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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춘추] 불가능한 협상은 없다

  • 기사입력:2025.04.29 17:49:56
  • 최종수정:2025-04-29 17: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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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에 '거래의 기술'이라는 제목을 붙여 스스로 협상의 대가임을 자부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극단적인 미치광이 전략(?)'으로 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EU), 중국 등 주요국의 철강, 자동차, 전방위 수입품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전례 없는 무역전쟁을 촉발시켰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국제무역 체계의 근본을 뒤흔드는 지각변동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경쟁국과 동맹국을 불문하고 거센 반발과 보복 조치를 불러오며 글로벌 무역 질서를 혼란에 빠뜨렸다.

미국은 왜 무역전쟁을 유발하는가. 우선 '미국의 경제 패권,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또한 중국이 패권국가로 부상하고 있어 지금 제어하지 못하면 패권의 무게추는 중국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초조감의 발로라 할 수 있다. 나아가 미 제조업이 황폐화되면서 블루칼라 중산층이 붕괴되고, 러스트 벨트가 분노에 휩싸여 있기도 하다. 트럼프의 강경한 관세 정책은 이 모든 것을 충분히 고려한 전략적·전술적 대안이다.

트럼프는 4월 초 세계 모든 나라를 상대로 최소 10%에서 최대 50%에 이르는 포괄적 관세 정책인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했다. 이에 중국은 미국산 제품 전 품목에 최대 125%의 보복관세와 희토류 수출 제한으로 대응했고, EU는 미국의 관세가 발표되자 즉각 수백억 달러의 대미 보복관세를 경고하며 협상을 병행하고 있다. 캐나다 또한 맞불 관세 조치를 발표하는 동시에 마약·이민 문제에 있어 미국과 협조하며 관세 면제와 유예를 얻어냈고, 멕시코는 강경 대응 의사를 밝히되 시행은 유보해 협상 여지를 남겼다. 반면 영국·호주·일본·인도·베트남은 보복 조치를 배제하고 협상 및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실리를 꾀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협상해야 국익에 유리할까. 우선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우방국인 우리와 일본이 협상에서 조기 타결을 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오히려 조급해질 것이다. 둘째, 주눅 들지 말고 상대의 초조함을 이용하자. 관세 이슈 종류가 많고, 방위비·액화천연가스(LNG) 같은 비무역적 사안도 엉켜 있는 상황에서 어설픈 패키지 합의는 금물이다. 미국은 패권국가에서 탈락하는 공포감에 휩싸여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급한 것은 트럼프다. 셋째, 적진을 분열시켜야 한다. 다자간 협상을 통해 여러 국가와 연대해 우위 진영을 확보해야 한다. 넷째, 상호 이익을 강조하자. 미국이 제시하는 통상 분야(2024년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 660억달러)에 대해서만 협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적자를 보고 있는 유튜브 광고, 구글·넷플릭스·아마존 망 사용료, F-35 등 군 전략자산 구입비, 증권 및 가상화폐 소득, 특허료 등 지식재산권료,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 등을 제시해 상호관세 폐지가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감정적 대응이 아닌 실리다.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원칙은 지키되, 외교·안보·디지털·전략물자 등 다양한 대미 적자 항목을 적극 카드화하고,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실용주의 전략이 필요하다. 협상은 강한 자가 아니라, 준비된 자가 이긴다.

[박성중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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