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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정담] 영어유치원 방지법

  • 김병호
  • 기사입력:2025.07.24 17:44:03
  • 최종수정:2025-07-24 21: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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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후배로부터 다섯 살 난 아이가 공부를 너무 많이 한다며 걱정 반, 자랑 반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가 전한 자녀 일과는 이랬다. 오전 8시 30분에 학원버스를 타고 대치동 영어유치원(영유)에 가서 오후 3시까지 수업을 듣는다. 점심을 빼면 5시간을 공부한다. 영어 수업 후에는 인근 수학 학원으로 이동해 2시간을 공부한 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엄마와 오후 9~10시까지 숙제에 매달린다. 이후에야 잠드는 일정이 월~금요일 반복된다. 토요일에는 과학을 배우러 학원에 간다.

심하다 싶지만 다들 못해서 안달이라고 한다. 특히 영유 입학시험은 4세가 많이 본다고 해서 '4세 고시'로 불린다. 강남의 유명한 영유 입학을 위해 4세 전부터 준비시키는 학원도 있다. 어렵게 영유에 들어가면 상위반 진급을 위해 또 경쟁하는데, 이를 위한 별도 과외도 있다.

부모들은 미취학 자녀가 어려운 영어 단어를 술술 외우고, 수학 문제를 척척 푸는 것에 흐뭇해한다. 5세 때 4개 언어를 쓰고, 미적분을 풀었던 1960년대 '천재 아이' 김웅용이 따로 없다.

아이가 온종일 공부에 매달리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아동이 처한 과도한 학업 부담, 수면 부족, 스트레스 등 경쟁적인 교육 환경을 매우 우려한다고 밝혔다. 우울증·불안장애로 9세 이하의 건강보험 청구 건수가 지난해 3만2601건에 달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어릴 적 과도한 학습이 정서 발달과 사회성을 키우는 데 부정적이라고 말한다.

지난 23일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 등이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명 '영유아 영어유치원 방지법'으로 불리는 개정안에는 36개월 미만 아동에게 교습 금지, 만 3세 이상 교습시간 하루 40분 제한, 위반 시 학원 등록 말소 등이 담겼다.

법까지 고쳐 미취학 아동의 학습을 막아야 한다니 씁쓸하다. 하지만 공부로 힘들어 하는 아이만큼이나 이를 안쓰럽게 지켜보며 비용을 대는 부모들의 고통도 크다. 법으로라도 그 부담이 줄어들길 바라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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