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PBA개막전 우승 후 ‘격세지감’
‘짧은 호흡’ 팀리그 공헌도 낮아…소속팀은 꼴찌
세계적 레전드 명성에 자존심 스크래치
“실력과 팀웍 중시 팀리그 변화 한 단면일수도”
프로 데뷔전인 지난해 6월 PBA투어 개막전에서 화려하게 정상에 오를 때만 해도 1년만에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PBA 데뷔전서 우승하자 그는 스타성과 실력을 겸비한 PBA에 딱 맞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확히 1년만에 소속팀 휴온스에서 방출되는 신세가 됐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할까…. 체면이 상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지난 10일 발표된 24/25시즌 PBA 팀리그 9개 팀 방출선수 명단(15명)에 세미 사이그너가 포함된 건 당구팬들에겐 적지않은 충격이었다. 비록 팀리그서 다소 부진했다손치더라도 세계적인 선수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산체스, 최성원, 뤼피 체네트, 무랏 나지 초클루 등 스타급 선수들이 대거 PBA에 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끈 선수는 사이그너였다. 넘치는 카리스마에 화려한 쇼맨십, 그리고 세계 최정상의 실력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세계캐롬연맹(UMB) 시절에도 그는 3쿠션 세계최고 스타 중 한 명이었고 레전드였다. 3쿠션월드컵에서 7회 정상에 올랐고, 세계챔피언도 한번 차지했다. 사이그너보다 3쿠션월드컵 우승 횟수가 많은 선수는 토브욘 브롬달(46회) 딕 야스퍼스(29회) 프레드릭 쿠드롱(21회) 다니엘 산체스(15회) 에디 멕스(13회) 레이몬드 클루망(9회) 여섯 명뿐이다. 그것도 튀르키예당구연맹과의 불화로 7년간의 공백기를 거치면서 거둔 성적이다.
14일 드래프트서 사이그너 향배 주목
9개팀 중 하이원과 웰컴 지명 가능성도
하지만 이런 명성 및 PBA투어 개인전 성적(23/24시즌 상금랭킹 3위)과 달리 팀리그에서는 영 신통치 않았다. 23/24시즌 사이그너는 애버리지의 경우 전체 팀리그 선수 61명 중 16위(1.582)로 선방했다. 그러나 팀 승리와 직결되는 승수와 승률에선 각각 37위, 53위로 기대에 한참 못미쳤다. 60세 노장에게 15점, 11점 단판제의 짧은 호흡 경기는 쉽지않았다. 늦은 밤 경기에선 힘에 부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게다가 소속팀 휴온스는 23/24 시즌을 의욕적으로 시작했다. 사이그너, 최성원 장가연이 가세하며 기존 하비에르 팔라존, 김세연 김봉철과 함께 막강한 팀을 꾸렸다. 시즌 시작 전부터 휴온스는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막상 시즌을 마치고 성적표를 받아본 결과는 정규리그 꼴찌(9위)였다. 16승24패 승점 42로 1위 NH농협카드(승점 87)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휴온스가 최성원 팔라존 김세연 3명만 보호선수로 묶고 4명(사이그너, 김봉철 전애린 장가연)이나 내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휴온스로서는 가장 기대를 모았던 사이그너 부진이 뼈아팠을 터다. 과유불급이라고 할까. 카리스마 넘치는 그는 팀웍 면에선 부담스런 존재였다.
사이그너 방출 이유에 대해 휴온스 구단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휴온스 구단 관계자는 “지금 단계에서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없다. 구단별로 보호선수를 최소 3명 이상 해야 하고 외국 선수 2명을 포함해야 하는 등 엔트리를 꾸리는 부분에서 구단 나름대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에둘러 말했지만, 성적 부진이 직접적인 이유인건 불문가지다.
다른 구단 관계자는 “휴온스 멤버는 쟁쟁하다. 지난시즌 사이그너와 최성원이 우승했고, 김세연도 있다. 그런데 팀리그서 꼴찌를 했다. 팀리그에선 실력과 운이 작용하지만, 어려울 때 파이팅할 수 있는 팀웍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부분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고 풀이했다.
그는 처음 팀리그를 시작할 때는 선수들의 네임밸류와 스타성이 중요했다고 했다. 하지만 시즌이 거듭되면서 실력과 팀웍이 중요하다는 걸 점차 깨닫게 됐다고 강조했다.
모 방송해설위원의 진단도 비슷했다. 사이그너가 스타성과 상징성은 있지만 팀리그서 너무 부진해 팀 공헌도가 낮았다고 짚었다. 아울러 팀 리더가 최성원인데, 그 위에 리더가 또 있는 묘한 구조가 됐다는 것. 팀리그는 젊은 선수들의 에너지가 부딪히는 판인데, 사이그너가 15점, 11점제 경기에서 진가를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14일 팀리그 드래프트에서 사이그너가 뽑힐 것인지도 주목된다. 팀리그 9개 팀 사정을 보면 대충 윤곽이 나온다. 선수 전원을 보호선수로 묶은 하나카드와 SK렌터카는 일단 대상서 제외다. 우리금융캐피털도 인수한 블루원 선수 전원을 받기로 했으니 빼고. NH농협카드에는 리더 조재호가 있고 외국인 선수가 두 명(마민깜, 몬테스)이나 있다. 산체스와 사이그너가 한팀(에스와이)이 될리는 없고, 김재근이 있는 크라운해태도 썩 안어울리는 조합이다.
남는 팀이 하이원리조트와 웰컴저축은행 두 곳이다. 이충복이 리더인 하이원은 외국인 선수가 체네트 1명이다. 웰컴은 쿠드롱에 이어 위마즈마저 떠나 외국인 선수가 한 명도 없다. 사이그너 상품성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이 두 팀이 사이그너를 지명할지 여부는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팀리그가 네번째 시즌을 보내면서 조금씩 변화의 흐름이 감지된다. 초기에 스타성이 중요했다면, 점차 실력과 팀웍을 점차 중시한다는 점이다. 10일 방출명단에서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와 차유람은 원 소속팀인 하나카드와 웰컴저축은행에게 우선지명권이 있다. 그럼에도 두 팀은 이들을 보호선수로 묶지않았다. 하나카드야 포스트시즌 우승 팀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팀을 리빌딩 해야하는 웰컴도 여러 사정을 고려했으리라.
“팀리그 팀들도 초창기와 달리 이제는 성적에 훨씬 더 신경을 씁니다. 실력은 물론이고 팀웍과 조화를 이루는지 인성까지 봐야합니다.” 어느 구단 관계자의 언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4일 있을 드래프트 결과는 어느 누구도 점치기 어렵다. 다만, ‘사이그너 방출’은 조금씩 변하고 있는 PBA 팀리그를 보여주는 한 단면일 수도 있다. [황국성 MK빌리어드뉴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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