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대, 서울시청 배구선수 활동
무릎, 허리 부상으로 그만둬
당구는 만남의 예술이라고 한다. 예측을 통한 공과 공의 만남은 물론, 남녀노소 누구나 큐를 잡고 즐기는 만큼 교류의 가교 구실도 한다. 또한 선수 생명이 긴 종목 특성상 다채로운 사연과 함께 운명처럼 당구에 입문한 선수도 존재한다.
이재웅 바둑8단, 박동준 경륜선수 출신
근래 다른 종목 선수로 활동하다가 부상 등 여러 이유로 하차한 뒤 프로당구 무대를 누비는 이들이 주목받는다. 지난 14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PBA스타디움에서 끝난 24/25시즌 드림투어(2부) 7차전에서 우승한 오정수도 마찬가지다.
23/24시즌 챌린지(3부)투어를 통해 프로당구에 입문한 오정수는 배구 엘리트 선수 길을 20년간 지속한 이력이 있다. 조선대를 졸업해 서울시청에서 아웃사이드 히터로 2년간 핵심 구실을 한 그는 3년차에 무릎과 허리 부상으로 쓰러졌다. 선수 길을 포기한 뒤 2년간 모교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했다.
당구와 연을 맺은 건 2012년 제주도에 귀향하면서다. 취미로 큐를 잡았는데 ‘20년 지기’로 알려진 김현석(PBA 1부, 해설위원)에게 당구를 배웠다. 2년 전부터 프로당구 선수로 제2 인생을 그렸는데 마침내 커리어 첫 우승도 달성했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황득희(에스와이)는 엘리트 태권도 선수 출신이다. 고등학교 시절 경기도 종별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실력파였다. 그런데 태권도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과정에서 당구매력에 빠졌다. 동호인 생활을 하다가 정식 선수로 등록, 불굴의 의지로 프로 무대까지 밟았다.
또한 한국기원 소속 8단 출신으로 인터넷 바둑 ‘바투’에서 이름을 알린 이재웅, 경륜 선수 출신 박동준, 초등학교 시절 육상 선수를 경험한 이충복 등이 있다.
여자부 LPBA에서는 2000년대 초반 30세 나이에 당구에 입문한 박지현이 대표적이다. 그는 학창 시절 육상 선수였는데 성인이 되기 전 무릎 연골 파열 부상으로 포기했다. 생계에 대한 고민이 커진 20대에 당구장에서 우연히 일했다. 간간이 큐를 잡았는데, 남다른 운동 신경과 승리욕은 그를 선수의 길로 이끌었다. 여러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여자 3쿠션 선수의 길을 개척한 주역 중 한 명이다.
선수생명 긴 당구 선수 운명도 바꿔
최혜미는 중고등학교 시절 유도 선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지도자의 구타 등에 상처를 입어 그만둔 일화로 유명하다. 성인이 돼서 화장품 영업 등을 하며 생활했는데 어려움이 반복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친구 권유로 당구장에서 일한 게 변곡점이 됐다. 함께 근무한 최완영이 그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당구를 지도했다. 최혜미는 최완영의 지도를 잘 따르면서 동호인 대회 우승을 해냈다. 그리고 LPBA 원년 오픈챌린지에 참가해 6위 안에 들면서 프로의 길을 걸었다.
‘부부 사례’도 있다. 신기웅 오수정 부부다. 신기웅은 초등부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이다. 오수정은 사이클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으로 역시 부상으로 은퇴한 적 있다. 미래를 두고 고민하던 2008년 친구들과 당구장에 갔다가 당구 매력에 빠졌다. 당시 당구장 사장이 신기웅이다. 둘은 운명처럼 만나 부부 연을 맺었고 남다른 운동DNA를 앞세워 함께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당구의 매력은 여러 사람의 운명도 바꿔놓는다. 그만큼 당구는 풍성한 스토리가 존재한다. 프로당구가 흥행을 지속하고 대한당구연맹도 새 회장을 선출했다. 더 나은 미래를 그리는 가운데, 종목 특성을 살려 다채로운 스토리 콘텐츠 개발은 물론 당구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입문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환경 조성을 기대해 본다. [김용일 칼럼니스트/스포츠서울 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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