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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꺾이는 길’ 알았지만, 명분 있는 싸움에 안 갈 수 없었다”

국힘 대선 경선후보 한동훈 전 대표 인터뷰 ‘계엄의 바다’에 빠지지 말아야 할 명분 중요 누구든 당시 당 대표였다면 계엄해지했을 것 정치인생 중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 12월 3일 ‘지켜달라’고 호소 않는 ‘지키는 정치인’될 것

  • 김명환,박자경
  • 기사입력:2025.04.20 08:30:00
  • 최종수정:2025-04-20 09: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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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대선 경선후보 한동훈 전 대표 인터뷰
‘계엄의 바다’에 빠지지 말아야 할 명분 중요
누구든 당시 당 대표였다면 계엄해지했을 것
정치인생 중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 12월 3일
‘지켜달라’고 호소 않는 ‘지키는 정치인’될 것
한동훈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전 국민의힘 대표) 인터뷰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스승인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를 떠나며 “나는 나의 스승을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진리를 더욱 사랑한다”고 말했다. 모든 학문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두 철학자가 가장 중요한 가치를 두고 결별했다는 점이 아이러니지만, 그 결별로 인해 학문 정신의 저변이 넓어졌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서 윤 전 대통령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알려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행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선언과 많은 부분에서 오버랩된다. 윤석열정부의 황태자였지만 여당 대표로 홀로서기를 한 데 이어, 윤 전 대통령이 국정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선포한 ‘계엄’에 대해서도 그는 ‘위헌·위법’이라며 정치권에서 가장 먼저 반대의 기치를 꺼내 들었다.

‘헌정수호’와 ‘국민보호’를 진리로 선택한 한 전 대표는 최근 진행한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공적인 영역의 일을 개인적인 영역과 연결해선 안 된다 생각한다”며 “그 누가 계엄을 했어도 막았어야 한다. 설사 나의 아버지가 했다고 해도 그랬을 것이다. 공적인 영역의 일을 하는 사람은 그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결국 지난해 12월 3일, 국민의힘 의원 18명과 함께 비상계엄을 저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와 동시에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일조했다는 이유로 당 일부 지지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2025.4.15 [한주형기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2025.4.15 [한주형기자]
본회의장서 이재명과 악수 피하진 않았지만
이후 禹·李이 수차례 전화…단호히 안 받아

‘탄핵의 강을 어떻게 넘을 생각이냐’는 질문에 한 전 대표는 “크게 보면 ‘계엄의 바다’를 건너야 하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그는 “그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섭섭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만,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으로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만약 당신이 12월 3일 10시 30분 국민의힘 당 대표였다면 계엄을 막지 않을 겁니까’라고 ”그 순간의 선택은 굉장히 명징하고 꼭 필요한 거였다. 그 선택으로 인해 이후 여러 곤란한 상황 겪었고 지금도 그럴지도 모른다. 다만 모든 것이 정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계엄 당시 있었던 비화도 소개했다. 한 전 대표는 “제가 11시 58분즈음 본회의장에 들어갔다. 반면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 시간 동안 숲에 숨어있다 온 사람”이라며 “‘계엄을 막은 사람’이라는 말은 그런 사람이 할 얘기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저와 18명의 의원으로 인해)국민의힘은 12월 3일에 계엄을 막은 세력이다. 저는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전 대표가 이재명 전 대표와 악수를 나누는 사진이 찍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12시 58분쯤 숨어있던 이 전 대표가 들어오더라”며 “우원식 국회의장을 향해 왜 이렇게 표결을 늦게 하는지 저희가 항의도 많이 했는데, 지나고 보니 이 전 대표가 들어오길 기다린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전 대표가 들어오시더니 아주 환한 미소로 다가왔다. 당시 우리 의원들은 ‘어떻게든 피하자’고 조언했는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며 “다만 그때 ‘아, 우리 지지자들께서 그 장면에 괴로워하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런 고심 때문에 일부러 사진이 찍히기 쉽지 않은 벽쪽으로 이동했다는 게 한 전 대표의 설명이다.

한 전 대표는 “그날 이후 이 전 대표, 우 의장으로부터 전화가 여러 번 왔다”며 “이후에도 (민주당과 손을 잡는) 그림을 만들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해서 전화를 아예 안 받았다”고 강조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2025.4.15 [한주형기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2025.4.15 [한주형기자]

국회의원 신분이 아니었던 그가 본회의장에 들어간 점에 대해선 “제가 주도해서 가지 않았으면 우리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었겠나”라며 “특히 이런 생각을 했다. 제가 끌려 나가는 그림, 저와 18명의 의원이 끌려 나가는 그림이 계엄군에게 굉장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부담스러운 상황을 만들어 오히려 국회 투입병력이 소극적 대응을 하도록 유도했다는 의미다.

법무부 장관부터 국민의힘 당 대표를 거치며 험난한 정치여정을 보낸 그는 가장 어려웠던 순간으로 “계엄을 막았던 그날”을 꼽았다. 그는 “계엄을 막았을 때 제가 (당 대표직을 포함해 정치 행보가)꺾일 거라는 예상은 당연히 했다”면서도 “그래도 가야 했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자·공화주의자이자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공직생활에서도 권력과 맞서며 모든 것을 걸고 싸운 적이 많았다. 명분이 있는 싸움이라면 꺾여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표직 사퇴 발표를 하고 국회를 떠나며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저를 지키려 하지 말라. 제가 여러분을 지키겠다”고 말한 이유에 대해선 “흔히 선거 유세에서 정치인들이 ‘지켜달라’하는 게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한다”며 “정치를 왜 하겠는가. 나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정치를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당 지지자들 일부와 다른 길을 걸으며 고립감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무엇을 하는 데 필요한 용기나 각오의 양을 수치화할 수 있다면 권력에 맞서는 것보다 지지자들과 다른 길로 가는 것이 1000배쯤 더 클 것”이라며 “굉장히 고립되고 외로워진다. 철저히 혼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떡하겠나. 계엄에 관한 생각은 지금도 같다”고 말했다. 그때 당시를 회고하는 듯 짧은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2025.4.15 [한주형기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2025.4.15 [한주형기자]
尹과 요원한 지 오래…최소한의 국민 요구 외면
정치 짧지만 많은 일 겪어…갈수록 노련해질 것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선 “바깥에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도 소통이 어려워졌던 건 오래됐다. 사실은 지난해 1월부터 이어져 온 것”며 “이종섭·황상무 문제, 김경수 복권, 명태균 문제. 이런 문제들을 푸는 것이 국민들이 원하는 최소공약수였다”며 “그때라도 들어주셨다면, 그래서 방향전환이 됐다면 국민들과 함께하는 정치가 되지 않았을까”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인터뷰 말미에 한 전 대표에게 3년간의 정치생활에 점수를 매겨달라고 요청했다. 한 전 대표는 딱 잘라 점수를 매기지는 않았다. 다만 ‘발전형 정치인’이라는 지론을 내놨다. 그는 “부족한 게 많다. 그런데 제가 그간 정치를 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30년 정치하면서 겪을 수 있는 일보다 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부족한 점을 고쳐나가면서 노련해지는 건 분명히 있었다. 특히 사람 간의 관계에서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처럼 ‘가짜 경제’로 돈만 퍼줘선 안 된다”고 비판한 뒤 자신의 ‘경제사령탑 대통령’에 대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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