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잔류 시대 계속될까
AI 분야는 언제든 대퇴사 전환 가능
이런 대잔류 트렌드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결론부터 말하면 언제든 양상은 바뀔 수 있다. 강성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당분간 경기 침체 여파로 대잔류 시대를 유지하겠지만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대잔류 시기를 기업 특유의 지식을 축적해나가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건재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로봇과 AI가 일자리를 대체한다고는 해도 로봇·AI 수요 증가와 함께 인력난이 심화될 업종도 있다”며 “대잔류 트렌드는 언제든 ‘대퇴사’로 역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일부 업종은 다시 대퇴사 현상이 포착되기도 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AI나 반도체 분야처럼 투자금이 몰리고 글로벌 인재 수요가 높은 분야는 잔류보다 이직이 더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안정적인 고용 원해” 절반 이상은 ‘현 직장에 Stay’
직장인들은 ‘대잔류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직장인 상당수는 여전히 퇴사를 꿈꾼다. 다만 경제 불확실성을 우려해 안정적인 소득과 고용을 중시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 HR테크 기업 인크루트에 의뢰해 1월 7~9일 직장인 1056명을 대상으로 이직 계획 여부와 대잔류 시대에 대한 생각을 설문조사한 결과다.
‘향후 6개월 내 이직 계획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직장인 응답자의 40.5%가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으나 적극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이직할 계획이 없다는 응답자는 14.4%다. 직장인의 절반 이상(54.9%)은 당장 이직을 실행에 옮기기보다는 잔류(Stay)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이직을 원하면서도 현 직장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를 물었더니 응답자의 45.4%가 ‘안정적인 소득과 고용 보장’이라고 답했다. 이어 ‘경제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38.2%)’라는 답변이 많았다. 콕 집어 경제적 불확실성이 현 직장에 머무르는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 물었을 땐 72.9%가 ‘그렇다(매우 그렇다 또는 어느 정도 그렇다)’고 응답했다.
물론 직장인 10명 중 4명은 여전히 퇴사를 꿈꾼다. ‘이직을 적극적으로 계획 중’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40.4%다. 응답자들은 주로 ▲더 높은 연봉과 복지 혜택(64.2%) ▲경력 개발이나 더 나은 업무 기회(40.2%) ▲업무 강도 등 근로 환경 개선(29.1%)을 목적으로 이직을 고려 중이라고 응답했다. 이 통계만 놓고 보면 퇴사 희망자가 많아 보이지만 직장인 963명 중 82%가 ‘퇴사 계획이 있다’고 응답했던 2023년 설문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퇴사를 계획 중인 직장인 비율이 크게 줄었다.
또 최근 나타나고 있는 ‘대잔류(Big Stay)’ 현상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50.9%)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이번에도 경제적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근로자의 경력 발전을 저해할 수 있어 ‘부정적’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9.3%에 그친다.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는 지난해 초 인크루트가 기업 인사 담당자(대·중견·중소기업 회원) 7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4년 HR 이슈’와 일맥상통한다. 당시 조사에서 기업 인사 담당자 상당수가 앞으로 신입 채용은 더 위축되고, 재직자는 퇴사나 이직을 자제하고 한 직장에 오래 머무는 경향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들이 가장 많이 꼽은 이슈는 ‘신입 채용 감소(28.9%)’와 ‘경력직 리텐션 현상(23%)’이었다. 리텐션(Retention) 현상이란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신입 취업뿐 아니라 경력직 이직도 어려워져 재직자들이 퇴사나 이직을 자제하고 재직 중인 회사에 오래 다니려는 현상을 말한다. 인사 담당자들은 이런 리텐션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봤다.
“대잔류 시대엔 기업가치 체계부터 재정립해야”
네모파트너즈POC는 최근 ‘2025년 HR 인사이트’를 통해 ‘대잔류(Big Stay)’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대잔류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에게 조언을 물었다.
Q. 불황과 함께 찾아온 ‘대잔류’ 트렌드.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A. 불황이라고 해서 과거처럼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기보다는 기존 인력을 잘 유지하고, 유지한 인력의 역량을 계발(Value-up)해 다가올 성장의 시기(Growth-turn)를 준비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Q.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면.
A. 우선 모든 기업 구성원이 한 방향을 바라보도록 기업가치 체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대잔류 시대는 조직 결속력을 강화하고 변화에 필요한 추진력을 확보할 좋은 기회다. 다음으로 외부 인력을 확보하기보다는 내부 인재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활용해야 한다. 인력을 양적으로만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필요 역량을 정의하고 확보할 때다. 기억할 점은 소수의 핵심 인재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포괄적인 인재 보유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팬데믹 기간에 입사해 몰입도가 낮을 수 있는 인력이나 직급 통합 추세 영향으로 오랜 기간 집체 교육을 받지 못한 인력 등을 큰 틀에서 재사회화해 조직 내 역할에 대한 몰입을 강화해야 한다.
Q. 대잔류 시대, 근로자는 어떻게 대응할까. 경기가 나아지면 ‘대퇴사’ 시대가 다시 오지 않을까.
A. 기업들은 당분간 보수적 관점으로 인력을 관리하겠지만, 향후 핵심 인재뿐 아니라 인력 대부분에 대한 관리도 체계적으로 해나갈 것이다. 이 때문에 기업 구성원이라면 다른 기업으로 이직해 커리어를 성장시키기보다는, 본인이 익숙한 곳에서 역량을 향상하고 전문성을 강화해 조직 내에서 성장 비전을 찾는 모습이 유리할 것이다. ‘대퇴사’ 시대는 AI처럼 세상을 바꿀 만한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다시 나타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수호·정다운·조동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4호 (2025.01.22~2025.02.04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