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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책과 미래]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를 미리 체험하다

  • 기사입력:2025.07.11 17:56:12
  • 최종수정:2025-07-11 23: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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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내다보는 게 무의미한 경우가 있다. 삶의 변화가 가속적 도약을 거듭해 정해진 미래를 수시로 없던 일로 만들 때다. 자본주의가 개화할 무렵이 그랬다. 마르크스는 낡은 세계가 파괴되는 모습을 한 줄로 압축했다. "단단한 건 모두 공중으로 사라진다." 현재 우리가 인공지능(AI)을 대하는 마음도 비슷하다.

'먼저 온 미래'(동아시아 펴냄)에서 장강명 작가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을 2016년 3월 9일로 초대한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패한 날이다. 이후 인공지능은 많은 분야에 등장했다. 작가처럼 쓰고, 화가처럼 그리고, 음악가처럼 작곡하고, 의사처럼 진단했다.

"소설 쓰기에 필요한 게 창의성이든 문학성이든, 인간만 가질 수 있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알파고의 교훈이다." 지성과 창의성은 이제 인간 독점이 아니다. 곳곳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한다. 속도도 빨라서 대응조차 쉽지 않다. 학교만 해도 학생들이 인공지능으로 제출한 과제 탓에 몸살을 앓고 있다.

문학은 체험과 기억을 통해 인간의 길을 연다. 돌아보며 성찰하고 감지해 경고한다. 다른 인공지능 책과 달리 이 책에서 장강명은 작가의 일을 한다. 섣불리 예측하는 대신 바둑계가 '이미 겪은' 일들을 생생히 기록해 보여준다.

알파고는 바둑의 역사와 문화를 바꿨다. 바둑을 대하는 태도, 바둑을 둘러싼 분위기, 바둑을 익히는 방식이 통째로 달라졌다. 바둑인들은 절망하고 방황하고 또 적응했다. 이세돌은 바둑이 예술이 아니라 게임으로 전락했음을 깨닫고 은퇴했다. 반면 신진서는 인공지능을 수용하는 쪽을 택했다. 인공지능을 스승 삼아 공부하고 그 수법을 체화해 세계 정상에 올랐다. 아마도 앞으로 이런 변화가 모든 분야에서 일어날 테다.

경고도 담겨 있다. 우리의 미래 자체가 될 인공지능이 이윤부터 챙기는 소수 기업 손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과연 인류가 수천 년간 가꾸고 지키고 교양해온 인간적 가치들을 소중히 여길까. 저자는 이에 회의적이다. 인공지능이란 짐승이 풀려나 사람을 잡아먹지 못하게 그 방향과 속도를 적절히 제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런데 작가의 뒤를 좇아 알파고 이후 바둑계에 일어난 일을 읽는 건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일으킬 변화를 '미리 체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미 벌어진 변화에 관한 르포이자 앞으로 올 세상에 관한 SF 보고서나 다름없다. 미래의 공포를 경험한 과거로 만든 사람은 놀라지 않는다. 이것이 앞날이 컴컴할 때 인간이 희망을 찾아내고 일으키는 방법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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