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밀리 오피스는 재무 관리는 물론 부유한 가문이 직면한 실질적이고 개인적인 문제까지 폭넓게 다룬다는 점에서 가문의 비전을 실행하는 컨트롤타워로 부상하고 있다. △기관 수준의 투자운용 △세무·상속 설계 △승계 계획 △맞춤형 리스크 관리 등이 패밀리 오피스의 핵심 축을 이룬다. 여기에 부동산·항공기·요트 등 럭셔리 자산관리까지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패밀리 오피스는 2024년 기준 약 8,030개, 시장 규모는 5조5,000억 달러(약 7,700조 원)로 추정되는 가운데 2030년에는 각각 1만720개, 9조5,000억 달러(약 1경3,3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패밀리 오피스 시장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확산하며 한국 시장에서도 국내 자산가의 글로벌 자산배분, 해외 법인·신탁, 세무 구조화 등을 돕기 위한 패밀리 오피스의 필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패밀리 오피스는 크게 한 가문만 전담하는 싱글 패밀리 오피스(SFO·Single-Family Office)와 여러 가문이 인프라와 전문인력을 공유하며 규모의 경제를 누리는 멀티 패밀리 오피스(MFO·Multi-Family Office)로 나뉜다. 통상 싱글 패밀리 오피스는 자산 5억 달러(약 7,000억 원) 이상 가문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세계 최대 유통체인 월마트의 월튼 가문이 운영하고 있는 월튼 엔터프라이즈(Walton Enterprises),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세운 베이조스 익스페디션(Bezos Expeditions)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우수한 인재와 인프라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막대한 비용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는 멀티 패밀리 오피스가 각광받고 있다. 특히 기관투자자 수준의 자산운용 서비스, 질 높은 투자 기회 확보, 유리한 수수료 체계, 간소화된 행정 절차, 규제 리스크 완화 등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멀티 패밀리 오피스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전문가 조직을 기반으로 투자·세무·상속·규제 대응 등 복잡한 이슈를 체계적으로 처리하고 자산관리를 넘어 자선 활동이나 차세대 교육, 가족 지배구조 구축까지 맞춤형 종합 솔루션을 제공한다. 글로벌 역량을 갖춘 멀티 패밀리 오피스는 국경을 초월하는 자산 구조 관리, 홍콩·싱가포르·두바이 등 주요 금융허브와 연결, 국제 규제 대응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 시장에서 구조적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글로벌 수준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멀티 패밀리 오피스 서비스가 점차 자리 잡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독립형 멀티 패밀리 오피스 알더인베스트먼트 황성준 부회장은 "멀티 패밀리 오피스는 단순한 금융상품 제공을 넘어 가문의 최고재무책임자(CFO)나 컨시어지 역할까지 수행한다"며 "프라이빗 뱅크가 대응하기 어려운 영역까지 포괄하는 점이 차별성"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아 허브'로 부상한 싱가포르와 홍콩
아시아에서는 최근 10~15년 사이 신흥 부호 급증과 세대교체, 글로벌 투자 확대를 배경으로 싱글 패밀리 오피스와 멀티 패밀리 오피스 모두 급속 성장했다. 싱가포르와 홍콩 사례가 대표적이다.
특히 싱가포르는 세제 혜택과 글로벌 금융·법률 인프라를 앞세워 아시아 대표 패밀리 오피스 허브로 자리 잡았다. 싱가포르 정부가 2020년부터 금융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시행 중인 '가변자본기업(VCC)' 제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제도를 통해 싱가포르에서 자금을 운용하는 법인은 특정 펀드 세금 혜택은 물론이고 공시 의무나 승인 절차 없이 각종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대신 싱가포르 정부는 일정 수준 이상의 현지 고용과 투자를 요구한다. 세제 혜택과 규제 프레임이 맞물리며 패밀리 오피스 유치가 고급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력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홍콩도 여전히 아시아 패밀리 오피스 생태계의 핵심 축이다. 금융 자본시장 경쟁력과 풍부한 전문 인력풀 그리고 중국 본토와의 높은 연결성이 강점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정부에서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책들을 잇따라 내놓으며 패밀리 오피스에 친화적인 환경을 적극 강화하고 있다. 두바이 역시 중동과 아시아를 잇는 전략적 위치, 친기업적 환경, 이주 용이성(Golden Visa)과 낮은 운영비용 체계를 바탕으로 급성장 중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캡제미니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고액 자산가(HNW)는 약 2,340만명, 초고액 자산가(UHNW)는 약 23만4,000명으로 집계됐다. 초고액 자산가는 전체 고액 자산가 인구의 약 1%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체 고액 자산가 보유 자산(총 90조5,000억 달러·약 12경7,000조 원)의 34%를 차지하며 상위 계층에 자산이 초집중돼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별로는 북미가 초고액 자산가 수와 자산 규모 모두 선두에 위치하고 있지만 향후 4년간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신규 자산 창출 속도 면에서는 북미를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고액 자산가는 순자산 100만달러(약 14억원) 이상을 보유한 이들을 뜻한다. 초고액 자산가는 순자산 3000만달러(약 420억원) 이상을 보유한 이들이다.
[방영덕 매경AX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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