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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춘추] 교과서보다 게임

  • 기사입력:2025.07.30 17:46:21
  • 최종수정:2025-07-30 18: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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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교육이 중요하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주식·코인·부동산이 일상 대화에 오르내리며 빚투가 만연한 요즘 시대엔 더욱 그렇다. 그래서일까. 정부도 내년부터 고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금융과 경제생활' 과목을 도입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교사 연수나 교재 개발에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수능에 포함되지 않는 과목을 학생과 학부모가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일까. 그뿐 아니다. 교실에서 이뤄지는 금융 교육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학교 교실에서 이뤄지는 금융 교육은 요리 한 번 안 해본 아이에게 레시피만 외우게 하는 식이 되기 쉽다. 실전 없이 개념만 배우는 수업은, 머리에 남기보다 금세 흘러간다.

그렇다면 해답은 어디에 있을까. 금융은 결국 삶의 언어다. 배우는 게 아니라 겪으면서 체화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요즘 세대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 가장 자주 접하는 플랫폼이 있다. 바로 디지털 금융 앱이다.

이 앱들은 단순히 잔고를 보여주고 이체를 돕는 기능을 넘어 소비를 돌아보게 하고, 저축을 습관화하며, 신용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한다. 무엇보다 지루하지 않다. 누르면 바로 반응하고, 달성하면 보상이 있고, 숫자와 그래프가 움직인다.

여기에 게임 요소까지 더해지면 이야기는 더 흥미로워진다. 가상의 미션을 통해 저축 목표를 달성하거나, 소액 투자를 해보면서 포트폴리오 변화를 시뮬레이션하고, 퀴즈를 풀면 포인트가 쌓여 그 포인트로 실제 금융상품을 체험할 수 있는 구조라면? 금융이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게임처럼 해보는 것'이 된다.

이런 방식은 특히 Z세대, 알파세대, 미성년자에게 매우 효과적이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과 게임에 익숙한 세대다. 재미없으면 외면하고, 흥미가 생기면 놀라운 집중력을 보인다. 금융사가 이 특성을 활용해 게이미피케이션 기반 금융 교육을 설계한다면 단순한 사회공헌활동(CSR)을 넘어 장기 고객을 유치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상의 아르바이트'로 수입을 벌고, 이를 나눠 저축·소비·투자에 배분해 보는 시뮬레이션, 친구와의 금융 퀴즈 배틀, 가상 주식 시장에서의 투자 연습 등이 가능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금융의 '맛'을 본다. '돈은 쓰면 줄고, 모으면 쌓이고, 신용은 믿음이라는 사실'을 직접 체험한다. 그리고 그 습관은 커서도 남는다.

금융사는 이 과정에서 젊은 세대의 신뢰를 얻고, 데이터 기반 맞춤형 서비스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당신의 금융 첫 경험을 함께했습니다'라는 상징적 관계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강력한 자산이다.

무엇보다 이것은 사회적 책임의 새로운 방식이기도 하다. 미래 세대가 더 나은 금융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투자이자 지속가능한 금융 생태계를 위한 씨앗 뿌리기다.

교실 안에서 칠판을 통해 배운 금융이 아니라, 화면 속에서 직접 해보며 체험한 금융이 진짜 교육이 되는 시대. 이제 금융은 "공부하라"는 말보다 "해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분야가 됐다.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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