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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스트] 퇴직연금 활성화, 현실 인식이 먼저

퇴직연금 가입률 50% 수준
영세 사업장에선 '언감생심'
퇴직시 목돈 필요한 근로자
일시금 수령 선택할 수밖에
정부 현장의 고충도 잘 봐야

  • 기사입력:2025.07.02 17:08:48
  • 최종수정:2025.07.02 17: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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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의 퇴직연금 개선 방안이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됐다고 한다. 퇴직연금을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 현행 1년 이상 근무해야 받는 퇴직급여를 3개월 이상 일하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 퇴직연금 자산의 전문적 운용을 위한 퇴직연금공단 신설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국민연금 개혁이 일단락된 이후 퇴직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 확대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퇴직연금은 후불임금 성격으로 퇴직 이후 근로자의 소득 단절을 보전하는 기능을 했던 퇴직금을 1995년 고용보험 시행 이후 노후소득보장으로 기능 전환을 할 목표로 만들어졌다. 역대 정부는 현행 퇴직급여 제도가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1300만명에 달하는 퇴직급여 대상 근로자 중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 수는 53% 수준이고, 퇴직연금 가입을 한 근로자라 해도 55세 이후 급여 수령 시 연금을 선택한 계좌는 7만4000계좌(2024년 기준)에 불과해 근로자의 보편적 노후소득 제도로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퇴직연금의 오랜 숙제인 퇴직연금 자산 운용수익률은 2024년 4.77%로 높아졌으나 최근 5년 및 10년간 연환산 수익률은 2.86%, 2.31%로 낮아서 수익률 변화 추이는 좀 더 봐야 한다. 여기에 1년 미만 근속 근로자는 퇴직급여 지급 대상이 아니어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고용노동부가 보고한 개선 방안은 기존 퇴직연금과 관련된 정책과제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전면적 개혁 방안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퇴직연금이 원래의 입법 취지와 같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제도나 행정상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퇴직연금 가입률이 낮기는 하지만, 퇴직연금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사업장 대부분이 중소 영세 사업장이다.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그동안 사내에 내부자금으로 활용하고 있던 근로자에게 지불해야 할 퇴직급여 충당부채를 금융기관에 적립하고, 해당 자금만큼은 금융기관에 다시 대출해 조달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 사업장에서는 추가적인 자금 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세제 혜택에도 불구하고 퇴직급여를 연금이 아닌 일시금으로 수령하는 것은 퇴직 시에 주택담보대출금 상환, 은퇴 후 비상시에 대비한 목돈 마련 등 일시금 수요가 현존하기 때문이다. 현실적 자금 수요를 무시하고 노후 연금으로 받기를 강권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1년 미만 근로한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은 알바 등 임시 일용직 근로자를 주로 고용하고 있는 그렇지 않아도 가장 힘든 사업자인 편의점 식당 등 영세 자영업자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또한 퇴직연금공단을 만들어 퇴직연금을 일괄 관리할 것이면, 퇴직연금 제도를 국민연금 제도와 별도로 운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퇴직급여 제도 도입 20년을 경과하고 있지만, 노후소득보장 제도로서 퇴직연금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못한 것은 정책의 잘못보다는 어려운 민생경제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보완하는 퇴직연금 제도로서 정립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시간이 필요하다. 이상적 노후소득보장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는 정부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퇴직급여 비용을 오롯이 부담하고 있는 사업장 입장과 미래 노후 준비 이전에 현재 생활고 해결이 급선무인 근로자 입장을 먼저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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