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제조업 경제를 이끌어온 '풀(full) 가동, 풀 생산, 풀 판매'라는 이른바 '3풀 시대'의 패러다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 제조업은 글로벌 분업 시장에서 '가성비'를 강점으로 가파른 성장을 일궈왔으나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이후 펼쳐진 글로벌 매크로 환경은 결코 녹록지 않다. 과잉 설비투자로 인한 공급 과잉 문제뿐 아니라 금융 환경이 자본 합리화 시대로 넘어가는 데 따른 수요 수축 문제까지 겹쳤다. 여기에 에너지 비용 상승, 노동 경직성 및 인건비 증가, 원자재 가격 급등락이라는 삼중고는 한국 제조업의 원가 경쟁력마저 약화시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권이 방아쇠를 당긴 미·중 무역전쟁은 한국처럼 제조업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양국 모두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도 어려운 처지에 몰려 양면에서 타격을 입고 있다.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관세뿐 아니라 수많은 비관세장벽이 더 켜켜이 쌓일 전망이다. 한국 제조업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과거 우리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 확대와 매출 성장을 위해 모든 제품을 최대한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수익성을 면밀히 분석해 고부가가치 제품에 생산 역량을 집중하고 저수익 제품은 과감히 축소·중단하는 결정이 필요하다. '매출 외형'보다 '수익 내실'에 초점을 맞춘 경영 전환이 시급하다.
우선 제조업 공장 운영의 핵심 과제는 더 이상 생산량 극대화가 아닌 수익성 높은 제품 위주의 선별 생산과 이에 최적화된 비용 구조 확립이다. 지원 조직의 고정비와 운영비는 이러한 변화에 걸맞게 최적화해야 한다. 영업·마케팅은 단순한 생산성 향상을 넘어 고객 니즈 차별화에 초점을 맞춘 혁신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새로운 경영 기법을 적극 도입해 기존의 경험과 관행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사업 포트폴리오의 전략적 재조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성장 분야의 사업이나 탈한국 사업구조를 위한 신사업 진출 및 인수·합병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도 기존에 보유한 비핵심 사업에 대한 효과적인 매각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본업의 '선택과 집중'을 추구하는 것과 동시에 한정된 리소스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특히 사업 매각이나 구조조정을 '사업 포기' 프레임으로 연결 지어서는 안 된다. 관점을 달리 보면 이는 새로운 매수자가 시너지 효과 창출, 혹은 새로운 경영을 통해 해당 사업에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기회다.
'3풀 시대'의 종언은 한국 기업에 위기이자 기회다. 수익 중심의 경영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과감히 재조정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기업만이 저성장 시대와 격화되는 무역 갈등 속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사업 매각과 구조조정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이를 새로운 가치 창출의 계기로 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정수 베인앤드컴퍼니 대표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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