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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개혁 넘어야 할 큰 산…“퇴직금은 건드리면 안된다”는 생각 [이은아 칼럼]

노후소득 보장 강화 위한 퇴직급여 연금화·기금화 취지 좋지만 반발 여론도 충분한 토론과 공론화로 국민 동의 얻어야 개혁 성공

  • 이은아
  • 기사입력:2025.07.10 16:15:07
  • 최종수정:2025.07.10 16: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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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소득 보장 강화 위한
퇴직급여 연금화·기금화
취지 좋지만 반발 여론도
충분한 토론과 공론화로
국민 동의 얻어야 개혁 성공

‘나라가 내 퇴직금을 빼앗아 간다고?’ ‘퇴직연금도 국민연금처럼 못 받게 되는 것 아닌가요?’ ‘국민 재산권을 건드리면 안 됩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현재 퇴직금과 퇴직연금으로 나뉜 퇴직급여를 퇴직연금으로 통일하고, 퇴직 시 일시금 대신 연금으로 받게 하는 방안을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는 보도에 달린 댓글들이다.

만만치 않은 불신과 분노가 읽힌다. 퇴직연금 의무화를 철회해 달라는 국회 전자 청원도 2건이나 올라와 있다. 퇴직연금은 국민 개개인이 쌓은 자산인 만큼 운용 방식과 수령 방법은 국민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국가가 일방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요지다.

여의도에 직장인들,. 연합뉴스
여의도에 직장인들,. 연합뉴스

괜한 걱정은 아니다. 당장 퇴직금으로 집을 사거나 창업을 계획했던 사람들은 목돈을 손에 쥘 수 없게 되면 인생 후반부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여전한 상황에서는 목돈을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이 연금 수령보다 합리적인 것도 사실이다. 주된 직장에서 은퇴하는 나이가 법정 정년(60세)보다 훨씬 이른 49.3세인 현실을 고려하면 퇴직금을 활용해 창업하는 것을 탓할 일도 아니다.

퇴직연금을 국민연금처럼 기금화해 운영하기 위해 퇴직연금공단을 신설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거세다. 자칫 공무원 조직만 비대해지고 연금 관리 비용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퇴직연금 사업자인 은행·보험사·증권사의 반대도 넘어야 할 산이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걱정하는 노인을 그린 챗GPT. 연합뉴스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걱정하는 노인을 그린 챗GPT. 연합뉴스

하지만 이미 431조원까지 불어난 퇴직연금을 쌓아둔 채, 방치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현재 증가 속도대로라면 퇴직연금 적립금은 조만간 1000조원을 넘어서고, 15년 후에는 국민연금 기금보다 커진다. 하지만 대부분이 원리금보장 상품에 묶여 있다 보니 수익률은 저조하다. 최근 5년간(2020~2024년) 평균 수익률(2.91%)을 국민연금(7.82%)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명확하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국민연금 수준으로 높아지면 소득대체율이 43%에 불과한 국민연금을 보완하는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다. 낮은 가입률도 문제다. 2023년 기준 퇴직연금 가입률은 사업장 기준 26.4% , 근로자 기준 53%에 불과하다. 퇴직연금에 가입했더라도 다달이 연금으로 받는 비율도 10%에 그친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이참에 퇴직연금 제도의 틀을 바꿔 노후 소득 보장을 강화하려는 것이 정부 의도다. 퇴직연금을 기금화해 운용하면 수익률을 높일 수 있고, 연금화해 노후 소득을 보장하면 고질적인 문제인 노인 빈곤율도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퇴직연금 수익률이 물가상승률도 못 따라간다”며 개편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퇴직연금을 의무화하면 퇴직금을 목돈으로 받아 한꺼번에 소진할 위험과 퇴직금 체불 위험이 사라지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내 집 마련이나 창업자금 등이 필요한 경우에는 연금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등의 절충안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퇴직급여의 연금화·기금화는 단순한 운용방식과 지급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노후 복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퇴직금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오래된 생각을 건드려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국민이 강제적으로라도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 있게 시스템을 바꿀 필요성에 동의하는 것에서부터 논의가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만큼 충분한 공론화와 설득이 필수다.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토론 없이 진영 간 논리나 기관 간 유불리로 논의의 첫 단추가 끼워진다면, 세대 간 갈등만 유발한 채 연금기금 재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결말에 이른 국민연금 모수개혁과 같은 꼴이 날 수도 있다.

이은아 논설위원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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