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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승자는 없다…빈틈을 노려라 [언더독의 반란]

[전문가 진단] 산업 환경·소비자 패턴 변화 읽어야

  • 문지민,정수민
  • 기사입력:2025.05.01 13:02:22
  • 최종수정:2025.05.01 1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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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진단] 산업 환경·소비자 패턴 변화 읽어야

전통 강자를 밀어내고 틈새를 파고든 후발 주자들이 산업 현장 판도를 바꾸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단순한 우연이나 일회성 이변으로 보지 않는다. 후발 주자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기존 강자의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든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한 고민 없이는 기존 강자가 다시 업계 선두 주자로 올라서지 못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선발 주자를 잡은 언더독도 현실에 안주하면 언제든 그 위치가 다시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 중론이다. 산업 환경과 소비자 패턴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얼마나 민첩하게 변화에 대응하느냐가 시장 판도를 뒤바꿀 전망이다.

사진설명

재계에 주는 시사점은

꾸준한 혁신 없으면 도태

언더독의 반란은 시장이 구조적으로 재편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소비자 행동 변화에 따른 산업 구조의 전환, 조직 규모가 비대해지면서 나타나는 비효율성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성심당이나 쿠팡은 온라인 시대 소비자 행동 패턴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 기존 강자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며 “정보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고 소비자 취향이 다양해지는 환경에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민첩한 소통이 승패를 가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렌드 변화에 따른 구도 변화는 최근 스포츠 산업에서 두드러진다.

과거 스포츠 산업은 나이키와 아디다스 양강 구도가 오랜 기간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러닝화 시장에서 급성장 중인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호카가 이 구도에 균열을 내는 모양새다. 코로나19 사태 후 러닝 붐이 일면서 나타난 소비자 패턴 변화에 호카가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빠르게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미국 러닝화 시장에서 호카 점유율은 9%에 불과했다. 그러나 팬데믹 후 2021년에는 점유율이 15%까지 치솟았다. 신호정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호카는 코로나19 이후 러닝 열풍에 맞춰 쿠션 중심 제품을 내놨다”며 “실외 활동에 적합한 신발을 찾는 소비자 트렌드 변화를 제대로 간파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기존 강자는 트렌드 변화를 신속하게 따라가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성공 방정식에 갇혀 기존 전략을 고수하며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신세계나 뚜레쥬르가 쿠팡과 성심당에 따라잡힌 배경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른 전환에 실패한 결과다. 마케팅 측면에서 효율적이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선발 주자가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현상이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기업 규모가 확대되면 내부 의사결정 단계가 늘어나고, 전략적인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영민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이 커질수록 전략이나 의사결정을 도출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든다”며 “내부 조율부터 법률 검토 등 과정이 복잡해지면서 민첩성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이유로 대기업은 확장을 멈추고 조직을 나누거나 재정비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며 “다시 작아지려는 노력은 퇴보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진화”라고 덧붙였다.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해 몰락의 길을 걸은 대표적인 기업이 노키아다. 과거 피처폰 분야에서 세계 1위로 군림하던 노키아는 아이폰 등장 후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었다. 신호정 교수는 “노키아는 스마트폰으로 변화하는 시장에서 전략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몰락했다”며 “반면 이 틈새를 노린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선발 주자 입장에서 기업 덩치가 커져 빠른 시장 대응이 어렵다면 인수·합병(M&A)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선택지다. 충분한 자금력을 갖추고 있다면 M&A를 통해 빠르게 시장 지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길태민 EY한영 M&A솔루션그룹 공동리더는 “아모레퍼시픽이 코스알엑스를 인수하면서 스타트업 DNA를 내재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처럼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기업이 혁신의 기회를 찾고 과감히 M&A를 추진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위 올라선 후발 주자, 과제는

다음 언더독 도전 대비해야

선발 주자를 잡는 데 성공한 언더독도 마냥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계속해서 혁신하지 않으면 미래의 또 다른 언더독에 언제든 자리를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일시적인 성공에 안주하면 과거의 공룡들처럼 주저앉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신호정 교수는 “후발 주자가 언더독으로 성공한 건 환경이 맞아떨어진 영향이 크다”며 “지금 잘하고 있어도 다음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면 얼마든지 몰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쿠팡의 성공도 팬데믹이라는 외부 환경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면서도 “쿠팡은 그 뒤로 자체 물류망 확대, 유료 회원제 도입 등 생태계를 키운 덕분에 지금의 지위를 확보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언더독이 또 다른 언더독에게 추월당하지 않으려면 내부 혁신을 지속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자본에 의존하지 말고, 조직 운영의 효율성과 외부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는 데 더욱 역량을 쏟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영민 교수는 “자본만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며 “특히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시장 감각, 소비자와의 유연한 접점 구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은희 교수도 “제품이 좋다고 소비자가 알아서 찾아주는 시대는 끝났다. 지금의 언더독이 또 다른 언더독에게 역전당하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소비자와 호흡하고 트렌드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계속해서 틈새시장을 포착해야 시장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후발 주자는 작고 빠르기 때문에 새로운 고객 경험과 기술, 채널을 통해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다”며 “문제 해결 방식의 유연성과 추진력은 작은 조직이 큰 조직보다 유리한 면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득권 기업이 간과한 작은 변화가 시장 지형을 바꾸는 기폭제가 된다”며 “이런 빈틈을 잘 파고들어야 지속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굳건한 리더십도 언더독에 필수적인 요인이다. 빈번하게 수장이 교체되면 사업 모델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길태민 공동리더는 “사업 초창기 공동구매형 소셜커머스를 표방한 쿠팡과 위메프, 티몬이 결정적으로 차이를 보인 이유는 리더십”이라며 “쿠팡은 꾸준히 사업 모델을 진화시키면서 리더만이 할 수 있는 과감한 투자 결정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냈다”고 분석했다.

다만 후발 주자가 사업 확장을 위해 무리한 M&A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높은 인수 비용으로 ‘승자의 저주’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실사 과정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숨겨진 부실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한 새로운 사업에 집중하다 기존 사업 집중도가 떨어져 경쟁력이 약화될 우려도 있다. M&A 전 반드시 내부 역량을 점검해봐야 하는 이유다.

“M&A 성공은 인수 자체보다 인수 후 통합(PMI) 과정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 다른 조직 문화와 정보기술(IT) 시스템, 운영 프로세스 등을 효과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다. 통합 실패는 조직 내 갈등을 심화하고 핵심 인력 이탈 등으로 이어진다. 이는 오히려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M&A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가 조직 전체의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김석집 대표의 조언이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정수민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8호 (2025.05.07~2025.05.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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