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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에 주황색 고무 꼬깔콘…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 홍성윤
  • 기사입력:2024.11.25 09:00:00
  • 최종수정:2024-12-31 0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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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사전 - 46] 도로 위나 공사장에서 흔히 보이는 원뿔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사진 출처=Andreas, 픽사베이]
[사진 출처=Andreas, 픽사베이]

명사. 1. 라바콘, 칼라콘, 파일론 2. (美) 트래픽콘(Traffic cone), 로드콘(road cone), 마녀의 모자(witches‘ hats) 【예문】라바콘을 보고 있자니 꼬깔콘을 먹고 싶다.

라바콘(Rubber Cone)이다. 말 그대로 고무로 된 원뿔로, 주로 도로 점검 및 정비 현장이나 건설공사 현장에서 차량이 작업 현장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거나 우회로로 안내하기 위해 세워놓는 도로안전시설이다. 특정 공간에 차량 주정차를 할 수 없도록 막거나 젖어서 미끄러운 매장 바닥, 점검 중인 화장실, 진입이 금지된 구역 등을 표시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라바콘은 스포츠에도 쓰인다. 자동차경주나 인라인스케이트에서 일정 간격으로 콘(고깔)을 놓고, 그 사이를 빠르게 혹은 묘기와 기술을 선보이며 이동하는 ‘슬라럼(slalom)’ 경기가 대표적.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있는 웰링턴 공작의 승마 동상은 비공식적으로 라바콘 모자를 쓰고 있는 걸로 유명하다. 라바콘 모자 씌우기는 1980년대부터 이어진 유구한 전통으로, 이 ‘웰링턴 콘’은 이제 글래스고의 상징물이 됐다. [사진 출처=Germanlphoto, 위키피디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있는 웰링턴 공작의 승마 동상은 비공식적으로 라바콘 모자를 쓰고 있는 걸로 유명하다. 라바콘 모자 씌우기는 1980년대부터 이어진 유구한 전통으로, 이 ‘웰링턴 콘’은 이제 글래스고의 상징물이 됐다. [사진 출처=Germanlphoto, 위키피디아]

최초의 라바콘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교통당국 차선도색 부서에서 일하던 찰스 D. 스캘런(Charles D. Scanlon)이 발명해 1943년 특허를 얻었다. 라바콘 발명 이전에는 차선도색 중인 도로 위에 나무로 된 삼각대 등을 세워뒀었는데 넘어지거나 파손되기 일쑤였고, 자동차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스캘런은 타이어 폐타이어에서 나온 고무로 라바콘을 만들었다. 이는 쉽게 파손되지 않으면서도 자동차에 손상을 주지 않았고, 무엇보다 겹쳐서 보관할 수 있어 공간을 덜 차지했다.

찰스 D. 스캘런의 라바콘 특허 US2333273A. 그가 출원한 이름은 ‘세이프티 마커(safety marker·안전 표시물)’였다. [사진 출처=구글 특허]
찰스 D. 스캘런의 라바콘 특허 US2333273A. 그가 출원한 이름은 ‘세이프티 마커(safety marker·안전 표시물)’였다. [사진 출처=구글 특허]

교통당국 직원의 단순하지만 획기적인 아이디어라고 하니 다른 사례가 하나 더 떠오른다. 차선 위에 그려진 분홍색·녹색 안내선 ‘그거’ 노면 색깔 유도선(color lane) 말이다. 한국도로공사 소속 윤석덕 차장이 2011년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국내 최초로 색깔 유도선 아이디어를 냈다. 노면 색깔 유도선은 같은 해 지역 경찰청의 협조를 통해 편법으로 서해안고속도로 안산 분기점에 최초 시범 적용됐다. 교통사고 감소 효과가 확인되자 국토교통부에서 정식 승인,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윤 차장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4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해외까지 범위를 넓히면 2008년 일본이 센다이시 아라마치 교차로를 세계 최초로 설치 사례로 본다.

고속도로에 노면 색깔 유도선이 설치된 모습. [사진 출처=국토교통부 블로그]
고속도로에 노면 색깔 유도선이 설치된 모습. [사진 출처=국토교통부 블로그]

원래 발음대로라면 ‘러버콘’이 맞겠지만 일본식 발음을 차용하면서 라바콘으로 굳어졌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잔재가 언어 속에 남아있는 분야가 비단 건설업계뿐이겠냐마는 공사장에서는 유독 일본어 표현이 많이 쓰인다. 막노동, 막일꾼을 속되게 이르는 ‘노가다’부터가 공사판에서 일하는 인부를 뜻하는 일본어 도카타(土方·どかた)에서 온 것이다. 이밖에도 공구리(コンクリート, 콘크리트), 구루마(くるま, 손수레), 나라시(均し, 평탄화 작업), 빠루(バール, 노루발못뽑이), 빼빠(ペーパー, 샌드페이퍼·사포), 오함마(大ハンマー, 양손망치), 함바(飯場, 공사현장에 딸린 식당) 등이 대표적이다.

다음 편 예고 : 자동차 문에 붙어 있는 파란색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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