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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기른 터프가이…소심男? 불안男? [의사소통의 심리학]

(10) ‘거울뉴런’의 의미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 기사입력:2025.06.27 13:17:01
  • 최종수정:2025-06-28 10: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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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거울뉴런’의 의미
영국 해리스 왕자의 자서전. 해리스 왕자는 한 인터뷰에서 수염이 있을 때 덜 불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수염이 ‘불안에 대한 방패’라는 것이다. 실제로 불안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이 수염을 기른다는 심리학 연구도 있다. (AFP=연합뉴스)
영국 해리스 왕자의 자서전. 해리스 왕자는 한 인터뷰에서 수염이 있을 때 덜 불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수염이 ‘불안에 대한 방패’라는 것이다. 실제로 불안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이 수염을 기른다는 심리학 연구도 있다. (AFP=연합뉴스)

유인원도 정서 표현을 다양하게 합니다. 개를 키워보면 개도 자기 기분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드러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만큼 내면 상태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른 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아주 복잡한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으로 언어를 사용하기 전, 인간의 정서 표현은 원초적 형태의 의사소통 수단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집단 내 한 구성원이 갑자기 공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쪽으로 시선을 고정하면, 주변 사람들은 위험을 직감하고 도망치거나 방어할 자세를 취하며 그쪽 방향을 바라봅니다. 구태여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과 시선으로 집단적 방어가 가능해지는 셈이지요.

사냥이나 채집을 할 때도 감정 표현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사냥을 실패했을 때, 실망과 좌절의 표정을 짓습니다. 사냥을 성공하면 동료를 향해 미소를 짓습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 배출이 아닙니다. 각 상황에 대한 태도와 미래의 공동 작업 방향을 결정하는 사회적 신호입니다. 이러한 감정 표현은 물질적 보상이 없어도 협력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심리적 동기가 됩니다. 아울러 타인과의 협업이 가능한지를 판단하는 신뢰성 지표로도 작동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감정 표현은 집단 내 위계와 규범 형성의 기초가 됩니다. 예를 들어, 잘못을 저지른 자를 향한 다른 구성원의 냉소, 무시, 실망의 감정 표현은 직접적인 물리적 처벌 없이도 경고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는 집단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정서 표현은 사회적 학습, 관계 조절, 규범 내면화, 신뢰 구축 등 복잡한 사회 구조를 가능케 하는 정교한 심리 도구로 진화해왔습니다. 그래서 인간 얼굴에서 털이 사라진 것입니다.

영국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는 인간을 ‘털 없는 원숭이(The Naked Ape)’라고 정의합니다. 인간의 얼굴이나 몸에서 털이 사라진 시기는 대략 200만년 전이라 추정됩니다. 특히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시기에 본격적인 털 감소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일차적인 이유로는 아프리카 대초원의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열 방출과 체온 조절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털이 사라지면서 인류는 체온 조절 능력보다 더 효과적인 무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집단 내 구성원 정서를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모리스에 따르면, 얼굴에서 털이 사라지면서 인간은 얼굴의 미세한 근육 변화로 야기되는 감정 표현을 정서적 신호로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공포, 분노, 기쁨과 같은 복잡한 감정을 표정이라는 비언어적 채널을 통해 타인과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정서 교환을 통한 소통이 더욱 정교화되면서 마침내 인간은 언어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을 갖게 되었습니다. ‘털 없는 원숭이’가 된 인간의 가장 큰 변화는 섹슈얼리티에 있다는 것을 모리스는 아주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섹스가 종족 번식 수단이 아닌 즐거운 놀이가 된 것은 ‘털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털 없는 원숭이’론을 확대 해석해보면, 기껏 없앤 얼굴의 털을 왜 다시 기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의문이 생깁니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 얼굴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소심하거나 불안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 나의 가설입니다. 감정이 노출되는 것이 불안하고, 타인의 평가에 민감해 자기 방어적 행동으로 수염을 기른다는 추측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검색해보니 바로 나옵니다. 영국 왕실의 해리스 왕자(Henry Charles Albert David)는 한 인터뷰에서 “수염이 나의 불안에 대한 방패(a shield to my anxiety)”라고 언급했습니다. 수염이 없을 때, 더 불안하고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를 더 의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 심리학 연구 결과도 그렇습니다. 폴란드 오폴레대 심리학과의 마르친 모론 교수 등이 2024년 발표한 논문을 보면, 수염을 기르는 것은 단순히 외모를 멋있게 가꾸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평가나 자기방어와 같은 심리적 기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 과시 욕구가 높거나 경쟁적 환경에 노출된 남성일수록 굵고 두드러진 수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반대로 사회적 스트레스나 자기 노출의 두려움이 큰 경우에도 수염을 심리적 방패로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젊은 남성일수록 경쟁적 동기가 작동하고, 중장년층에서는 자기방어 동기가 더 두드러진다고 합니다.

의사소통의 비밀을 풀어낸 20세기 최대의 발견: ‘거울뉴런’

갑자기 ‘삐삐삐~’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긴꼬리원숭이 뇌 속에 심어놓은 장비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원숭이가 손을 뻗거나 물체를 잡을 때만 활성화되는 뉴런의 활동을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그런데 이 소리가 났을 때, 원숭이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연구팀은 원숭이의 행동과 뇌 반응 사이 패턴을 분석 중이었습니다. 소리가 났을 때, 실험실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한 연구원이 실험실 바닥에 떨어진 땅콩을 집어 올렸을 뿐이었습니다.

처음엔 기계 오작동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연구팀의 비토리오 갈레세(Vittorio Gallese) 박사는 혹시나 하여 그 연구원에게 다시 한 번 땅콩을 집어 올리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또 ‘삐삐삐~’ 소리가 났습니다. 이번에도 원숭이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오작동도, 우연도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심리학이나 뇌과학과 관련해 20세기 최대 발견이라 여겨지는 사건이 1990년대 초 이탈리아 파르마대의 자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 교수 연구실에서 일어났습니다.

‘거울뉴런(mirror neuron)’의 발견입니다. 거울뉴런은 타인의 행동을 보면, 마치 내가 직접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뇌가 반응하는 신경세포를 뜻합니다. 이 때문에 ‘거울’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앞의 사람이 웃으면, 우리는 거의 자동적으로 따라 웃습니다. 먼저 따라 웃고, 그다음 상대방이 도대체 왜 웃는지 물어봅니다. 이렇게 타인의 감정을 거울처럼 흉내 내는 것은 의사소통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현상입니다. 타인의 감정을 내가 직접 느끼는 것처럼 내면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상대방 내면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거울뉴런 덕분에 우리는 다른 사람 의도까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손을 뻗어 물건을 잡으려고 하면, 내 뇌에서는 내가 직접 물건을 집으려 할 때와 같은 신경세포가 활성화됩니다. 이를 통해 단순히 ‘손을 뻗는 동작’이 아니라, ‘물건을 집으려는 의도’까지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거울뉴런 덕분에 아이는 부모의 말이나, 표정, 행동을 흉내 내며 의사소통 능력을 습득합니다. 특히 언어 습득 과정에서 아기는 들리는 소리를 그대로 모방하며 말의 뜻과 기능을 익히게 됩니다. 아울러 누군가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이 직접 그 감정을 느낄 때와 동일한 신경세포가 활성화됩니다. 이를 통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며, 함께 기뻐하거나 슬퍼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원숭이에게도 존재하는 거울뉴런이 인간에게만 이토록 특별하게 발달한 이유는 인간이 복잡한 사회를 구성했기 때문입니다. 무리 지어 살며 협동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인간은 효과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해 타인의 행동뿐만 아니라 감정과 의도, 거짓말까지도 파악해야 했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이러한 진화 과정은 거울뉴런을 단순한 행동 모방뿐만 아니라 의도의 이해, 정서 공감의 차원까지 확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신경해부학적으로도 인간의 거울뉴런은 운동 피질뿐만 아니라,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측두엽, 공간 인식과 관련한 두정엽, 추론과 도덕 판단에 관여하는 전전두엽 등과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로 행동 제어와 관련해 작동하는 원숭이의 거울뉴런과는 차원이 다른 기능을 하게 된 것이지요.

‘거울뉴런’ - 의사소통의 비밀을 풀어낸 20세기 최고의 발견. 우리는 타인의 표정과 몸짓을 흉내 내며 그 행동의 의도와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이 능력이 바로 ‘거울뉴런’ 때문이라는 사실이 1990년대 초 이탈리아 파르마대의 자코모 리촐라티 교수 연구팀에 의해 밝혀졌다. (챗GPT로 제작)
‘거울뉴런’ - 의사소통의 비밀을 풀어낸 20세기 최고의 발견. 우리는 타인의 표정과 몸짓을 흉내 내며 그 행동의 의도와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이 능력이 바로 ‘거울뉴런’ 때문이라는 사실이 1990년대 초 이탈리아 파르마대의 자코모 리촐라티 교수 연구팀에 의해 밝혀졌다. (챗GPT로 제작)

또 남자들이 문제입니다

어릴 때부터 거울뉴런이 망가집니다!

한때 강연을 참 많이 했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강연이 되고, 어떤 곳에서는 거의 참사 수준이 됩니다. 강연 내용은 동일하니, 청중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기는 걸까요? 중년 남자들이 많을 때입니다! 강연장에 들어서며 청중을 둘러볼 때, 어두운 색 양복을 걸친 중년 남자들이 대부분이면 그날은 각오해야 합니다. 강연자와 청중이 서로 정서적 교감을 하며 강연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중년 남자들 반응은 최악이기 때문입니다.

의사소통에서 ‘말의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불과합니다. 목소리 톤이나 억양 같은 청각적 요소의 비중은 38%, 표정과 몸짓 같은 시각적 요소의 비중은 55%를 차지합니다. 이를 ‘7-38-55 법칙’, 혹은 이 연구를 발표한 알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 교수의 이름을 따서 ‘메라비안의 법칙(Mehrabian’s Rule)’이라고 합니다.

의사소통에서 단어나 문장으로 구성되는 언어적 수단보다는 표정, 몸짓, 제스처, 눈맞춤, 자세, 터치 같은 비언어적 요소가 훨씬 더 중요하게 작동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해도, 말하는 이의 태도나 표정이 맘에 들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그래 당신 말 다 맞아! 그래서?’ 말의 내용은 이해했지만, 내용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은 전적으로 말하는 이의 책임이지만, 표정이나 몸짓 등 비언어적인 영역은 상당 부분 ‘상호작용적’입니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공동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 학자가 거의 없습니다. 메라비언 법칙과 관련된 대부분의 논의는 비언어적 영역의 중요성만 다룰 뿐입니다. 비언어적 소통이 매우 상호작용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의 사회언어학에서만 일부 언급할 뿐입니다. 터치, 눈맞춤, 정서 조율 같은 비언어적 영역은 본질적으로 ‘상호작용적’입니다. ‘의사소통 발달’이란 ‘상호작용적 경험이 내면화되는 과정’이라는 러시아 심리학자 비고츠키의 ‘상호작용-내면화 원리(inter-inner principle)’는 매우 통찰적입니다. ‘자아(self)’가 생기기 전에 먼저 상호작용을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강연장에 앉아 있는 한국의 중년 남자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어릴 때부터 거울뉴런의 작동이 망가지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한국 남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부분 문화에서 남자들의 정서 표현은 억압됩니다. 자립적이고 공격적이며, 동시에 이성적으로 여겨지는 ‘남성성’과 관련된 문명적 편견은 ‘감정 억제’로 이어집니다.

거울뉴런 작동과 관련한 남녀 차이는 생물학적, 혹은 신경학적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태아 때부터 남녀 호르몬 차이는 뇌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테스토스테론의 노출량 차이로 남자아이는 공간 지각이나 운동 관련 뇌 영역이 더 활성화되는 반면, 여자아이는 사회적 상호작용이나 정서에 관여하는 뇌 영역이 더 민감하게 발달합니다. 아울러 여자아이의 언어 및 정서 관련 뇌 영역의 발달이 빠르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이나 행동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거울뉴런 작동에 유리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녀 성역할과 관련해 남자아이, 여자아이가 각각 받는 사회적 훈련이 태어날 때부터 현격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거울뉴런 발달이 달라진다는 사회문화적 요인에 관한 설명 또한 매우 설득력 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의 남자아이는 정서 표현을 심하게 억압받습니다. 모든 남자아이들은 어렸을 때 울면, 주위 모든 어른이 그랬습니다. “남자가 왜 울어!”

심지어는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앞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사진설명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6호 (2025.07.02~07.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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