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대지 위에서 동반자들과 함께하는 운동이다. 자연 순환의 연결고리를 작품에 담는 강진주는 골프 업에도 순응과 공존이 필요하다 말한다.

“근본을 캐는 사진작가 강진주입니다.”
강진주는 사진을 매개로 자연의 순환을 탐구하는 작가다. 우리 식재료와 전통 도구에 담긴 시간의 흔적과 에너지를 담는 강진주는 한국의 식문화를 그만의 방식으로 세계에 알렸다. 뉴욕 맨해튼에서 한국 제철 식재료를 선보인 전시 <Revelation: Breath>(2023)를 개최했고, 2020년 출간한 책 <쌀을 닮다>로 미식 책 분야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구르망 월드 쿡북 어워드’에서 쌀 분야 1등을 수상했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해 일본 아마나 스튜디오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아오스튜디오의 대표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강진주는 17년간 함께한 반려견 소피를 추억하는 전시 <소피의 식탁>을 열었다. “제가 해온 작품 활동이 소피에게 밥을 주는 행위와 같았다는 생각을 해요.” 작업을 위해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고, 소피를 위한 요리를 하며 함께했던 시간이 결국 자연의 순환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는 그.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공존에 천착하는 작가로서, 골프 애호가로서 강진주는 골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라운드를 자주 나가진 못해도 골프를 꽤 즐기는 것으로 안다. 경쟁의식 없이 치는 골프가 재미있다. 동반자들끼리 분위기가 좋으면 골프가 더 즐겁다. 남의 볼이 들어가도 좋고, 내 볼이 들어가도 좋고, 자연에서 바람 쐬며 다같이 소리 지르고 즐거워할 수 있는 스포츠는 골프뿐인 것 같다.
커머셜 작가로 활동할 시기엔 골프 브랜드들과 작업하며 골프와 연을 쌓았다. 일본 아마나 스튜디오에 있을 적에 골프 브랜드를 정말 많이 접했다. 혼마, 마제스티 등 골프 브랜드들의 의뢰가 쉴 새 없이 들어왔다. 독립 후 한국에 와서는 2010년도경 캘러웨이와 클럽 광고 사진 작업을 오래 했다. 프리미엄 골프웨어 레인메이커의 론칭 때 비주얼 디렉팅을 맡기도 했다. 다 즐겁게 작업한 기억이다.
상업사진도 분야별로 작업 방식이나 접근법이 다르지 않나. 골프 촬영은 어떤 부분이 까다로운가. 분야는 달라도 로직은 같다. 나처럼 골프와 음식을 다 찍는 사람이 흔치 않은데, 무엇을 찍든 논리는 똑같다. 맥락을 잡는다, 밸런스를 맞춘다. 이거면 끝이다. 제품, 패션, 인물, 공간, 아트 할 것 없이 이 두 가지면 끝난다.
맥락 잡기와 밸런스 맞추기라,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쉽게 얘기하면, 골프채를 예로 들어보자. 골프채의 맥락을 먼저 읽어야 한다. 물성을 파악해야 되고 이것을 왜 치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촬영장에 골프채를 만든 장인은 못 오더라도, 이 골프채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꼭 오라고 한다. 까딱 잘못하면 포토그래퍼가 엉뚱한 곳을 튀어나오게 찍거나 할 수 있다. 헤드를 두꺼워 보이게 할지 날렵하게 갈지는 내 마음인데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 얘기를 많이 들어야 된다. 그다음엔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는다. 라이팅 기술을 써서 표면을 거칠게 표현하거나, 섹시하게 미끈한 라인으로 쫙 뽑거나 그런 것들. 하나의 골프채라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어마어마하게 달라 보인다.



작품 활동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고 있다. 팔도에 골프장이 있는데 어떤 인상을 받았나. 자연에 순응하는 방법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강원도 철원에 삼부연폭포가 있다.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화’에 담았을 만큼 절경이 빼어난 곳이다. 만약 삼부연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이 지역에 골프장을 짓는다고 하면 화폭의 산세를 살린다든가 주변 자연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 선에서 코스를 설계하지 않을까. 이건 하나의 예다.
골프장이 환경 단체들의 질타를 받기도 한다. 무리하면 안 된다. 비즈니스를 하지 말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쫓아가는 비즈니스는 시대에 맞지 않다고 본다. 골프장이 잘 되니까 골프장 짓고, 골프웨어가 유행하니까 골프웨어 하고. 쫓는 사업은 돈이 안 되면 쉽게 접을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쓰레기를 더 만들 순 없지 않나. 골프장을 지어야 한다면 이유가 있어야 하고, 조금 못생기더라도 자연과 같이 살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산을 댕강 깎아서 인위적으로 만들면 자연도 화가 난다.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날 수도 있는 거고. 골퍼분들에게도 쓰레기를 줄입시다, 꼭 당부드린다.
자연의 순환을 중시하는 예술가로서 골프장에 조언이나 아이디어를 건넨다면. 예를 들면 여기에서 무슨 화석이 나왔다더라, 그러면 골프장에 작게라도 그 화석을 전시하는 공간을 두는 거다. 그 터가 가진 기운을 나누는 사색의 공간으로. 그 지역에 무슨 돌이 많이 난다 하면 그 돌을 써서 클럽하우스를 지어도 된다. 전통 한옥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기역 자 또는 미음 자, 집의 모양새가 다른데 이걸 건축양식에 적용해도 좋겠다.

식문화를 다루는 만큼 골프장 음식에도 할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레스토랑마다 최상급 재료를 공수한다고들 하는데 지천에 있는 로컬 재료가 더 신선하다. 쌀 품종이나 장 같은 먹거리가 그 지역에서만 나는 이유가 있다. 민물새우가 많이 잡히면 그걸 활용한 메뉴를 개발하고 숭어가 많다, 그러면 숭어 비빕밥을 내고. 이런 식으로 자연이 주는 에너지와 지역색을 조화시키는 거다.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 음식 모두 하나의 필로소피(philosophy)를 향해 가는 것. 얄팍한 브랜딩의 개념이 아니라, 철학을 기반으로 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게 진짜 스토리텔링이다.
작품 전시나 컨설팅 등 골프장과의 협업 계획 이 있나. 물론 열려 있다. 그간 SPC, CJ, 아모레퍼시픽 등 기업들과 브랜딩 작업을 했는데 내 의견을 엄청 관철시켰다. 브랜드를 성공시키기 위해 클라이언트와 싸워서라도. 근데 이젠 그 싸움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길을 비즈니스에도 접목해야 하지 않을까. 골프업계 경기가 안 좋아 다들 힘들겠지만 골프장이나 골프웨어, 산업 전반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 새로운 방향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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