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항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권 레이스에 암초가 나타났다. 이 후보의 최대 리스크로 꼽히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서 향후 대선을 좌우할 중도층과 무당층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이 복잡해졌다.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민주당 대선 후보 확정 이후 '우클릭' 행보로 중도 확장에 박차를 가하던 선거 전략을 지속하는 동시에 '대법원 선거 개입' 프레임을 내세워 보수 사법 권력이 유력한 대권 후보인 이 후보 발목 잡기에 나섰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국민의힘은 대선 후보 사퇴 불가피론을 집중 제기하며 이 후보 사법 리스크를 재점화할 전망이다.
1일 이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한 대법원의 선고는 이 후보 사법 논란의 핵심 사안인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에 대한 인지 여부와 백현동 용도 변경에 관해 이 후보가 허위 발언을 했다고 판결했다.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인 이 후보가 유권자 판단을 흐리는 거짓 발언을 했다는 얘기다.
이 후보로서는 대선을 33일 앞두고 도덕성에 흠집이 나면서 중도층 지지를 확보하며 지지율을 꾸준히 올리던 흐름에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후보는 당 대선 후보 선출 다음 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태준 전 국무총리 등 보수 지도자의 묘역을 참배하고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권오을 전 한나라당 의원, 이석연 전 법제처장, 이인기 전 새누리당 의원 등 보수 인사들이 합류한 통합형 선대위를 꾸렸다. 이 같은 전략이 효과를 내며 이 후보는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 맞붙는 3자 대결 구도에서 45~50%에 이르는 지지를 받았다. 선대위 내에서는 55% 득표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으로 중도층 확보 추세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한국정당학회장을 지낸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보수 진영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후보가 타격을 입으면서 중도층이 다시 넓어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지난 대선과 같은 '간발의 차' 패배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해선 중도층 확보가 필수라는 점에 이 후보와 선대위 지도부 간 이견은 없다. 따라서 이 후보 선대위는 현재의 우클릭 기조, 중도층 공략 캠페인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대법원의 선거 개입'을 부각한다는 전략이다.
사법부 개혁을 고리로 진보층을 총집결시키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조 교수는 "이 후보를 지지하던 진보 진영에서는 이번 판결로 사법부 개혁 필요성이 높아졌다며 더 뭉치려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이 후보를 지지했던 중도층 표심은 떠나갈 수 있으나 진보 진영은 이미 결집이 다 돼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선대위가 출범한 지 이틀 만에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와 당황스럽다"면서 "사법 리스크는 처음부터 (이 후보 지지율에) 반영돼 있었다. 동요하지 않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 후보에 대해 대선 후보 부적격론을 들고나올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단을 근거로 '이재명=부적격' 프레임을 씌워 도덕성 부문 공세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한동훈·김문수 국민의힘 경선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모두 "이 후보 사퇴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민주당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한 대비가 안이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부자 몸 조심' 기조의 온건한 선거 캠페인이 보다 공세적으로 바뀔 가능성도 점쳐진다. 판결을 앞두고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열어 속전속결 결론을 내리는 것은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를 덜어주려는 움직임" "12대0의 상고 기각으로 무죄가 확정될 것" 등 희망 섞인 전망이 주를 이뤘다. 이에 따라 사법 리스크를 털고 남은 기간 우클릭·통합·겸손 행보로 부자 몸 조심 기조의 안정적인 선거 캠페인 구상을 그려왔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이 후보의 도덕성 흠집 내기에 나선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순 없는 것 아니냐"며 강대강 구도로 캠페인 기조가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 후보는 전국 각지에서 국민과 직접 만나 민심을 듣는 '경청 투어'를 이날부터 나흘간 일정으로 경기도 북부 접경지역에서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해 민주당이 약세라고 평가받는 경기 포천·연천, 강원 속초·양양·강릉, 경북 영주·예천, 충북 단양·영월 등 '험지'를 먼저 찾아 지지를 호소하고 통합 행보를 부각하려는 의도다.
[오수현 기자 / 성승훈 기자 /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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