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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는 질문이 더 중요해진 AI 시대, 기초과학을 묻다 [매경포럼]

인간 모든 영역 넘보는 AI 정책과 투자 블랙홀되면서 기초과학 소외된다면 인간성 토대도 흔들릴 것

  • 김인수
  • 기사입력:2025.07.08 11:16:36
  • 최종수정:2025.07.08 11: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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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모든 영역 넘보는 AI
정책과 투자 블랙홀되면서
기초과학 소외된다면
인간성 토대도 흔들릴 것
[챗GPT 생성 이미지]
[챗GPT 생성 이미지]

인공지능(AI)의 목소리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질문을 던지면 즉각 답이 돌아오고, 복잡한 글도 순식간에 써 내려간다. ‘글쓰기’마저 이제 인간의 고유 영역이 아닌 게 됐다. 어떤 이들은 ‘감정’만큼은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일부 심리학자들은 감정마저 ‘정보의 입력→처리→출력’이라는 알고리즘 구조로 설명한다. AI 알고리즘이 감정 표현을 잘하는 게 그 증거 아니겠나. 이 모든 흐름은 결국 묻게 만든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 대답을 ‘죽음의 자각’에서 찾는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 유한함을 아는 존재, 그리고 그 유한함 앞에서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존재, 그것이 인간이다. 그 질문은 나 개인에서 시작해 인류와 자연, 우주로 확대된다. 나에서부터 우주에까지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과학과 철학, 예술이 태어났다. 애초에 인간은 그 질문을 품었기에 문명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도 두 갈래다. 하나는 응용을 위한 기술의 과학, 또 하나는 인간과 자연을 포함해 존재의 근원을 묻는 기초과학이다.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그 기술의 맨 밑바닥에는 기초과학이라는 뿌리가 있다. AI는 인간 뇌의 신경망을 흉내 낸 것이기에, 그 신경망에 관한 기초 연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탐색하기 위해 찾아낸 ‘수학’이라는 언어가 없었다면, AI라는 ‘인공신경망’을 설계할 수도 없었다. 결국 존재의 본질을 묻는 ‘왜’라는 질문이야말로 AI를 가능하게 한 토대였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 기초를 너무도 쉽게 잊고 있다. 대통령실에서 AI 담당자는 ‘수석’이라는 직함을 갖고 과학기술 비서관 윗자리에 앉아 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AI 전문가다. 정책은 당장의 산업 성과를 좇고 있고, 투자자들은 기초연구보다 AI 스타트업에 몰려간다. 기초과학의 후손 격인 AI는 지금 국정의 중심에 있지만, 그 뿌리는 변두리로 밀려나는 모습이다. 물론 AI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기에 우리가 잘해야 하는 건 맞고 옳지만, 그 뿌리를 돌보는 것까지 잊으면 안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발명품-축음기, 전구, 반도체-역시 모두 기초과학의 부산물이다. 축음기의 경우 에디슨이 ‘음악 재생’이라는 쓰임을 인정한 것은 발명 이후 20년이 지나서였다. 베스트셀러 ‘총 균 쇠’의 저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축음기의 사례를 들어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는 격언은 틀렸다고 했다. 발명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진짜 용도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발명은 ‘필요’보다는 ‘가능성’에서 먼저 시작된다고 해야 한다. 그 가능성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기초과학이 있었다.

한국도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2011년 기초과학 종합연구소를 설립했다.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MPG)를 모델로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설립한 것이다. 그러나 투자는 여전히 빈약하다. 예산이 MPG의 10분의 1 수준이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성과를 입증하라고 조급해한다. 기초과학의 느림과 우직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문명의 뿌리는 언제나 더디게 자란다. 당장의 산업 성과가 아니라 천천히 쌓이는 질문들이 문명을 지탱해왔다. 지금 우리가 AI에 열광하며 맞이한 이 거대한 파고 또한 누군가의 ‘왜’가 찬찬히 쌓이면서 맞이한 것이다. AI 다음에 올 파고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기초과학을 소홀히 하면 그다음의 파고 역시 쫓아가는 데 급급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AI가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왜’라는 질문이 계속되는 한 인간성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 답을 탐색하는 기초과학은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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