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메라 앞이 아니라, 카메라 뒤까지 자신이 연출한다.”
한가인은 책을 꺼내 들었고, 고소영은 화장대를 열었다. 고현정은 김을 굽고, 최화정은 친구들을 불렀다. 이들이 모인 곳은 방송국도, 영화 세트장도, 거창한 무대도 아니다. 부엌이고, 거실이고, 길거리며, 서재다. 일상의 반경 안에서, 이들은 연기가 아닌 진짜 ‘자신’을 꺼내놓는다. 가장 비공식적인 공간이, 가장 솔직한 무대가 됐다.
20·30대 배우들이 주도하던 유튜브 세계에 40·50대 스타들이 잇따라 진입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색깔과 내공을 바탕으로 차분하고 깊이 있는 콘텐츠를 선보이며 여러 세대와 소통하고 있다. 기존 방송 시스템에선 기획사와 방송사, OTT의 선택을 기다려야 했다면, 이들은 스스로를 기획하고 자신을 연기한다. 유튜브는 배우 스스로가 무대를 기획하고 연출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배우 이민정은 지난해 유튜브 채널 ‘이민정 MJ’를 오픈하고 이 흐름에 합류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시장을 보고 요리를 하며, 가족과의 사소한 일상까지 공유하는 방식은 ‘스타’에서 ‘생활인’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남편 이병헌과의 사적인 순간을 유쾌하게 풀어내며, 연예인 부부 콘텐츠라는 틈새 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한가인은 지난해 채널 ‘자유부인 한가인’을 열고 기존의 단아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지적인 매력과 허당미를 동시에 보여주며,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이미숙은 지난 5월 유튜브 채널 ‘이미숙+숙스러운 미숙씨’를 개설하고 과거의 ‘카리스마’를 벗고 자신만의 소소한 삶의 결을 보여주고 있다.

27년 만에 라디오에서 하차한 최화정이 향한 곳 역시 유튜브였다. 지난해 5월 유튜브 ‘안녕하세요 최화정이에요’를 개설해 또 다른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일상을 쇼처럼’ ‘삶을 축제처럼’ 즐기는 무심한 듯한 그의 콘텐츠는 시청자들을 자연스럽게 ‘몰입’시키며 폭발력을 보여주고 있다.
고소영은 집 안 일상을 공개하며 “완벽한 톱스타”보다는 “워킹맘으로서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발판 삼아 데뷔 33년 만에 MBN ‘오은영 스테이’를 통해 고정 예능에도 출연한다.
고현정과 김남주는 유튜브에서 ‘배우’라는 틀을 벗고, ‘사람’ 고현정, ‘사람’ 김남주로 새롭게 거듭났다. 고현정은 자신의 주방에서 김을 굽고, 낯선 골목을 걸었다. 김남주는 여배우라는 수식어를 내려놓고, 차 한 잔을 마시는 평범한 일상을 공유한다.

이들은 왜 유튜브 무대로 향했을까. 온라인 공간을 활용한 ‘맞춤형 소통’ 방식은 대중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데 효과적인 전략으로 읽힌다. 연예인이 아닌 ‘나’로 존재하는 공간, 그것이 이들이 유튜브를 선택한 이유다. 디지털 생태계도 바뀌었다. 시청자들은 더 이상 정제된 스타 이미지보다, 날것의 진정성을 원한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유튜브 활동을 ‘제2의 수익 창구’로 해석한다. 실제로 뷰티, 육아, 라이프 스타일 관련 콘텐츠는 PPL 연계성이 높다. 배우 개인의 브랜드화도 가능하다. 하지만 수익만을 위한 선택이라고 보긴 어렵다. 콘텐츠 기획 단계부터 스스로 참여하는 방식은, 이들이 단지 ‘브랜드’가 아니라 하나의 ‘제작자’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민정은 남편 이병헌과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연예인 부부’ 이상의 서사를 만들고 있다.
신비주의를 벗고 자기 삶을 콘텐츠로 풀어내는 배우들. 이들에게 유튜브는 복귀가 아니라, 또 다른 전성기를 여는 런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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