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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수구와 적구, 그게 대체 뭔가요?

[하~이런의 시시콜콜 당구] ①
일본식 엉터리 당구용어 여전…손놓은 당구계 ‘한심’

  • 기사입력:2020.12.24 09:01:48
  • 최종수정:2020-12-25 12: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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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튜브 당구 레슨 영상 캡처)
(사진=유튜브 당구 레슨 영상 캡처)
[편집자주]국내 당구 인구가 1천만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대도시에서는 수백 m만 걸어도 간판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 가까이에 당구장이 있습니다. 국제식 대대에서 3쿠션 경기를 즐기는 동호인도 갈수록 늘고 있지요. 케이블TV방송 스포츠 채널에선 심심치 않게 당구 경기를 중계합니다. 국제무대에서 한국 3쿠션 위상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 당구는 스포츠 종목이면서 생활체육으로 굳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한국 당구가 더욱 성장하길 바라면서 글을 연재합니다. 당구를 열렬히 사랑하는 동호인이 체험하고 느낀 당구 문화와 현장 얘기를 함께 호흡하면서 즐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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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치에선 수구로 1적구 왼쪽을 4분의1 두께로 맞히면 되겠지?” “잘 봤어. 그러면 수구가 3쿠션째 반대편 장축 1포인트에 도착한 뒤 정확히 2적구를 향하게 될거야.” 당구 동호인들 사이에서 흔히 오가는 대화다. 수구와 적구는 3쿠션 30점 이상이든 20점 이하든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입에 담는 단어다. 당구에서 뺄래야 뺄 수 없는 핵심 용어이기 때문이다.

약 3년 전 대대에 막 입문해 이 두 용어를 처음 접했을 때 이렇게 짐작했다.

“내 공으로 나머지 2개의 공을 맞혀야 점수를 내는 게임이니 아군(我軍)과 적군(敵軍)으로 구분하나 보다. 내 공이 우두머리 공이니 수구(首球)이고, 다른 2개의 공은 공격 대상이므로 적구(敵球)로 표현하는 모양이네.”

한참 지나 알게 됐다. 아군과 적군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내 공으로 먼저 맞히는 공은 ‘제1목적구’(目的球)이고, 두번 째 맞히는 공은 ‘제2목적구’라는 것을. 그것을 줄여서 ‘1적구’ ‘2적구’라고 한다는 것을. 또한 우두머리수가 들어간 ‘수구’(首球)가 아니라 손수가 들어간 ‘수구’(手球)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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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둥절했다.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한자어였기 때문이다. 당구 꽤나 치는 지인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제대로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생겨나 사용되고 있는 걸까. 수구의 영어 표기는 ‘큐볼’(cue ball)이다. 목적구는 ‘오브젝트볼’(object ball)이라고 쓴다.

우리보다 앞서 서구에서 당구를 도입한 일본은 큐볼을 ‘내공’(my ball)이라는 뜻의 일본식 한자어인 수구(手球)로 바꿔 썼다고 한다. 목적구(目的球)는 오브젝트볼을 그대로 번역해 사용한 듯하다.

일제강점기에 국내 당구계가 이를 그대로 들여온 모양이다. 그걸 100년 가량 지난 지금까지 고이 지키고 있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수구’와 ‘목적구’라는 한자어가 가당치나 한가.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보라. 뜻이 제대로 통하는지. 우리말 전문가에게 문의해보라. 어의(語義)가 맞는지. 목적구의 줄임말 ‘적구’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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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e ball’은 ‘큐가 닿는 공’이다. 즉 ‘샷을 하는 사람이 큐로 맞히는 공’이다. 따라서 우리말 ‘내공’으로 바꿔 쓸 수 있다. 샷을 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어 다루는 공이므로 ‘주인(主人)공’이라고 해도 된다. 드라마, 소설 등에서 사용되는 주인공(主人公)과 한글 표기와 발음이 같지만 뜻이 잘 통한다. ‘object ball’은 ‘맞혀야 하는 대상’이다. ‘목적’은 ‘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을 뜻하므로 목적구라는 용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표적구’(標的球)라고 쓰는 게 낫다. 우리말로는 ‘과녁공’으로 옮길 수 있다.

그간 당구인들의 노력으로 수많은 일본 당구용어가 우리말로 대체됐거나 순화됐다. 이를 테면 과거엔 ‘하꾸’라고 했지만 지금은 ‘옆돌리기’로 바꿔 쓰는 동호인이 적지 않다. 공(다마), 당구대(다이), 뒤돌리기(우라마와시), 끌어치기(히끼), 세워치기(다대) 등 적절한 우리말이 일본어를 밀어내고 있다.

하지만 뜻도 안 통하는 일본식 한자어인 수구와 적구는 요지부동이다. 당구 유튜버는 물론 TV 해설자조차 수구와 적구를 내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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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전문 방송인 빌리어즈TV가 올해 내보낸 각종 대회 영상도 그렇고, 유명 유튜버들의 레슨 영상도 그렇다. 당구용어를 알려준다면서 수구와 적구를 소개하는 유튜버도 있다. 유력 인사들이 수구와 적구를 퍼뜨리니 동호인들은 오죽하겠는가. 하물며 대한당구연맹의 경기규칙서에도 수구와 적구가 버젓이 등장한다. 한국 당구계를 이끄는 공식 조직이 엉터리 한자어를 권장하는 꼴이다.

한국 당구는 지금 3쿠션 부문에서 세계 당구판을 주도하고 있고 선수들 실력도 일본을 크게 앞선다. 이런 마당에 아직도 우리 당구판에서 수구와 적구가 판치고 있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각에서 우리말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점이다. 1목적구를 ‘앞공’, 2목적구를 ‘뒷공’ 혹은 ‘끝공’이라고 쓰는 당구인들이 등장한 것이다. 당찬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첫공’ ‘둘째공’으로 부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좀 더 고민하면 더 좋은 우리말을 찾을 수 있다. 대한당구연맹과 프로당구협회(PBA)를 비롯한 당구계는 이제라도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스스로 해낼 수 없다면 국어학자를 위촉해서라도 적절한 우리말을 보급해야 한다. 그리고 이참에 고백하고 반성한다. 필자 역시 관성적으로 수구와 적구를 읊어왔다는 점을. [진성기 편집위원/당구 칼럼니스트 ha-er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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