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3년 전 대대에 막 입문해 이 두 용어를 처음 접했을 때 이렇게 짐작했다.
“내 공으로 나머지 2개의 공을 맞혀야 점수를 내는 게임이니 아군(我軍)과 적군(敵軍)으로 구분하나 보다. 내 공이 우두머리 공이니 수구(首球)이고, 다른 2개의 공은 공격 대상이므로 적구(敵球)로 표현하는 모양이네.”
한참 지나 알게 됐다. 아군과 적군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내 공으로 먼저 맞히는 공은 ‘제1목적구’(目的球)이고, 두번 째 맞히는 공은 ‘제2목적구’라는 것을. 그것을 줄여서 ‘1적구’ ‘2적구’라고 한다는 것을. 또한 우두머리수가 들어간 ‘수구’(首球)가 아니라 손수가 들어간 ‘수구’(手球)라는 것을.

우리보다 앞서 서구에서 당구를 도입한 일본은 큐볼을 ‘내공’(my ball)이라는 뜻의 일본식 한자어인 수구(手球)로 바꿔 썼다고 한다. 목적구(目的球)는 오브젝트볼을 그대로 번역해 사용한 듯하다.
일제강점기에 국내 당구계가 이를 그대로 들여온 모양이다. 그걸 100년 가량 지난 지금까지 고이 지키고 있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수구’와 ‘목적구’라는 한자어가 가당치나 한가.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보라. 뜻이 제대로 통하는지. 우리말 전문가에게 문의해보라. 어의(語義)가 맞는지. 목적구의 줄임말 ‘적구’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간 당구인들의 노력으로 수많은 일본 당구용어가 우리말로 대체됐거나 순화됐다. 이를 테면 과거엔 ‘하꾸’라고 했지만 지금은 ‘옆돌리기’로 바꿔 쓰는 동호인이 적지 않다. 공(다마), 당구대(다이), 뒤돌리기(우라마와시), 끌어치기(히끼), 세워치기(다대) 등 적절한 우리말이 일본어를 밀어내고 있다.
하지만 뜻도 안 통하는 일본식 한자어인 수구와 적구는 요지부동이다. 당구 유튜버는 물론 TV 해설자조차 수구와 적구를 내뱉고 있다.

한국 당구는 지금 3쿠션 부문에서 세계 당구판을 주도하고 있고 선수들 실력도 일본을 크게 앞선다. 이런 마당에 아직도 우리 당구판에서 수구와 적구가 판치고 있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각에서 우리말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점이다. 1목적구를 ‘앞공’, 2목적구를 ‘뒷공’ 혹은 ‘끝공’이라고 쓰는 당구인들이 등장한 것이다. 당찬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첫공’ ‘둘째공’으로 부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좀 더 고민하면 더 좋은 우리말을 찾을 수 있다. 대한당구연맹과 프로당구협회(PBA)를 비롯한 당구계는 이제라도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스스로 해낼 수 없다면 국어학자를 위촉해서라도 적절한 우리말을 보급해야 한다. 그리고 이참에 고백하고 반성한다. 필자 역시 관성적으로 수구와 적구를 읊어왔다는 점을. [진성기 편집위원/당구 칼럼니스트 ha-er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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