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 선고받았지만, 간첩죄 적용 안 돼
‘적국’→‘외국’으로 바꾸는 형법 개정안
작년에 발의됐지만, 악용 가능성에 반대
중국 정보당국에 포섭돼 우리 군의 ‘블랙요원’ 명단을 비롯한 군사기밀을 7년여간 유출한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 A씨(50)가 최근 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나라의 정보기관이 통째로 뚫린 것에 재판인데 현행법의 한계로 ‘간첩죄’는 적용되지 않았다.
30일 중앙지역군사법원에 따르면 군사법원은 지난 21일 열린 A씨의 선고공판에 징역 20년과 벌금 12억원을 선고하고, 추징금 1억6205만원을 명령했다. 한 달여 전 결심 공판에서 군검찰이 구형한 형량은 무기징역에 벌금 8억원, 추징금 1억6205만원이었다.
A씨는 지난 2017년께 중국 정보요원 추정 인물에 포섭돼 2019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금전을 수수하면서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지난해 8월 구속 기소됐다. 군형법상 일반이적 혐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뇌물 혐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1990년대부터 부사관으로 정보사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00년대 중반 군무원으로 신분이 전환됐고, 범행을 저지를 당시 정보사 팀장급으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기소할 당시에는 5급 군무원 신분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문서 형태로 12건, 음성 메시지 형태로 18건 등 총 30건의 정보사 자료를 빼돌렸다. 유출된 기밀 중에는 신분을 숨기고 활동하는 블랙요원 명단도 포함돼 있었다. 유관 정보기관으로부터 통보받아 이를 인지한 정보사는 곧바로 대응 조치에 나섰다.
정보사는 대북 군사정보 수집과 해외 첩보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대북공작과 휴민트(인적 첩보 체계) 활동을 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원 신상 유출은 곧 정보사 전체가 무너졌다는 의미다. 신상 유출로 인한 피해 규모는 돈으로 환산하는 것조차 불가하다는 지적이다.
A씨의 범행이 간첩 활동이 분명함에도 그의 죄목에서 간첩죄는 빠졌다. 초동 수사를 맡은 국군방첩사령부가 그에게 군형법상 간첩죄를 적용해 군검찰로 송치했지만, 군검찰은 간첩죄를 최종적으로 제외했다. A씨가 기밀을 넘긴 대상이 재중동포 추정 중국인이었기 때문이다.
현행법(형법 98조)은 적국(북한)을 위해 간첩 활동을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에 대해서만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한다. 군사상 기밀을 누설한 자도 동일한 법령을 적용받는데 이 역시 적국인 경우에만 해당한다.
A씨의 수사 과정에서 군검찰은 그가 기밀이 북한에 넘어갈 것을 알고 기밀을 수집·유출한 것인지를 합리적 의심 없이 법적으로 충분히 입증하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간첩죄가 아닌, 일반이적죄로 징역 20년형이 나온 전례는 흔하지 않다.
현행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A씨의 사건이 국회 비공개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내용 보도 등을 통해 일반에 알려진 지난해 6월 말께부터 끊이지 않았다. 현행법 조항에서 ‘적국’을 ‘외국’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정치권에서 쏟아졌다.
형법 개정안은 제22대 국회 개원 후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되기 전인 지난달 21일 대표 발의했다. 국회 법사위 소위에서 여야 합의로 의결됐지만, 현재 야권이 ‘악용 가능성’ 등을 주장해 계류 중이다.
최근 A씨의 선고가 이뤄진 것을 계기로 현행법 개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권을 중심으로 쏟아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적국을 비롯한 모든 외국 정부, 또는 외국기관·정당·부처·군 등의 소속이거나 이를 위해 간첩 활동을 하는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한다.
한편 A씨는 중국 요원에게 40여 차례에 걸쳐 금전을 요구하며 적극적으로 범행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A씨가 요구한 돈의 액수는 총 4억원에 달한다. 자신의 범행으로 동료들의 목숨마저 위협에 빠트리며 그가 실제로 받은 돈은 1억6205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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