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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안내견과 함께 시각장애인 체험해보니

한양대서 세계 안내견의 날 맞아, 안내견 인식 개선 행사 참가자들 “무서웠지만 재미있는 체험…시각장애인 입장엔 공감”

  • 양세호
  • 기사입력:2025.04.29 14:13:49
  • 최종수정:2025-04-29 14: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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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서 세계 안내견의 날 맞아, 안내견 인식 개선 행사
참가자들 “무서웠지만 재미있는 체험…시각장애인 입장엔 공감”
29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세계 안내견의 날을 맞아 열린 안내견 체험 행사에서 안내견 ‘정성’이와 장승희 씨 및 관계자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양세호 기자]
29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세계 안내견의 날을 맞아 열린 안내견 체험 행사에서 안내견 ‘정성’이와 장승희 씨 및 관계자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양세호 기자]

“주노야 앞으로…잘했어”

29일 오전 서울 성동구 한양대 역사관 앞은 안내견 ‘주노’를 비롯한 11마리의 안내견과 ‘안대’를 쓰고 있는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시각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경험해보기 위해 학생들은 안대를 쓰고 5~6m의 반원 모양의 길을 따라 걸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도우미’ 안내견들이 함께하며 시름을 덜어낼 수 있었다. 안내견과 안내견의 하네스(안내견과 사용자의 움직임을 전달해주는 조끼 같은 장비)가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비틀거리며 불안해했지만, 점차 안정적인 안내견들의 주행에 ‘몸을 맡긴 채’ 발을 내디뎠다.

이날 체험에 참여한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3학년 신상헌 씨(24)는 “처음엔 한걸음 내딛기가 무서웠는데 안내견이 안전하게 장애물을 잘 피해서 끝까지 갈 수 있었다”며 “안내견이 시각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한양대 장애학습지원센터는 오는 30일 세계 안내견의 날을 맞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와 함께 안내견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안내견 인식 개선 체험 행사’를 열었다.

박태진 안내견 학교장은 “4월 마지막 주 수요일인 세계 안내견의 날을 맞아 안내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안내견과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행사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양대, 안내견 정성이 과잠 입히기 행사

이번 행사가 한양대에서 열린 이유는 한양대 학생이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와 특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한양대엔 안내견학교가 배출한 안내견 ‘정성’이가 4년째 한양대 학생인 장승희 씨와 학교를 다니고 있다.

시각장애가 있는 장씨는 지난 2022년 2월에 정성이를 분양받았다. 정성이는 4년째 장씨의 눈이 돼주고 있다. 장씨와 정성이는 좋은 친구를 넘어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기분을 알 수 있는 가족이 됐다.

장씨는 “한양대학교가 안내견 학교와 함께 공식적으로 이런 행사를 열어주셔서 되게 뜻깊고 의미 있다”며 “정성이의 과잠도 만들어주셨는데, 예쁘게 잘 입히고 다니겠다”고 밝혔다.

안내견 체험 직접 해보니...
29일 한 한양대 학생이 안내견 인식 개선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양세호 기자]
29일 한 한양대 학생이 안내견 인식 개선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양세호 기자]

기자도 안내견 체험 행사에 참여했다. 안대를 쓰고 왼손으로 하네스를 쥐니, 의지할 곳이라곤 안내견 ‘주노’밖에 없었다. 하네스와 왼쪽 허벅지를 엄지손가락만큼 간격을 떼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평소 ‘걷는 느낌’ 보단 ‘맡긴 채 간다는 느낌’이었다. 혹시나 안내견을 밟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함께 아까 봤던 노란 안내표지판과 고깔콘에 걸려 넘어지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익숙하지 않은 하네스에 두려운 마음까지 더해지니 손에 힘도 들어갔다. 훈련사는 “너무 꽉 잡으면 안내견에게 부담이 간다. 달걀 쥐듯이 부드럽게 잡아줘야 한다”며 “무서워하고 있으니 안내견이 천천히 갈 것”이라고 말했다.

눈이 가려지니 보행도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불과 5~6m의 짧은 반원형 구간을 걷는데 3분이 넘게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몰랐던 길이면 발걸음을 떼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시각장애인의 보행에 안내견의 역할이 얼마나 큰 지 몸소 깨닫는 계기가 됐다.

안내견 체험을 마친 신 씨(24)도 “예전에 한 잡화점에서 안내견의 출입이 제한된 걸 본 적이 있었다”며 “그때 그 시각장애인 분의 감정이 어떠셨을지 오늘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외국인 학생들도 행사에 참여했다.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학생인 한네스 씨와 오렐 씨도 “처음 안내견과 함께 걸어봤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안내견과 공존하기 위해 에티켓이 중요
안내견 예티켓
안내견 예티켓

훈련사들은 안내견이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선 안내견 에티켓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기본적인 안내견 에티켓으론 ▲사진 촬영 금지 ▲부르거나 만지기 금지 ▲간식 주기 금지 등이 있다.

훈련사 금정훈 씨(28)는 “사진 촬영은 사용자의 사생활이 노출될 수도 있고, 안내견이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부르시거나 하게 되면 이동 경로를 이탈할 수도 있다”며 “간식을 주시는 것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지난 1993년에 설립돼 32년간 누적 306마리의 안내견을 육성했다. 현재 86마리의 안내견이 활동하고 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좋은 안내견을 선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10마리 중 3마리만 합격할 정도로 합격률도 낮은 편이다.

안내견 학교는 예비 안내견이 태어나면 약 2달 정도 예비 안내견을 기른다. 이후 1년여간 가정과 사회에서 적응하는 ‘퍼피워킹’(사회화 과정)교육을 거친다. 다시 학교에서 6~8개월간의 훈련 과정을 수료하고 총 세 번의 시험을 통과해야 안내견이 될 수 있다.

박 학교장은 “기본적으로 안내견들은 모든 사회 공간에서 같이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환영해주셨으면 좋겠다”며 “반대로 너무 좋아하셔서 적극적으로 다가와 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좋으시더라도 눈으로만 예뻐해달라”고 밝혔다.

장씨는 “안내견은 시각장애가 있는 제게 가장 좋은 친구”라며 “안내견을 불쌍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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