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황금종려상 후보작 가운데 파나히 감독의 신작 '단순한 사고'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주목을 요한다. '단순한 사고'가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에 전문가 12명이 평점을 매기는 글로벌 영화 전문 매체 스크린데일리 그리드에서 3.1점(4점 만점)을 받으며 1위를 달리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엔진이 고장 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 한 남성의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서사는 시작된다. 이 남성에게서 도움을 요청받은 바히드는 느닷없이 이 남성을 이튿날까지 미행하고는 삽으로 그를 내려친 뒤 납치·살해하려 한다. 돈을 노린 단순 범죄는 아니었다. 바히드는 남성의 발걸음 소리를 유심히 들었고, 저 남성이 오래전 억울하게 감옥에 수감됐던 자신을 고문했던 부역자 '페그 레그'(peg leg·의족이란 뜻)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 남성은 극도의 두려움에 떨며 "내가 한쪽 다리를 잃은 건 작년이다. 나는 당신이 혐오하는 그자가 아니다"라고 울부짖으며 항변한다. 혼란스러워진 바히드는 저 의문의 남성을 밴 뒷좌석에 감금하고는 자신처럼 고문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이들을 한 명씩 찾아다닌다. "저 자가 페그 레그가 맞느냐"는 물음이었다. 이 여정에 결혼식을 하루 앞둔 신혼부부, 웨딩촬영 기사 등 고문 희생자들이 바히드가 모는 밴에 한 명씩 탑승한다. '단순한 사건'은 심각한 소재와 달리 기존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 '슬픔의 삼각형'을 떠올리게 할 만큼 서늘하고도 유쾌한 폭소가 장착돼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두 명의 검사'도 스크린데일리 공동 1위(3.1점)에 올라 이번 칸영화제 수상을 예감케 한다.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대륙을 냉각시켰던 1937년 소련의 한 감옥으로 카메라는 이동한다. 신임 검사 코르니예프는 "스탈린에게 내 사건을 다시 살펴보게 해달라"란 편지를 쓴 스테프니악과 대면한다. 코르니예프는 그의 이야기를 들은 뒤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한다. 교도소장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코르니예프는 확신에 차 이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영화 제목이 '두 명의 검사'인 이유는 스테프니악 역시 '전직 검사'였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시대의 억압이 생동감 있게 펼쳐지는 영화다.
클레베르 멘돈카 필류 감독의 '비밀 요원'도 올해 칸의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된다. 스크린데일리 평점은 2.8점으로 현재 3위다. 주유소 앞마당에 심하게 부패한 시체 한 구가 눕혀 있다. 시체 주변으로 파리가 날아다닌다. 그런데 주유소 직원은 노란색 비틀을 타고 도착한 주인공 마르셀로에게 "일요일에 살인이 벌어져 경찰에 이미 신고했는데, 경찰로부터 '지금은 올 수 없다. 도시 카니발(축제) 때문에 경비인력도 모자라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한다. 카니발로 들뜬 도시에서 별다른 이유도 없이 죽어 나간 사망자만 100명이다. 그러나 치안은 붕괴했고 공권력은 힘없는 자들의 희생에 무심하다. 영화는 비밀요원 출신인 마르셀로의 과거를 심리적으로 펼쳐 놓으면서 마르셀로의 눈에 비친 마을 사람들의 죽음, 그리고 그 이면에 도사리는 독재의 서늘함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21일 초연한 올리버 허머너스의 '소리의 역사'도 서정적 서사로 기대감을 충족시켰다. 이 영화의 주인공 데이비드와 라이오넬은 첫눈에 반한 남성들로, 그들은 음악을 교류하며 서로의 영혼과 심연을 알아본다. 세계대전에 참전한 데이비드가 죽음을 견디고 살아 돌아온 뒤 음악, 즉 소리의 기원을 찾아 둘은 배낭 하나를 지고 여행을 떠난다. "소리는 공기의 뒤섞임이다"는 극중 라이오넬의 대사를 고려한다면, 사랑이란 본질적으로 '존재의 뒤섞임'이기도 하다.

거장들의 기대작이 줄줄이 악평을 받는 기현상도 이번 칸영화제에서 흔한 풍경이었다. 특히 2019년부터 작년까지 6년간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무려 5개나 배급한 네온의 영화인 쥘리아 뒤쿠르노의 '알파'에 전 세계 영화 전문가들의 악평이 쏟아지는 이변이 벌어졌다(스크린데일리 평점 1.5점). 타리크 살레의 '공화국의 독수리'는 이집트 국민 배우 조지 파흐미가 '정권을 찬양하는 대통령 영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라는 압력을 받은 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파흐미가 대통령 외모를 어떻게 표현할지, 또 어떤 장면은 꼭 필요하고 어떤 장면은 삭제해야 하는지 등에 관해 겪는 갈등이 '공화국의 독수리' 중심 서사를 이룬다. 하지만 이 영화는 1.9점으로 높지 못한 평점을 받았다.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을 맡은 아리 애스터 감독의 '에딩턴'(1.5점), 마리오 마르토네의 '푸오리'(1.0점)도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았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는 한국 영화가 단 한 작품도 선택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일본·중국 영화는 선택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영화가 올해 프랑스 칸에서 아예 상영되지 않은 건 아니다. 허가영 감독의 단편 영화 '첫여름'은 '라 시네프' 부문에 선정돼 22일 공개됐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허진호 감독의 '보통의 가족'도 시네마 부문에 진출해 22일 칸 알렉산더 극장에서 상영됐다. 이날 '보통의 가족'은 전석 매진됐다.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감독들의 '공개 비판'도 곳곳에서 터져 나와 눈길을 끌었다. 칸 명예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로버트 드니로는 외국산 영화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이달 초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예술은 독재자에게 위협이 된다. 예술가들은 이러한 공격에 맞서야 한다"고 정면 비판했다. 웨스 앤더슨은 "영화는 그런 식으로 '배송'되는 게 아니다"며 조롱에 가까운 발언을 퍼부었다. 이번 칸영화제 수상 결과는 24일 저녁에 발표된다. 한국시간으로는 25일 새벽이다.
[칸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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