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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칼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당신은 ‘문명인’

(6) 물리적 거리에 따라 소통 방식 달라진다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 기사입력:2025.05.01 12:28:50
  • 최종수정:2025-05-01 15: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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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물리적 거리에 따라 소통 방식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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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주장하는 브라이언 헤어 교수는 ‘자기 가축화 이론’을 인간의 진화 과정에도 적용합니다. ‘착한 개’가 인간에게 먼저 접근하여 생존할 수 있었던 것처럼, 눈맞춤 같은 상호작용에 적극적인 방식으로 진화한 인간이 생존 경쟁에서 유리했다는 것이지요. 그 증거는 인간 두개골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농경 사회 이후 인간의 두개골과 뇌 크기는 점차 작아졌습니다.

이는 가축화된 동물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 얼굴은 더 둥글고 부드러운 특징을 띠게 되었습니다. 그 변화의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눈썹활(browridge)’입니다.

눈썹활이란 눈 위쪽, 이마 아래쪽에 위치한 돌출된 뼈 구조입니다. 화석의 흔적을 조사해보면 현대 인류가 등장할 때부터 이 눈썹활 돌출 정도가 급격한 속도로 감소되었다는 겁니다.

이에 따른 얼굴 구조의 변화는 감정 표현과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더욱 풍부하게 만듭니다. 특히 눈 주위 근육 조절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공격성을 감소시키고, 집단 내 협력과 조화를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인간도 동물처럼 스스로 공격성을 축소하는 선택적 진화 과정을 거쳤다는 설명이지요. 그러나 인간의 진화 과정을 공격성 감소와 사회성 증가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인간의 진화를 늑대의 자기 가축화처럼 목표지향적 선택 과정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는 의견입니다. 인간 진화는 생물학적 변화뿐만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과정이라는 논리지요.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자기 가축화 이론의 내용적 비판이라기보다는 인간 사회 시스템의 작용을 포함하는 이론적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39년 제기된, 독일 문화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 1897~1990년)의 ‘문명화 과정(Zivilisationsprozeß)’에 관한 주장은 이 같은 비판에 대한 시대를 앞선 대답입니다. 질문보다 대답이 먼저 나왔다고 할 수 있지요.

엘리아스는 인간 문명을 ‘감정의 온순화’로 설명합니다. 더 자세히는 ‘감정 통제(Affektkontrolle)’, 혹은 ‘감정 억제(Affektbeherrchung)’로 인간 문명을 해석합니다. 인간 사회가 점진적으로 폭력과 원초적 감정 표현을 억제하고, 자기통제를 내면화하여 오늘날의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한마디로 “문명화 과정은 사회적 제약의 내면화를 통해 감정과 정서가 장기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다”라고 얘기합니다.

현대 인류의 두개골(왼쪽)과 고대 인류의 두개골(오른쪽) 비교. 뇌는 작아졌고, 두개골은 더 둥글고 평평해져 유아적 특징을 갖게 됐다. 눈썹활의 돌출이 감소돼 눈맞춤과 감정 표현에 유리해졌다. 이는 인간의 ‘자기 가축화’ 증거로 여겨진다. (Dr Mike Baxter)
현대 인류의 두개골(왼쪽)과 고대 인류의 두개골(오른쪽) 비교. 뇌는 작아졌고, 두개골은 더 둥글고 평평해져 유아적 특징을 갖게 됐다. 눈썹활의 돌출이 감소돼 눈맞춤과 감정 표현에 유리해졌다. 이는 인간의 ‘자기 가축화’ 증거로 여겨진다. (Dr Mike Baxter)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 표현이 내면화되었기에 오늘날의 문명이 가능했다는 엘리아스의 주장은 심리학자 눈에는 너무도 혁명적입니다. ‘타인의 시선’과 ‘예절의 탄생’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인간 문명의 핵심을 감정 통제’라고 본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론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감정 조절의 내면화 방식입니다.

엘리아스는 자신의 문명화 과정론을 아주 사소한 일상적 행동 분석에서 시작합니다. 중세 초기 유럽에서 식사 방식은 아주 단순하고 거칠었습니다.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고, 테이블보로 코를 푸는 등 더럽고 비위생적이었습니다. 밥을 먹다 음식과 식기를 집어던지는 난투극이 일어나는 일도 잦았지요. 한쪽에서는 밥을 먹고, 같은 방 다른 한쪽에서는 용변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귀족의 궁정에서 식사 예절의 정교한 행동 규칙이 만들어집니다. 물론 그 시작은 귀족이 하층민과 자신을 분리하고, 계층 간 차이를 보다 명확히 하려는 의도였지요.

포크, 나이프, 숟가락 등 도구 사용이 확대되면서 더욱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전에는 공용 그릇에 담긴 음식을 함께 손으로 집어먹었습니다. 도구를 사용해도 아주 간단한 칼 정도만 사용했지요. 그런데 다양한 식사 도구를 사용하면서 음식과 개인 사이에 물리적 거리가 확보되자 더 위생적인 식사 환경이 보장되었고, 그 환경에 맞는 태도와 행동이 정립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탁에서의 행동은 절제되고 우아한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세분화된 행동의 절차를 통해 귀족은 하층민과의 구별을 확실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산업 사회가 도래하면서 이 식탁 예절은 일반 대중에게 보편화되었고, 품격 있는 개인의 태도를 특징 짓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지요.

식탁에서의 절제된 행동은 엘리아스가 보여주고 싶어 한 문명화 과정의 극히 일부였습니다. 문명의 본질은 폭력과 분노의 조절이라는 겁니다. 절제된 행동을 통해 내면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지요. 바로 이 변화를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으로 정의합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처럼 절제된 행동, 즉 문명화된 행동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타인의 시선’입니다. 식탁 사례처럼, 개인 공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확보되면서 사람들은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날것’으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직접적인 신체 접촉은 분노나 적개심 같은 원초적 감정 표출과 쉽게 연계되기 때문이지요. 그 대신 ‘시선으로 매개되는 상호작용’이 중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눈맞춤’과 같은 ‘다정한’ 행동이 이제 통제의 도구 역할을 하게 된 것이지요. 상호작용적 ‘눈맞춤’이 통제의 ‘시선’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렇게 진화한 ‘시선’은 오늘날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개념이 됩니다. 현대 인간 행동의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인 ‘부끄러움’과 ‘수치’의 탄생을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중세 초기 유럽의 식사 모습. 사람들은 멋대로 행동하고, 바닥에는 음식이 흩어져 있다. 개가 돌아다니며 흘린 음식을 먹는다. 한쪽 구석에서는 용변을 보기도 한다. ‘먹는 것’과 ‘싸는 것’의 문화적 차이가 분명하지 않았다. 문명은 ‘먹는 것’과 ‘싸는 것’의 구별에서 시작한다.
중세 초기 유럽의 식사 모습. 사람들은 멋대로 행동하고, 바닥에는 음식이 흩어져 있다. 개가 돌아다니며 흘린 음식을 먹는다. 한쪽 구석에서는 용변을 보기도 한다. ‘먹는 것’과 ‘싸는 것’의 문화적 차이가 분명하지 않았다. 문명은 ‘먹는 것’과 ‘싸는 것’의 구별에서 시작한다.

‘눈맞춤’서 ‘시선’으로: ‘부끄러움’의 탄생

언젠가 매스컴에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직각 식사(square meals)’를 본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식탁 위 행동을 모두 직각으로 하는 것이지요. 국물을 많이 먹는 우리나라 식사 방식에서는 바로 모든 게 엉망이 되고 맙니다. 도대체 왜 이런 식사를 하는 걸까요? 식탁 예절로 문명화 과정을 설명하는 엘리아스의 이론으로 살펴보면 바로 이해가 됩니다.

‘직각 식사’는 미국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서 군사적 규율과 복종을 내면화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직각으로 하는 엄격한 식사 예절과 태도가 군인 정신을 확립하는 데 아주 효율적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오늘날 그다지 필요 없어 보이는 군대 훈련소의 제식훈련을 설명하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제식훈련은 칼과 창의 효과적인 운용을 위해, 혹은 후장식 소총의 장전을 체계화하기 위해 개발된 것입니다. 총과 대포, 미사일이 동원되는 현대전에서는 그리 효율적인 행동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식훈련을 통해 집단적 명령 복종의 군대 문화가 내면화된다고 여기는 까닭에 훈련소에 입대하면 제일 먼저 제식훈련부터 엄격하게 하는 것입니다.

맥락에 맞는 행동을 내면화하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근대적 생각’의 시작은 식사 예절을 통해 귀족적 품위를 내면화하려 했던 궁정 예절이라는 엘리아스의 주장을 한국 역사학자 설혜심은 ‘매너의 역사’로 확대하여 설명합니다. 문명화 과정이 개인화되어 세련된 품위와 예의 바른 행동의 구체적 규범인 ‘매너(manner)’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설명하는 ‘자기 규제’ 메커니즘도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론과 유사한 설명 방식입니다. 감옥에서의 판옵티콘(간수 한 사람이 죄수 전체를 한눈에 감시할 수 있는 원형감옥) 같은 감시 구조가 지속적으로 죄수를 관찰할 때 죄수들이 점차 그 감시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규제하는 것처럼, 현대의 개인은 사회의 ‘보이지 않는 시선’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통제하게 된다는 겁니다. 둘의 결론도 아주 비슷합니다. 엘리아스가 ‘감정의 온순화(emotional pacification)’를 이야기한다면, 푸코는 ‘유순한 몸(docile bodies)’을 주장합니다. 유순한 몸이란 권력의 효과적인 작동을 가능케 하는 순응적인 신체를 말합니다. 공적인 공간에서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를 내면화하여, 자신도 모르게 이에 합당한 행동을 하게 되는 개인을 뜻합니다.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 즉 감정의 온순화가 이끌어낸 종착역은 ‘수치’와 ‘부끄러움’입니다. 각 개인이 외부 규제를 내면화하여 자기통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수치와 부끄러움은 아주 강력한 통제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합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과거에는 허용되었던 자연스러운 욕구 표현이 지극히 개인적 공간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침실이나 화장실 같은 ‘사적 공간’이 탄생한 이유이지요.

고급 호텔에는 남자 소변기 사이에 칸막이가 꼭 있습니다

엘리아스나 푸코의 이론을 읽다 보면 ‘분노’와 ‘적개심’, 그리고 ‘수치’와 ‘부끄러움’의 생성 과정에 관한 그들의 설명이 ‘공간의 구분’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문명화 과정을 문화심리학적으로 요약하자면 ‘공간 구분에 따른 감정 통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명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을 구별할 뿐 아니라, 각 개인 간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의 패턴을 내면화했습니다.

공동체 유지의 핵심은 공적 공간의 질서와 평화를 해치는 원시적 감정 표현, 즉 분노와 적개심의 억제입니다. 이는 예의나 매너, 혹은 품격과 격조 등의 이름으로 ‘명시적 지식’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눈치 빠르게 익혀야 하는 ‘암묵적 지식’이 되기도 합니다.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 패턴을 어길 때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이라는 심리적 부담을 겪어야 하지요. 암묵적, 또는 명시적 규칙을 어겼지만, 스스로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면 엄격한 사회적 처벌이 가해집니다. 따돌림을 당하거나 심한 경우 감옥에 가야 합니다. 이와 관련, 유럽 궁정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의 탄생 과정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유럽 궁정을 관광하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공간 구분 없이 모든 방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복도를 통해 각각의 기능을 하는 방에 들어가는 구조가 아니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끝없이 이어집니다. 국정을 논의하던 회의실 문을 지나면, 함께 식사를 하고 춤을 추던 공간이 나오고, 그 문을 지나면 왕의 침실에 다다릅니다. 각각의 공간이 분명하게 구별되어 있지 않습니다. 화장실이나 욕실도 구분이 없습니다. 방 한 귀퉁이에 변기가 놓여 있기도 하고, 침대가 놓여 있기도 합니다.

사적 공간과 그 공간에서의 개인적 행동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그리 크게 느끼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궁정의 공간 구조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은밀한 개인 공간이 생기고, 타인의 출입이 금지됩니다. 이제 개인의 욕망이 소비되는 공간이 드러나면 부끄럽고, 억지로 노출되면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궁정과 귀족들 공간에서 시작된 ‘개인 공간의 탄생’은 산업 사회 이후 거의 모든 이에게 확대됩니다.

화장실 구조의 역사적 변화를 살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장실 칸막이가 생긴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남자 소변기 사이 칸막이도 최근 들어 생겼습니다. 여전히 칸막이가 없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품위와 격조를 유지하고 싶은 이들(!)은 그런 곳에서 소변 보기를 아주 힘들어합니다. 고급 호텔 화장실의 소변기 사이에는 반드시 칸막이가 있습니다. 소변 보는 소리를 감추라고 소변기 앞에 서면 물이 바로 내려오기도 합니다. ‘물소리’는 단지 위생적인 기능만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움의 심리적 보호 장치입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8호 (2025.05.07~2025.05.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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