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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클릭 이재명’ 한국 정당은 무엇으로 경쟁하는가[노원명 에세이]

  • 노원명
  • 기사입력:2025.03.16 10:12:03
  • 최종수정:2025-04-20 10: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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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연설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국회에서 연설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오락가락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보수공략에 공을 들이는 것은 분명하다. 경제적으로는 성장, 외교적으로는 친미다. 시합을 앞두고 철저히 선택되고 계산된 식단을 실천하는 운동선수 같다. 진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뚜렷해서 중도층이 민주당에 기우는 흐름이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어쨌든 지금까지 우클릭은 주효하고 있다.

한국 대통령중 우클릭 행보로 정권 교체를 이뤄낸 최초의 인물은 김대중이다. 그는 1997년 대선에서 자신의 급진 이미지를 희석하고 중도보수를 끌어안는 전략으로 ‘뉴 DJ플랜’을 앞세워 승리했다. 노무현과 문재인은 선거 때 ‘진보 정치인’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들 또한 ‘안정감’을 갈구했고 상대 후보 이상으로 성장을 중시하는 사람임을 보여주는데 많은 시간을 썼다.

보수진영 후보들이 선거전략 차원에서 ‘좌클릭’한 사례는 별로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보수진영의 기본 선거전략은 상대 후보를 ‘국가를 맡기기엔 너무 불안한 인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성장과 안정은 보수의 전유물이며 민주당 후보가 아무리 그걸 떠들어봐야 말장난에 불과함을 보여주려 한다. 만에 하나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이번에야말로 역대급 ‘불안감 부각’ 전략이 펼쳐질 것이라 예상한다. 상대가 이재명이라면 특히.

이재명의 보수화 전략이 족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뿌리는 김성수 등 일제 시대 지주·자본 계급이 주축이 된 한국민주당에 닿는다. 한민당은 집권당이었던 이승만 자유당보다도 보수적인 정당이었다. 자유당은 토지개혁에 찬성하고 한민당은 반대했다. 물론 지금 정당간 이념지형은 1공화국과는 다르다. 내가 볼 때 민주당은 한민당이나 신민당, 새정치국민회의 등 그 계보의 선조 정당들에 비해 많이 좌쪽으로 갔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정당에 가까운가 하면 전혀 아니다. 조봉암의 진보당 이후 제도권 정치에서 진보주의 정당이 큰 세를 형성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한국 정치는 보수정당간의 권력 쟁투다.

민주당은 ‘우리가 진정한 중도 보수의 대변자’라고 주장하고 국힘은 이를 ‘가증스러운 보수 코스프레’로 비난하며 보수 원조임을 주장한다. 다들 이렇게 보수의 편에 서고 싶어 하는데 왜 한국 보수층은 나라가 무너질 것처럼 안달하는가. 보수이념으로 통일된 듯 보이는 민주당과 국힘은 왜 대통령 탄핵을 세 번씩이나 주고받는가. 형제지간이면서 원수였던 카인과 아벨처럼 말이다.

정치학자 최장집은 이를 갈등의 좌우 범위는 매우 좁고 깊이는 지하 끝까지 뚫고 내려가는 상황으로 설명한다. 근본적이지 않은 문제로 다투면서 29번 탄핵을 발의하고 이에 맞서 계엄령을 선포하는 현상이 이로써 설명된다. 국힘과 민주당의 전선은 좌우로 전개되지 않고 동서로 펼쳐진다. 지역 말이다. 최장집은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회 갈등이 정치적으로 조직되는 범위는 좌우의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매우 협애한 이념적 범위를 갖고 있는 한국 정당 체제의 경우 좌우의 스펙트럼 위에서 정당 간 차이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때 남는 것은 지역감정의 정치뿐이다.”

냉전 시기에 한국은 반공국가였고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게 전개될 공간이 없었다. 또한 전통적으로 중앙에 모든 것이 초집중되는 사회구조다. 이 중앙의 권력을 놓고 엘리트들이 싸울 때 지연, 학연에 따른 분획이 이뤄진다. 이념이 있어야 할 공간을 지역이 채운다. 그 갈등은 치졸하고 비합리적이지만 그럼에도 강력하다. 민주당이 선거때마다 우클릭하는 것은 이념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아무리 우로 간들 지역구도로 묶인 표는 어차피 찍게 돼 있으니 부담 없이 던져보는 것이다.

최장집은 갈등의 정도를 완화하려면 갈등의 전국화, 이념 스펙트럼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노동자 대변 정당, 페미니즘 정당, 하다못해 이민에 반대하는 극우정당같은 것이라도 나와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걸 수용하는 권력구조는 아마도 유럽식 내각제가 되어야 할 것 같고. 한국 정당이 지역이 아니라 이념으로 경쟁하게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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