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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MSD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신약개발 연구소”…AI로 후보물질 찾고 로봇팔이 생산

작년 글로벌 매출 42조원 올린 세계 1위 항암제 ‘키트루다’ 만든 곳 통유리 건물 전체가 신약개발 타워 논문 발표 일주일만에 연구에 적용 10명이 하던 일 2명이 다 하고 2~3년 걸리던 과정 단 몇달로 축소

  • 고재원
  • 기사입력:2025.07.03 19:03:34
  • 최종수정:2025-07-03 19: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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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글로벌 매출 42조원 올린
세계 1위 항암제 ‘키트루다’ 만든 곳
통유리 건물 전체가 신약개발 타워

논문 발표 일주일만에 연구에 적용
10명이 하던 일 2명이 다 하고
2~3년 걸리던 과정 단 몇달로 축소
보스턴에 위치한 미국 머크 연구개발센터에 구축된 ‘랩터 시스템’ 연구실. 노란색 로봇팔이 360도 회전하며 알아서 단백질을 만들고 배양과 정제, 포장 등 일련의 과정을 수행한다. 전 세계 제약사들이 궁금해하는 이 시스템으로 10명이 하던 일을 2명이 할 수 있게 됐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MSD]
보스턴에 위치한 미국 머크 연구개발센터에 구축된 ‘랩터 시스템’ 연구실. 노란색 로봇팔이 360도 회전하며 알아서 단백질을 만들고 배양과 정제, 포장 등 일련의 과정을 수행한다. 전 세계 제약사들이 궁금해하는 이 시스템으로 10명이 하던 일을 2명이 할 수 있게 됐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MSD]

“여기는 인류를 살릴 혁신신약이 태동하는 현장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핫한 ‘최첨단(Cutting-Edge) 과학기술’을 적용하고 있는 연구실이지요. 새로운 치료제의 가능성이 보이는 논문이 나오면 일주일 만에 바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작년 기준 글로벌 1위 매출 의약품은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이다. 꿈의 항암제로 불리는 이 약은 2024년에만 295억 달러(약 42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280만 명의 환자가 키트루다로 암을 치료했다.

한국에서도 2015년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고, 우리나라에서 그간 확보한 주요 치료 목표(적응증)만 18개 암종 34개에 달한다.

매일경제는 키트루다가 탄생한 미국 메사추세츠주 보스턴의 MSD(미국 머크) 연구개발 센터를 찾았다. ‘R&D비용을 아끼지 않는 회사’라는 명성답게, 건물 전체가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신약개발 타워’ 같았다. MSD는 지난해 매출액의 약 28%인 179억달러(25조원)를 R&D에 쏟아부었다.

세계 바이오산업의 중심이자 세계 최대 바이오클러스터 보스턴에서도 ‘혁신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곳이다. 근처에는 베스이스라엘병원과 하버드대 의대가 있다. 이 센터 내부가 한국 취재진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약개발에 10년’은 옛말…자고나면 단축
AI·머신러닝 등 최신기술 거의 실시간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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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전체가 통창으로, 꼭대기층에서는 보스턴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조지 아도나 탐색∙전임상 개발∙중개 의학 총괄(수석부사장)은 “건물 전체가 거대한 연구실이라고 보면 된다”며 “연구자 5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한 층 아래에선 신약 개발의 첫 단계인 후보물질 발굴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다. 우베 밀러 정량생명과학부 디렉터는 숫자와 그래프들이 복잡하게 얽힌 컴퓨터 화면부터 보여줬다. 전세계 제약바이오 업계가 주목하는 인공지능(AI)과 기계학습(ML)을 신약 후보물질 분자 설계에 활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밀러 디렉터는 “AI와 ML을 활용해 더 나은 인사이트를, 더 빠르게 도출하고 있다”며 “이러한 접근 방식은 후보물질 설계 향상 및 최적화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AI·ML은 후보물질 발굴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초기 연구 전반에 적용된다. 신약 개발 타임라인을 단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주요 도구”라고 덧붙였다.

마이크 베일링 정량생명과학부 수석연구원도 “우리는 AI·ML 모델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샘플을 염색하거나 고정할 필요 없이 세포나 조직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명시야 광학 현미경’ 이미지 분석에도 이미 AI·ML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 아래 층에서는 파란 가운의 연구자들이 분주히 연구 중이었다. 조나단 베넷 의약화학부 부사장은 “화학자들은 일반 하얀 가운이 아닌, 방염 기능이 있는 파란 가운을 입고 있다”며 “후보물질 발굴 과정에서 다양한 측면의 연구를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발굴한 후보물질의 바이오마커(생체지표) 연구부터, 전임상 개발, 인체 대상 테스트를 진행해도 될 지 평가하는 독성학 연구가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 발굴한 후보물질의 임상 돌입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단계다. 후보물질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거친다. 키트루다를 개발할 때에도 이곳에서 다른 화학요법을 결합한 여러 접근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키트루다 병용임상 1600건 진행중
韓바이오기업 11곳과 14건 임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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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넷 부사장은 “이 과정을 통해 키트루다 병용요법에 대한 잠재력을 확인했고, 초기 전임상 데이터를 확보했다”며 “회사가 자신감을 갖고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현재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키트루다 병용임상은 1600건이 넘는다. 한국에서도 11개 바이오기업들과 함께 14건의 병용임상을 진행 중이다.

이 건물에서는 신약 개발을 위한 치료용 단백질 후보물질도 생산할 수 있다. 이른바 ‘랩터 시스템’이 구축된 연구실이다. 연구실에 들어가니 공룡의 팔을 닮은 로봇팔이 보였다.

켄달 우즈 바이오로직스부 연구원이 랩터 시스템의 버튼 하나를 누르니 알아서 움직이며 자동으로 단백질 생산과정을 도왔다. 우즈 연구원은 “2명이 이 연구실을 운영한다”며 “로봇팔을 통한 연구실 자동화 덕분에 높은 생산성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랩터 시스템은 얼마 전 업그레이드도 거쳤다. 이전 버전의 로봇팔이 복도 한 켠에 놓여 있었다. 아도나 수석부사장은 “혁신에 기반한 R&D는 MSD의 핵심 가치”라며 “좋은 과학기술이 나오면 바로 적용한다”고 말했다.

신약 개발의 전 과정을 품고 있는 MSD의 R&D 센터는 보스턴을 포함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영국, 아일랜드, 싱가포르 등 10곳이 있다. 항암제를 포함해 백신과 감염 질환, 심혈관대사 질환, 면역학, 신경과학, 안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중이다.

아도나 수석부사장은 “MSD R&D 센터에서는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이 모여 과학이 주도하는, 환자를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제2, 제3의 키트루다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보스턴 고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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