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빌리어드뉴스 MK빌리어드뉴스 로고

AI가 소환한 인문학의 시대 [김선걸 칼럼]

  • 김선걸
  • 기사입력:2025.09.07 21:00:00
  • 최종수정:2025-09-08 09:35:23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한 IT 기업 경영자의 얘기다.

처음 AI를 도입했을 때는 개발자가 프로그램을 어떻게 개발하라고 일일이 입력했다고 한다.

몇 달 지나 AI가 ‘다음엔 이런 후속 작업을 이어서 할까요?’라고 물어보는데 대략 절반 정도는 맞히길래 신통했다고 했다.

서너 달이 지나자 AI는 개발자가 원하는 후속 작업을 정확하게 맞춰서 수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제 AI는 ‘시키신 작업을 완료했으니 이제 이런 작업을 할게요’라며 혼자 작업한다고 한다.

이 경영자는 “지금은 AI가 뭘 어떻게 개발했는지 잘 모를 정도”라고 했다.

큰 그림을 그려주면 AI가 스스로 개발을 한다. 그래서 이젠 개발자가 팔로업하려 해도 쉽지 않은 단계라고 한다.

이 회사는 요즘 공격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직원 숫자는 그대로다. AI가 기하급수적인 생산성 향상을 이뤄내기 때문이다.

다른 AI 기업 경영자는 “협업할 업체를 고를 때 직원 숫자가 많으면 거른다”고 말했다. 직원이 적은 곳이 AI 활용도가 높다고 짐작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일할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AI 기업 경영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의 역량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이다. 첨단기술의 정점에서 인문학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이런 설명이다.

생성형 AI는 ‘프롬프트(입력어 혹은 지시문)’로 프로그램을 만든다. 코딩 등 기술적인 단계는 AI가 도맡아 한다. 한마디로 ‘빛이 있으라 하시되 빛이 있었다’라는 것처럼 입력어 한 줄로 뭐든 구현할 수 있다.

그래서 기술을 가진 인재보다는 ‘프롬프트’, 즉 글을 잘 쓰는 인재가 갈급한 세상이 됐다.

예를 들어 게임 개발사에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 프롬프트를 쓸 수 있는 인재가 있다면.

혹은 단테의 ‘신곡’이나 괴테의 ‘파우스트’ 같은 창조적인 글을 써내려갈 능력이 있다면? 그 한 명은 단박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기업을 만들 것이다.

‘정답을 고르는 능력’보다 ‘질문을 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도 같은 취지다.

생산 단계를 수십개 뛰어넘는다. 영화를 만든다면 카메라, 음향, 영상, 매니저 같은 현장 스텝이 필요 없고 관리 인력도 확 줄어든다.

AI 전문가들은 한 사람의 천재가 1만명의 몫을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이런 시대는 한편으론 유토피아, 다른 한편으론 디스토피아다.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다. 다수가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누리겠지만 양극화는 심해질 것이다. 극소수에게 자본과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은 피하기 어렵다.

사회적인 혼란과 국가끼리 갈등도 폭발할 수 있다. 그것이 제국주의처럼 전쟁으로 발현될지, 프랑스 혁명 같은 사회적 개벽이 될지, 혹은 한층 굳건한 연대로 승화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하튼 인류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다.

AI가 일하는 시대, ‘일하지 않는 인간’은 여전히 존엄한가. 극소수의 기득권자와 나머지 인간은 동질한 존재인가. 인류를 발전시켜온 지식과 기술은 여전히 신성한가.

인간의 본질에 답이 있을 것이다. AI는 인간의 존엄과 사랑을 모른다. 생명의 유한함과 창조에 대한 의문, 영혼의 깊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인류의 새 챕터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사람의 가치’가 달라진 시대, 본질에 대한 질문에 다시 인문학이 소환됐다.

사진설명

[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6호 (2025.09.10~09.16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