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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12월 29일에 살고 있습니다”…제주항공 참사 6개월, 무안공항 못 떠나는 유가족들

일가족 3명 잃은 유가족 대표 김유진씨 어머니 옷 입고 생활…“아직 못 보내” 치유휴직 못내 유가족 피해 눈덩이 늦어지는 원인 조사 책임자도 없어

  • 송민섭
  • 기사입력:2025.06.27 15:49:22
  • 최종수정:2025-06-27 16: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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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 3명 잃은 유가족 대표 김유진씨
어머니 옷 입고 생활…“아직 못 보내”
치유휴직 못내 유가족 피해 눈덩이
늦어지는 원인 조사 책임자도 없어
제주항공 유가족협의회 대표 김유진씨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12월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항공 유가족협의회 대표 김유진씨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12월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12월 29일에 살고 있습니다.”

27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 2층 로비. 공항 안으로 들어서자, 불이 꺼진 식당과 닫힌 카페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창가 자리에 놓인 의자들에는 먼지가 앉아 있었고, 몇몇 매대에는 ‘임시 휴업’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륙을 기다리는 여행객들의 수속 행렬도, 안내방송을 따라 움직이는 관광객 무리도 보이지 않았다.

구석에는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유가족들을 위한 작은 천막이 설치돼 있었다. 출입문 쪽 1층 로비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례 공간이 마련돼있었다. 천막 안에는 낡은 전기장판과 개인용 선풍기, 그리고 몇 개의 담요가 쌓여 있었다.

사고가 났던 지난해 12월 29일 이후, 이곳은 구조대와 언론, 공항 직원, 유가족들이 뒤엉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 당시를 기억하는 이는 몇 남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공항 직원 몇 명만이 간헐적으로 오갈 뿐이었다.

그곳에서 유가족협의회 대표 김유진 씨(45)를 만났다. 김씨는 눈을 감고 차분히 그날을 다시 떠올렸다. 참사 발발 당시 김 씨는 자녀 넷과 함께 여수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족 나들이를 계획했던 그날 오후,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무안공항에서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이었다. 김 씨는 입술에 바르던 립스틱을 그대로 내려놓고 집을 뛰쳐나왔다.

27일 무안국제공항 2층 로비에 유가족 쉘터에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27일 무안국제공항 2층 로비에 유가족 쉘터에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당시 비행기에는 김 씨의 어머니 정선숙 씨(67), 아버지 김덕원 씨(69), 그리고 남동생 김강헌 씨(35)가 탑승해 있었다. 다른 중년 남성과 다르게 평소 가족들에게 살가웠던 강헌 씨는 회사 장기근속 10주년 포상을 받아 부모님과 함께 방콕 여행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김 대표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막연히 기다리면 구조 소식이 들릴 거라 믿었다. 김 대표는 “조금 다치고 나서, ‘다신 비행기 안 탄다’고 투덜대며 나올 줄 알았다. 남편한테도 근처 병원에 가서 기다리자고 했다”고 말했다.

곧 병원으로 이송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항에는 어떤 안내도, 설명도 없었다. 생존자 명단은 발표되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안내 방송 대신 뉴스를 통해 사고 규모를 짐작해야 했다.

김 씨는 그날 밤 10시간 넘는 기다림 끝에 사망 통보를 받았다. 제주항공 7C8856편은 활주로 끝단을 지나 둔덕을 들이받은 뒤 멈춰 섰고, 비행기 몸체가 파손되면서 탑승객 대부분이 사망했다. 17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참사였다.

김 대표는 “아이 넷을 키우고 있었다. 막내는 다섯 살이다. 잘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를 엄청 그리워한다“며 ”세수할 때마다 할아버지가 해주던 방식 그대로 수건을 목에 감고 얼굴을 닦는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가족은 사고로 일상의 중심을 잃었다. 특히 남동생 강헌 씨는 평소 김 씨 가족의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왔다. 주말이면 부모님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식사를 챙기며 여덟 식구가 함께 살아가던 집은 이제 절반이 비어버렸다.

김 대표는 “엄마 옷을 속옷까지 그대로 입고 있다. 아직 엄마랑 이별할 준비가 안 됐다. 진상 규명이 끝날 때까진 보내드릴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김 씨는 그 슬픔에만 머물 수 없었다. 참사 이후 그는 유가족협의회 대표로 나섰다. 피해자 가족들이 겪는 현실은 ‘애도’보다 ‘행정’과 ‘투쟁’이 먼저였다.

그는 “사고가 나면 국가가 알아서 진상조사도 하고, 대책도 마련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가 먼저 나서서 기자회견 열고, 항공안전법 들춰봐야 했다”고 지적했다.

소방대원이 지난해 12월 발생한 무안공항 여객기 사고 잔해를 수습하고 있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유가족 제공.
소방대원이 지난해 12월 발생한 무안공항 여객기 사고 잔해를 수습하고 있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유가족 제공.

유가족들은 지난 21일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김 씨는 “이제는 참사의 진실을 사회에 알리고,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바꾸는 일이 남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가장 시급한 제도 중 하나는 ‘치유휴직’ 제도의 사각지대다. 현재 치유휴직은 고용보험 가입자만 대상이다. 공무원, 자영업자, 프리랜서는 지원받을 수 없다. 그는 “공무원은 병가를 써야 하고, 자영업자는 아예 쉴 수 없다. 오히려 더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 제도 밖에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정부는 참사 이후 활주로 말단의 둔덕 구조물 개량 공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구조물이 사고의 결정적 원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사 중”이라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를 “책임 회피”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 둔덕만 없었어도, 이 정도로 심각한 사고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구조물도, 대응도, 설명도 없다. 유가족만 남았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무안공항 인근에 상주 중인 유가족은 15명가량. 주말이 되면 가족 단위로 다녀가는 유족까지 합치면 30가구 이상이 사고 현장을 지키고 있다. 김 대표는 “남들은 6월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12월 29일에 살고 있다. 시간이 아예 가지 않는다”고 했다.

오는 7월 5일 유가족들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첫 공식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김 대표는 “세월호, 이태원 참사는 대통령 연설에서 언급이라도 됐다. 우리는 그 한마디조차 듣지 못했다“며 ”이건 언급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을 어떻게 지는가의 문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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