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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로펌 변호사입니다”...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거짓말, 판 키운 피싱범죄

보이스피싱용 유령로펌 등장 실제 법조인 신상 도용하고 AI로 가상인물 만들어 소개

  • 박민기,김대기
  • 기사입력:2025.03.08 08:39:47
  • 최종수정:2025.03.08 08: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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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용 유령로펌 등장
실제 법조인 신상 도용하고
AI로 가상인물 만들어 소개
보이스피싱 범죄를 위해 임의로 개설된 유령 로펌 홈페이지.
보이스피싱 범죄를 위해 임의로 개설된 유령 로펌 홈페이지.

서울에서 근무하는 A변호사는 최근 경남 창원에 위치한 B법무법인 홈페이지 구성원 소개란에 자신의 사진이 등록된 것을 발견했다. B법무법인은 처음 들어본 로펌으로 A변호사가 과거에도 일한 적이 없는 곳이다. 심지어 자신의 증명사진과 함께 적혀 있는 이력은 모두 사실과 다른 허위정보였다.

알고 보니 B법무법인은 실제 로펌이 아니라 보이스피싱 범죄를 위해 임의로 개설된 ‘유령 로펌’이었다. 자신의 신상정보가 도용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A변호사는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법 위반행위 신고센터에 해당 로펌을 신고했다.

A변호사는 “최근 변호사 프로필을 도용해 보이스피싱 범죄에 악용한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이 같은 대담한 범죄 행위로 저를 포함해 피해를 보신 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고 전했다.

과거 경찰, 검찰, 금감원 등을 주로 사칭했던 보이스피싱 범죄가 이제는 변호사까지 사칭하며 갈수록 대범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매일경제가 유령 로펌인 B법무법인에 등록된 변호사 구성원들 신상정보를 확인해본 결과 변호사 총 19명 중 15명이 실존하지 않는 인물인 것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4명은 실제 변호사지만 해당 로펌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변호사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상정보를 도용당한 것이다.

사진설명

법조계와 사법당국 등에 따르면 변호사를 사칭하는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가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서울변회 변호사법 위반행위 신고센터에 접수된 관련 범죄 건수는 2022년 7건에서 지난해 43건으로 약 6배 증가했다. 올해에는 1~2월 2개월 사이에만 16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국내 최대 변호사 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 법질서위반감독센터에 올해 신고된 관련 범죄 건수도 전년 대비 4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령 로펌 홈페이지를 만들고 변호사를 사칭하는 방식의 신종 범죄는 ‘법률 전문가’로서 변호사가 주는 신뢰성을 악용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앞세워 상대방에게 ‘피해 회복’ 등을 해주겠다며 접근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이스피싱의 경우 변호사를 사칭한 범인이 법적 수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며 접근한 뒤 법률상담 비용 등을 요구하는 등의 절차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전문 법률 용어를 사용하며 신뢰도를 높이고 소송 리스크 등을 강조해 피해자 불안감을 키운 뒤 보증금 명목으로 비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기 범죄 등의 피해자들은 피해를 회복할 수 있다는 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을 변호사라고 소개한 성명불상의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돈을 입금하거나 이들이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돈을 충전한다. 목적을 달성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그 즉시 연락을 끊고 잠적한다.

피해자들이 이 같은 수법에 쉽게 걸려드는 이유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범죄 수법이 날로 정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인공지능(AI)도 한몫한다는 분석이다. AI 기술 발전으로 가짜 사진과 신상정보를 마음대로 꾸며낼 수 있게 되면서 변호사 사칭 등 범죄 수법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B법무법인은 겉보기에는 멀쩡한 홈페이지를 갖춰놓고 변호사 구성원들 소개까지 올려놓았다. 이들 중 대부분은 AI를 통해 만들어낸 가짜 사진과 프로필로 추정된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A변호사처럼 실제 존재하는 변호사 정보가 도용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관련 정보는 모두 허위다. A변호사는 2021년 변호사시험에 합격했지만 B법무법인은 A변호사가 2017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해 국제소송 및 중재 사건을 담당해왔다고 설명해놨다.

또 다른 피해자인 C변호사 역시 2021년 변호사시험에 합격했지만 B법무법인은 그가 지난 7년간 판사로 근무한 뒤 18년 동안 변호사로 일하는 중이라고 기재했다. 모든 경력이 가짜지만 상당히 구체적으로 설명해놓은 만큼 일반인 입장에서는 바로 의심을 품기가 쉽지 않다.

변호사 사칭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변협과 서울변호사회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들 단체는 관련 범죄 신고를 접수하면 담당 감독위원을 지정한 뒤 범죄조직 소재지 파악 등 관련 조사에 착수한다.

그러나 은밀하고 신속하게 이뤄지는 보이스피싱 범죄 특성상 대부분 조직의 소재지가 불명이라 사건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에 진전이 없으면 이들 기관은 강제수사력을 동원하기 위해 경찰 등 수사기관에 고발하고 협조를 받기도 한다.

변협 관계자는 “범죄조직 특정이 어려운데 변협에 직접 수사권이 있지는 않아서 사건이 계류되는 난감한 상황”이라며 “법률 상담을 명목으로 2차 피해자를 양산하는 등 변호사 제도 자체를 잠탈하는 범죄 행위인 만큼 심각하게 보고 대응책 마련을 고심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보이스피싱 범죄 건수는 2만839건, 피해액은 8545억원에 달한다. 정부가 피해자의 송금을 막기 위해 금융권의 안심차단 서비스·본인 확인 조치 강화 등 다양한 범죄 예방책을 펼치고 있지만 좀처럼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줄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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