료 체계, 예산 구조를 갖추고 외부 간섭을 경계한다. 문제는 이처럼 고립된 구조로는 오늘날의 복합적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저출산만 해도 주택·사교육·고용 문제가 얽혀 있다. 어느 한 기관만으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결국 협업과 통합이 답이다.

그런데도 행정의 오래된 습관은 반복된다. 문제가 생기면 전담 조직부터 만들려고 한다. 또 하나의 섬을 만드는 식이다. 최근 논의 중인 금융감독체계 개편도 그렇다. 금융감독원이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해당 기능만 맡을 별도의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신설하자고 한다. 기존 금감원은 건전성 감독만 맡게 된다. 이는 영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채택한 ‘쌍봉형 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당시 영국은 금융기관의 건전성 감독을 맡는 PRA와 소비자 보호를 담당하는 FCA로 감독 기능을 쪼갰다.

하지만 영국의 경험은 그리 간단치 않다. 지난달 영국 상원이 펴낸 보고서 ‘증가하는 고통(Growing Pains)’은 PRA와 FCA의 중복 규제로 시장의 혁신이 저해됐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신상품 승인과 임원 선임 같은 핵심 영역에서 두 기관의 승인 절차가 경쟁국보다 늦고, 이로 인해 영국의 국제경쟁력이 저하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오픈뱅킹 사례를 들어 중복 규제가 혁신을 지연했다고 꼬집었다.

현장의 불만은 더 구체적이다. 한 금융사는 한 해 동안 규제기관으로부터 4500건이 넘는 서신을 받았고, 또 다른 금융사는 연간 2500건 이상의 규제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과도한 정보 요구와 반복된 서류작업이 금융사의 시간과 자원을 잠식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혁신 동력은 약해지고, 시장의 역동성은 떨어지게 된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자본시장 선진화’나 ‘모험자본 육성’ 기조와도 어긋난다.

소비자 보호 역시 제자리걸음이 될 수 있다. 조직이 분리되면 사일로 현상, 즉 소통 부재와 협업 단절이 발생하기 쉽다. 지난해 발생한 홍콩 ELS 사태만 보더라도 그렇다. 당시 금감원은 소비자보호 담당 인력뿐 아니라 은행·증권 검사부서 인력을 함께 투입해 피해 실태를 조사했다. 금소원이 독립할 경우 이런 협업은 어려워질 수 있다. 금감원이 “이제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며 미적댈 가능성이 있다.

책임 소재 또한 불명확해질 수 있다. 불완전판매나 금융사기 같은 사건이 터졌을 때,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보호 기관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장면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 된다.

정부에서는 중복 규제를 우려해 금소원에 검사권과 감독권을 주지 않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소비자 보호에 역행이 될 수 있다. 검사권 없는 기관이 금융사에 실효성 있는 조치를 요구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금감원이 인허가권을 갖고 있어 금융사에 조정과 양보를 끌어낼 수 있다. 법적 근거보다 도덕적 권위가 작동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금소원이 권한 없이 분리되면, 금융사는 “법대로 하자”고 하면 그만이다. 금소원 말을 듣지 않아도 별 탈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백한 법 위반이 있다면 소비자가 당연히 보호받겠지만, 그렇지 않은 ‘회색 지대’에서 소비자는 무력해질 수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섬을 하나 더 만드는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 핵심은 기관의 숫자가 아니라, 협업의 밀도와 시너지다. 기관 신설보다는 협업과 조율의 메커니즘을 강화하는 게 더 실효적일 수 있다. 그래야만 ‘자본시장 선진화‘와 ‘소비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 자칫 좋은 취지로 출발한 개편이 시장에서 혼선과 불신을 낳을까 두렵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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