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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30만원씩 드립니다”...1년 남았는데 불붙은 포퓰리즘, 없는 살림 쥐어짠다

민생지원·인구늘리기 명목으로 지자체 수십만원씩 현금성 지원 대부분 재정자립도 20% 미만 “인근 지자체도 하니 눈치보여” 전문가들 “구조적 대책 수립을”

  • 최승균,이상헌,이대현
  • 기사입력:2025.04.30 06:04:55
  • 최종수정:2025.04.30 06: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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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지원·인구늘리기 명목으로
지자체 수십만원씩 현금성 지원
대부분 재정자립도 20% 미만
“인근 지자체도 하니 눈치보여”
전문가들 “구조적 대책 수립을”
사진설명

경상남도 남해군이 다음달부터 전 군민에게 1인당 10만원의 민생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한다. 지급 대상은 4월 15일 기준 남해군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군민과 일부 외국인 등록자다. 총 지급 규모는 약 4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남해군이 현금성 지원을 하는 부분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남해군의 현재 재정자립도는 10.04%에 불과하다. 최근 5년간 재정자립도 역시 7~9%에 맴돌아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 중 하나다.

전라남도 나주시도 올해 초 시민 1인당 10만원씩 지역화폐를 지급했다. 지급 총액은 112억원에 달한다. 나주시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돕고 소비를 진작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나주시 역시 재정자립도가 14% 수준에 그친다. 정작 나주시는 지역화폐의 소비가 빠르게 일어나지 않자 이달 말까지 사용할 것을 독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들어 지방자치단체들이 재정 자립도와 상관없이 앞다퉈 대규모 현금성 지원금을 뿌리면서 ‘포퓰리즘’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민생 안정’ ‘지역경제 활성화’ ‘인구 늘리기’ 등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내년 6월 예정된 전국동시지방선거를 겨냥한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29일 전국 지자체에 따르면 이번에 민생지원금을 지급하는 지자체들은 대부분 재정자립도가 낮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남 남해군을 비롯해 전북 진안군(재정자립도 6.7%), 전남 보성군(7.0%), 완도군(7.2%), 진도군(7.3%), 해남군(7.8%) 등은 최근 들어 10만~30만 원 상당의 지역화폐나 선불카드를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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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지자체는 인구 유치를 위해 ‘현금성 장학금’까지 내걸고 있다. 충북 제천시는 타 지역 대학생이 전입하면 최고 280만원까지 지원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충북 영동군, 경북 안동시, 경남 밀양시 등도 대학생 전입자에게 100만원 안팎의 현금을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민생지원금이 중앙정부와 협의 없이 자체 조례 제정만으로도 추진할 수 있어 통제 불능이라는 점이다. 가뜩이나 취약한 지방 재정의 건전성을 심각하게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225개 기초지자체 중 재정자립도가 30% 이하인 지자체는 전체의 81.5%에 달한다.

지역화폐나 현금 지원을 통한 소비 진작 효과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지역화폐는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역 내 매출 증대에는 도움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전체 경제에 미치는 순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구 유치를 내걸고 현금 지원에 나선 경우에는 실효성마저 의문이 따르고 있다.

전입 대학생에게 지원금을 주는 충북 제천시의 경우 지난해 전입 대학생 중 1년 이상 주소를 유지한 비율이 25%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북 순창군은 고등학교 졸업생에게 축하금을 지급했지만 인구 감소세는 여전하다.

특히 지자체 간 ‘눈치 경쟁’으로 인해 선심성 정책이 도미노처럼 퍼져나가는 현상도 문제다. 특정 지자체가 지원금을 주기 시작하면 인근 지자체들도 경쟁적으로 비슷한 정책을 도입하면서 무분별하게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옆 지역에서 주는데 우리만 안 줄 수는 없다”며 “크게 보면 우리나라 전체 경제에 소비를 진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선심성 정책이 지자체장 치적 쌓기로 활용되다보니 지방의회와 갈등을 빚는 사례도 허다하다.

변광용 거제시장은 지난 4·2 재보궐선거 과정에서 시민 1인당 20만원 지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급 대상은 거제시민 약 23만명으로, 총 47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하지만 거제시의회에선 조례 통과를 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7명씩 동수로 구성돼 있어 본회의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국민의힘 의원들은 “노골적인 매표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강원 정선군도 지난 3월부터 민생회복지원금 명목으로 군민 1인당 30만원을 정선아리랑상품권 선불카드로 지급 중이다. 지원금 지급안은 올 초 군의회에서 한 차례 부결되는 등 지역 내 찬반 의견이 분분했다.

전문가들은 단기 소비 진작을 위한 현금성 지원보다는 정주 여건 개선 등 구조적인 처방이 지자체에 더욱 필요한 정책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관계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하는 지원금이라도 장기적 계획과 효과 분석 없이 시행한다면 결과적으로 재정 위기를 가중시킬 수 있다”며 “일자리 창출과 생활 여건 개선 등 구조적 대책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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