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미국에서 박사과정 학생으로 공부하던 1990년대, 미식축구 절대 강자는 댈러스 카우보이스였다. 평생 한 번 출전하기도 어렵다는 결승전인 슈퍼볼에서 1992년, 1993년, 1995년 3회에 걸쳐서 우승을 한 팀이다.
사실 1980년대는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암흑기였다. 매년 형편없는 성적으로 팬들을 실망시켰다. 그러다가 1989년 제리 존스라는 사업가가 댈러스 카우보이스를 사서 구단주가 된 후 개혁을 시작했다. 이때 제리 존스가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면서 영입한 사람이 새로운 코치인 지미 존슨이다. 사실 제리 존스와 지미 존슨은 같이 대학을 다닌 친구였다. 그리고 그 둘은 모두 대학 미식축구팀 선수였다. 대학생 시절 친했던 두 친구는 미래에 프로미식축구 구단을 같이 운영해보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해서 성공한 제리 존스가 댈러스 카우보이스 구단주가 되자 대학 시절 약속을 지켜서 유명한 미식축구 코치가 되어 있던 지미 존슨을 코치로 영입했다.
당연히 둘 사이는 보통 구단주와 코치 관계보다는 훨씬 긴밀했고 열정을 가지고 뛰어난 신인 선수들을 선발하고 열심히 훈련시켜 팀을 인수한 지 4년 만인 1992년에 첫 우승을 이뤄냈다. 바로 그다음 연도에도 연속해서 우승했다.
하지만 2회 연속 우승 후 구단주 제리 존스와 코치 지미 존슨 사이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고 결국 구단주가 코치를 해고한다. 그 이유가 너무도 유치하다. 댈러스 카우보이스가 우승하도록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를 놓고 대학 동기이며 수십년간 우정을 쌓아온 두 사람이 서로 자기라면서 다투었기 때문이다.
구단주 제리 존스는 1995년 1회 더 슈퍼볼 우승을 했지만 그 이후 현재까지 30년째 우승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막강했던 팀의 전력으로 보았을 때 너무도 처참한 결과다.
한편 구단주와 싸우고 팀을 떠난 지미 존슨 코치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바로 마이애미 돌핀스라는 다른 미식축구팀의 코치가 되어서 4년간 활약했지만 결승전인 슈퍼볼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그의 코치 인생은 끝났다.
두 사람의 사례처럼 어려운 시절 동지가 성공을 한 직후 배신해 모두 공멸하는 현상은 역사 속에서 너무도 쉽게 그리고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고려 시대 무신정변을 주도했던 세 사람이 있었다. 정중부(鄭仲夫), 이고(李高), 그리고 이의방(李義方)이다. 당연히 무신의 난을 일으킬 때 세 사람은 생사를 같이하겠다는 각오로 임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신정변에 성공한 후 세 사람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결론적으로 다른 두 명과 권력을 나누어 가지기보다는 혼자서 독차지하려는 욕심이 생긴 것. 우선 무신정변 직후인 1171년 이의방이 이고를 급습하여 죽였으며, 1174년에는 정중부가 세력을 확대하는 이의방을 견제하여 죽였다. 그리고 나서 정중부가 영원히 권력을 누렸으면 모르겠는데, 1179년 정중부 또한 다른 무신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만다.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유명한 인물이 바로 조르주 당통과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다. 두 사람은 프랑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왕과 귀족을 처형하고 국민에 의한 정부를 구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의견 충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반대파 처형을 중단하고 새로운 화합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당통 주장을 못마땅하게 여긴 로베스피에르가 당통을 1794년 4월에 단두대로 보내 처형했다. 하지만 이런 로베스피에르 행동은 오히려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자신과 생사를 함께한 친구인 당통을 처형하는 것을 본 동료 정치인들이 로베스피에르가 언젠가는 혁명 동지인 자신들도 모두 처형할 것이라고 생각해, 불과 3개월 후인 1794년 7월에 로베스피에르를 단두대로 보냈다. 역사에서는 이를 테르미도르 반동(Coup of 9 Thermidor)이라고 부른다.
의견 차이가 있다고 해도 상대방이 나의 진정한 동지이고 협력자라는 생각을 잊지 않았다면 혁명을 같이한 당통을 단두대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댈러스 카우보이스 구단주 제리 존스가 지미 존슨 같은 코치는 500명도 더 넘게 존재하며 나는 다른 코치를 채용해 여전히 슈퍼볼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믿은 것처럼, 로베스피에르는 더 이상 당통이 없어도 혼자 프랑스 혁명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을 테다. 정중부와 이고, 이의방 또한 무신정변이 이미 성공한 시점에서 다른 두 명이 없어도 자신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과 같은 이치다.
경제학에서 담합은 중요한 주제다. 물론 담합은 경제에 해로운 행위이므로 처벌하고 방지해야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담합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유지되는가에 대해 경제학적으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경제학자가 연구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돈에 눈이 먼 기업인이 서로 모여 불법적인 합의를 하고 소비자를 착취하는 담합을 아주 손쉽게 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현실에서 담합은 기업인에게도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담합에 참여한 기업이 약속을 깨고 서로를 배신하는 경우가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건설 기업들이 정부 공사에 입찰을 할 때 출혈 가격 경쟁을 해서 이익을 하나도 못 남기고 공사를 수주하기보다 서로 한 번씩 돌아가면서 높은 가격에 수주할 수 있도록 짜고 칠 수가 있다. 하지만 매번 정부 공사에 입찰할 때 이번에는 쉬기로 한 건설 기업 입장에서는 약속을 어기고 조금 낮은 가격을 제시해 자기 순번이 아닌 공사를 따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이런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여기서 담합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런 담합의 약속을 깨는 경우가 언뜻 생각하기에는 건설 경기가 안 좋아 기업들이 어려울 때 많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건설 경기가 좋아서 기업 상황이 어렵지 않을 때 더 자주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경기가 나쁠 때는 공사 규모가 작기 때문에 담합을 깨더라도 취할 수 있는 이익이 작다. 그리고 그나마 담합을 통해 적은 이익을 취해서 생존하는 상황이므로 담합을 유지하는 것이 더 절실할 경우가 많다. 그래서 건설 경기가 나쁘면 오히려 담합이 잘 유지된다. 하지만 경기가 좋아지면 담합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옛말에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에게는 호양(湖陽) 공주라는 누이가 있었는데 공주는 신하인 송홍(宋弘)을 좋아했다고 한다. 광무제가 송홍을 불러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의 누이와 결혼하면 어떻겠냐고 묻자, 송홍이 쌀겨를 나누어 먹으면서 같이 가난을 이겨낸 현재의 아내를 버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생사를 같이한 동지를 배신하고 고생을 같이한 조강지처를 버리는 일은 도덕적으로도 비난을 받을 일이다. 하지만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힘을 합해 성공을 이루어낸 동료와 협력자가 이제는 필요하지 않고 나 혼자서도 성공을 유지하고 권력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판단이 정확한 판단에 근거한 것인지를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많은 경우 그런 나의 판단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6호 (2025.09.10~09.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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