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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플렉스, 바람 다 빠졌네”...소비 침체에 ‘에루샤’ 빼곤 죽을 맛

고물가로 소비침체 장기화 백화점 명품 매출 제자리걸음 코로나19 때 성장세 절정 찍고 작년 성장률 한 자릿수로 둔화 장기적인 소비침체 신호 우려 백화점·면세점 업계 위기감 커져

  • 김금이,박홍주
  • 기사입력:2025.02.07 05:57:51
  • 최종수정:2025.02.07 05: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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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로 소비침체 장기화

백화점 명품 매출 제자리걸음
코로나19 때 성장세 절정 찍고
작년 성장률 한 자릿수로 둔화

장기적인 소비침체 신호 우려
백화점·면세점 업계 위기감 커져
서울 시내 백화점 명품관 안으로 한 시민이 들어가고 있다. [한주형 기자]
서울 시내 백화점 명품관 안으로 한 시민이 들어가고 있다. [한주형 기자]

소비심리 위축에도 굳건한 성장을 이어가던 국내 명품 시장에서도 성장 둔화가 나타나고 있다. 명품 시장은 경기 침체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유례없는 호황을 누려 왔지만, 최근 2년간 지속된 소비 위축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날로 위축되는 소비심리의 심각성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주요 명품 브랜드들은 올 들어 인력을 줄이거나 국내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등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6일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가방과 의류 등 명품 패션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5~11%가량 소폭 성장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전후인 2018~2022년까지 매년 20~40%대의 성장률을 보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2021년은 가장 높은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2023년부터 성장세가 급격히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2021년 명품 매출 신장률이 35%에 달했지만 작년엔 5%까지 낮아졌다. 같은 기간 신세계백화점은 44.2%에서 6.2%, 현대백화점은 38.4%에서 11.4%로 신장률이 줄었다.

사진설명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등 주요 명품 브랜드들은 지난해 경기 침체에도 수차례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백화점 명품 매출 상승에 브랜드들의 가격 인상분이 반영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소비량 자체가 정체된 것으로도 해석된다.

특히 명품 중에서도 주얼리·시계를 제외한 핸드백과 의류 등 패션 부문에서의 타격이 컸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럭셔리 패션잡화의 성장률이 3.3%로, 백화점 전체 매출 성장률인 3.5%에 비해서도 낮았다.

최근 명품 소비가 얼어붙은 현상은 팬데믹 당시 보복 소비로 국내 명품 시장이 유례없이 호황을 누린 기저효과로도 일부 풀이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 상황이 단순한 실적 조정을 넘어 장기적인 소비 침체의 신호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명품 매출 성장률이 바닥을 친 2023년과 비교해서도 작년이 딱히 나아지지 못했고, 앞으로도 반등할 특별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백화점 업황을 가장 앞서 견인하는 명품 매출이 위축되다 보니 백화점 업계 전체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잠실점 ‘루이비통’ 팝업스토어 [사진 = 롯데백화점]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잠실점 ‘루이비통’ 팝업스토어 [사진 = 롯데백화점]

큰손 고객들이 많은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로 묶이는 상위 브랜드들도 예외는 아니다. 루이비통과 크리스챤 디올, 셀린느 등을 보유한 프랑스 명품 대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지난해 매출이 847억유로로 전년 대비 2% 감소하고, 이익은 196억유로로 14% 줄었는데, 중국과 한국 등에서의 판매 부진이 핵심 요인이란 분석이 나온다. 에르메스는 지난해 3분기(7~9월) 매출이 37억400만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11.3% 올랐지만, 중국·한국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일본 제외) 매출은 1% 성장에 그쳤다. 샤넬코리아는 2023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0% 넘게 감소했다.

수입 럭셔리 뷰티 업계도 사정이 비슷하다. 글로벌 럭셔리 뷰티 기업들은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거나 한국 시장에서 브랜드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나섰다.

에스티로더 [사진 = 연합뉴스]
에스티로더 [사진 = 연합뉴스]

이달 초 미국 최대 뷰티 기업인 에스티로더는 매출 부진을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최대 7000명의 직원을 감원할 계획이라고 성명서를 통해 밝힌 바 있다. 또 중국와 한국의 소비자 심리 위축 등으로 이번 분기 매출이 10~12%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로레알코리아가 수입·유통하는 메이크업 브랜드 메이블린뉴욕은 상반기 중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예정이다. LVMH의 뷰티 브랜드 프레쉬(Fresh)도 국내 사업을 오는 4월 종료할 방침이다.

한편 지난해 최악의 실적을 보인 면세점 업계도 명품 매출이 줄면서 ‘탈명품’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과거 명품 소비를 주도했던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면세점보다 올리브영·다이소 등에서의 쇼핑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달러 대비 원화값이 크게 낮아지면서 면세점에서 명품을 구매할 유인이 사라졌다.

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 면세점을 방문한 외국인 수는 857만명으로 1년 만에 59.4%나 늘어났지만, 이들의 매출은 10조1010억원으로 0.8% 증가하는 데 그쳤다. 롯데·신라·신세계·현대 등 국내 주요 면세점 4사는 지난해 모두 적자를 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은 시내 면세점 여러 곳에서 영업을 종료했다. 부산·제주 등 주요 관광지에서도 샤넬·루이비통·구찌 등 여러 명품 브랜드가 폐점 수순을 밟았다. 면세점들은 획일화된 명품이나 뷰티 브랜드의 비중을 줄이고, 특정 매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차별화된 브랜드 발굴로 무게를 싣고 있다.

다만 까르띠에, 롤렉스 등 명품 주얼리와 시계의 경우 백화점 3사에서 모두 성장률이 20%대를 기록했다. 최근 신혼부부들의 럭셔리 웨딩 예물 수요가 늘며 매출 상승세를 나타낸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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